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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광고 중독을 끊어야 저널리즘이 산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6, 2020

(민중의소리 창간 20주년 특별 기획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익숙한 기시감이지만 위기와 재난이 닥칠 때마다 우리는 언론의 바닥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바야흐로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한 번 무너진 언론의 신뢰도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는 걸 깨닫고 있다. 한국 언론은 지금 불가항력적인 변화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누가 나에게 언론 개혁 방안을 한 줄로 요약해 보라고 하면 깊이 생각할 것 없이 뉴스 산업의 기형적인 수익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많은 언론사들이 이재용을 감싸고 도는 건 삼성을 비롯해 거대 광고주들이 언론의 논조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사들이 포털에서 검색 어뷰징을 하는 건 실제로 그게 수익이 되기 때문이다. 언론사들이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이고 기득권과 자본의 재생산 구조를 옹호하는 건 역시 그게 아니라면 거대 언론사의 규모의 경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이 정치 권력을 비판하지만 자본 권력을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권력은 자본에 넘어갔고 언론은 먹고 사는 문제로 펜을 꺾는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고 광고 효과가 전혀 없는데도 광고주들이 신문에 광고를 내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더욱 적나라하게 말해 볼까. 쓰레기 같은 기사를 쏟아내지만 그래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이런 기사를 쓰는 것이다. 이런 기사를 써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이 모양인 것이다. 이걸 바로 잡지 않고서는 한국에 언론 개혁이란 있을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격 없는 상품의 딜레마.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2019년 신문 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192개 일간 신문의 광고 수익이 1조7985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부가 사업과 기타 사업 수익이 5784억 원이고, 종이신문 판매 수익은 연간 3228억 원 밖에 안 된다. 전체 매출 가운데 신문 판매가 차지하는 비율은 10.9%이다. 그리고 인터넷 콘텐츠 판매 수익이 8.9%다. 실제로 콘텐츠를 팔아 버는 비율이 20%가 채 안 된다는 이야기다. 가격 없는 상품의 딜레마, 공짜로 뿌려도 외면 받는 상품에 광고를 붙여서 판다.

이것은 매우 한국적인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전체 신문 광고가 70.9%나 줄어들었는데 한국은 같은 기간 동안 22.1% 줄어드는 데 그쳤다. 게다가 이건 신문 광고라는 항목으로 잡히는 금액이고 실제로 협찬과 후원 등 유사 광고를 더하면 한국의 신문 광고는 여전히 현상 유지 정도는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집계한 결과, 주요 신문사들 매출은 거의 2003년부터 거의 변동이 없다. 드러나는 지면 광고에서 음성적인 협찬과 후원으로 옮겨갔을 뿐 한국 언론은 여전히 먹고 살 만하고 동시에 광고주 의존이 더욱 심화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페니 페이퍼(100원짜리 신문)가 처음 등장했던 게 1832년이다. 값싼 신문의 등장이 정보의 평등을 만들었고 공짜 뉴스에 광고 끼워 팔기 모델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저널리즘의 물적 토대가 됐다. 언론이 민주주의를 견인했던 때가 있었다. 권력에 맞서고 진실을 파헤치고 불편한 진실을 폭로했던 정의로운 언론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200년 가까이 지속됐던 페니 페이퍼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뉴스의 패키지가 해체됐고 맥락이 붕괴됐다. 종이신문 구독률은 2019년 기준으로 12.3%, 열독 시간은 하루 평균 5분으로 줄었는데 설문조사인 데다 그나마 평균이라 거의 의미가 없다.

조중동 326만부, 믿을 수 있나?

ABC부수공사에 따르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각각 131만 부와 98만 부, 97만 부를 찍는다고 하지만 부수공사라는 게 전혀 믿을 게 못 된다. 찍자마자 계란판 폐지로 가는 경우도 많고 공사(公査)라는 게 공동의 조사라는 의미지만 실제로는 짜고 치는 고스톱에 가깝다. 미디어오늘 기자들이 부수 공사에 동행 취재를 하게 해달라고 여러 차례 제안했으나 모두 거절당했고 실제로는 조사 며칠 전에 사전 통보를 하고 미리 준비된 상태에서 조사를 나간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도대체 조선일보가 미국의 뉴욕타임스보다 발행부수가 많다는 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참고로 뉴욕타임스는 평일 판이 110만 부, 주말 판은 190만 부가 발행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신문 르몽드는 한창 잘 나갔던 때도 30만 부 수준이었다. 애초에 발행부수가 신문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신문(종이신문)이 더 이상 광고 매체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다. 이제 신문을 많이 찍는다고 영향력 있는 언론사가 아니고 신문 1면에 기사가 뜬다고 해서 세상이 뒤흔들리는 그런 세상도 아니다.

“기레기 퇴출”을 외친다고 해서 저널리즘의 복원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언론 권력과 자본 권력의 오래 된 유착을 끊는 것이 그 출발이라고 믿는다. 진보나 보수나 모든 언론이 한꺼번에 ‘기레기’로 비난 받는 시대지만 우리가 여전히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의 동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생태계를 위한 사회적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

2019년 기준으로 뉴욕타임스는 전체 매출 가운데 구독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2.9%에 이른다. 이 신문은 이미 2012년부터 구독 매출이 광고 매출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남의 나라 이야기 아니냐고? 나는 거꾸로 묻고 싶다. 뉴스 유료화 이외의 대안이 있는가? 나는 뉴스 산업이 B2B 모델에서 B2C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믿는다. 독자 없는 언론의 시대가 된 지 오래 됐지만 다시 독자를 확보하고 독자들이 지갑을 열게 만드는 언론사가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돼야 한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공짜 뉴스의 시대는 끝났다.

뉴욕타임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제 돈 안 내면 뉴스를 볼 수 없다고 선언해서 돈을 긁어들인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2005년 9월, 타임셀렉트(Times select)라는 이름으로 월 7.95달러(연 49.95달러)에 부분 유료화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 있다. 2년 동안 유료 구독자가 22만7000명으로 늘고 매출이 연 1000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업계에서는 이것만으로 엄청나다고 평가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이 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가 타임셀렉트를 접었던 2007년 9월 기준으로 뉴욕타임스의 방문자 수는 월 1300만 명이었다. 2%도 안 되는 돈 내는 독자가 더 이상 크게 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2009년 기준으로 뉴욕타임스는 온라인 광고가 전체 매출의 5% 정도를 차지했는데 일단은 방문자 수를 늘리면서 영향력과 광고 매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유료화를 포기한 뒤 뉴욕타임스는 방문자가 크게 늘었다. 2007년 1300만 명에서 2011년 1월에는 4648만 명까지 늘었다. 뉴욕타임스가 두 번째 유료화를 시도한 것은 2011년이다. 무료 기사를 월 20건으로 제한하고 기사를 더 읽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이른바 미터드(metered, 계량형) 페이월을 도입한 것이다.

나중에 뉴욕타임스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톰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방문자 가운데 1%가 20건 이상의 기사를 읽고(페이월에 부딪히고) 이 가운데 20% 정도가 유료 구독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가 뉴욕타임스의 실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첫째, 뉴욕타임스니까 가능한 일이다. 둘째, 페이월을 치려면 그 전에 충분히 많은 독자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신문도 유료화가 마지막 선택이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열린 집담회에서 코드 미디어디렉터 박상현은 “뉴욕타임스의 성공은 놀라운 일이지만 뉴스 모노폴리(독점)란 말이 나올 정도로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들이 충분히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informed dicision) 언론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펜데믹 상황에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쏟아지면서 언론의 불신을 초래하고 있고 그래서 뉴욕타임스 같은 글로벌 톱 퀄리티 언론의 독점이 강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20% 충성 독자를 겨냥한 “한 달에 2건만 무료”.

뉴욕타임스는 2011년 3월, 월 20건이었던 페이월을 2012년 4월, 10건으로 줄였고 2017년 12월 5건으로 줄였다가 2019년 7월부터는 2건으로 줄였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뉴욕타임스 밖에 없다, 보기 싫으면 보지 말라는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미터드 페이월은 뜨내기 독자들을 허용하면서 충성 독자들에게 과금하는 타협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유료 독자가 525만 명에 이른다. 구독이 늘어나 봐야 광고가 줄어드는 추세를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시니컬한 관측도 있었지만 매출 규모만 놓고 보면 구독이 광고를 방어하는 정도를 넘어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모양새다.

마크 톰슨은 공공연하게 1000만 독자를 달성하겠다고 외치고 있고 실제로도 불가능한 목표 같지는 않다. 하버드대학교 부설 니만연구소에 따르면 뉴욕타임스는 최근 3~4년 사이에 400명 정도 기자를 추가 채용했다. 편집국 소속 직원만 1700명에 이른다. 니만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뉴욕타임스는 디지털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with all the digital efficiency, a great economy of scale)를 둘 다 확보하는 모델로 가고 있다.

마크 톰슨은 “우리가 500만 명의 가입자를 만들기 위해 X만큼 비용을 썼다면 1000만 명까지 독자를 늘리기 위해 2X만큼 돈을 쓸 필요는 없다”고 말했는데 만약 이 모델이 성공한다면 세계적으로 뉴스 비즈니스의 롤 모델이 될 것이다.

코로나 ‘범프’가 불러온 깨달음.

뉴욕타임스라서 가능한 실험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국제뉴스미디어협회와 빅데이터 분석 업체 딥비아이(Deep.BI)가 실시한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유럽의 중견(mid-sized) 언론사들 뉴스 트래픽을 분석했더니 올해 1월, 방문자가 233만 명에서 3월에는 509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른바 ‘코로나 범프(bump)’다.

위기 상황에서 뉴스 소비가 급증하는 것은 언론이 여전히 정보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뉴스를 읽고 진짜 뉴스를 알아차린다. 이럴 때 잘 하는 언론은 충성 독자를 늘릴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지난해 미국에서 더밀크라는 독립 언론을 창간한 손재권 기자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브랜드 뉴스가 컴백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닉 뉴먼 연구원은 “가짜 뉴스가 넘쳐나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울 때 사람들은 전통적인 뉴스 미디어로 복귀한다”고 분석했다.

구독 솔루션 업체 피아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올해 들어 유료 구독자가 55%, 유럽에서는 67%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검색이나 소셜 미디어 유입보다 직접 방문자들의 유료 전환율이 높았다는 분석 결과도 흥미롭다.

딥비아이는 독자를 뜨내기(Fly-bys)와 일반 독자(Light user), 열성 독자(Engaged), 충성 독자(Addicted)의 네 단계로 구분했는데, 뜨내기 독자 118만 명과 일반 독자 8만 명 가운데 일부를 포함해서 123만 명은 다시는 방문하지 않았다. 반면, 열성 독자는 27만 명에서 46만 명으로, 충성 독자는 12만 명에서 25만 명으로 늘어났다.

중요한 것은 뜨내기 독자들이 갑자기 충성 독자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체 파이가 늘어나긴 했지만 두 달 동안의 새로운 독자 229만 명을 추적했더니 172만 명이 뜨내기 독자였고 20만 명이 일반 독자였다. 열성 독자와 충성 독자는 37만 명이 늘어났다.

37만 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들이 월 1만 원씩 돈을 내면 월 37억 원, 연간으로는 444억 원이 된다. 만약 달마다 37만 명이 늘어난다면 연간으로는 5000억 원 이상이 된다.

미국 신문협회 조사에 따르면 전체 페이지뷰의 50~70%가 실제 방문자 수고 이 가운데 실제로 기사를 읽는 독자는 25~65%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페이월을 맞닥뜨리는 비율은 1.3~6.5% 정도 되고 이 가운데 구독자로 전환하는 비율은 0.01~2% 정도다. 이른바 구독 깔대기(subscription funnel) 모델이다. 방문자가 많을수록 구독자도 늘어나지만 이것도 전략에 따라 최대 20배의 차이가 난다.

만약 1만 명의 새로운 독자를 확보한다면 이 가운데 최대 200명을 충성 독자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무려 16.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유럽에서의 조사를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 국면에서는 최대 1620명이 뉴스에 지불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독 깔대기, 진짜 뉴스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뜨내기 독자들 가운데 좋은 뉴스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비율은 16% 밖에 안 되지만 열성 독자와 충성 독자는 이 비율이 각각 41%와 54%나 된다. 단순히 의향일 뿐만 아니라 이 조사에서 실제로 뉴스에 돈을 내고 있는 비율이 열성 독자와 충성 독자는 각각 5.0%와 13.8%나 됐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경험을 종합하면 어차피 평생 돈을 안 낼 사람은 안 낸다, 그러나 열성 독자와 충성 독자의 집단이 있고 이들만 잡고 가도 줄어든 광고 이상의 매출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가능한 시대가 됐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페이지뷰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뜨내기 독자를 함부로 소홀히 취급해도 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것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게 아니라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핵심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여전히 대부분의 독자는 뜨내기고 왔다가 스쳐 지나가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짜 뉴스에 대한 갈망이 크다. 언론 산업 종사자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좀 더 정직해야 하고 투명하고 솔직해야 한다. 뉴스가 안 팔리는 게 아니라 팔릴 만한 뉴스를 만들지 못하는 게 문제고 낡은 관행에 뉴스의 영혼을 팔아 먹고 있는 게 진짜 문제다.

안타깝게도 딥비아이의 추적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범프는 오래 가지 않았다. 조사 대상 언론사들 트래픽 추이를 집계한 결과 3월에는 방문자가 509만 명이었는데 4월에는 481만 명으로 줄었다. 뉴스의 열독률이 떨어지면서 뜨내기 독자들 비율이 더 늘었고 열성 독자와 충성 독자 비율은 줄었다. 범프를 계속 끌고 가면서 일반 독자들을 열성 독자와 충성 독자로 유도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눈여겨 볼 대목은 한 번 범프가 지나가면 뜨내기 독자 가운데 일부가 남는다는 사실이다. 딥비아이 조사에서도 충성 독자가 1월 12만 명에서 3월에는 25만 명으로 늘었다가 4월에 19만 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지만 1월과 비교하면 그래도 7만 명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80%가 빠져 나가도 20%의 독자를 건질 수 있고 이 가운데 2%의 충성 독자들이 후원자가 된다면 장기적인 전망을 모색할 수 있다. 테이블 위에 1만 원이 있으면 1만 원일 뿐이지만 달마다 들어오는 1만 원은 수백만 원의 가치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깔대기에 입구에 독자를 끌어 담는 데 집중했을 뿐 뜨내기 독자들을 열성 독자와 충성 독자로 전환하는 데는 관심이 없거나 별다른 전략을 만들지 못했다. 좋은 기사를 많이 보여주면 충성 독자가 되지 않을까 정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를 살펴보면 대부분 독자들은 왔다가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딥비아이는 “마법의 공식 같은 건 없다(There’s no magic formula)”고 조언한다. 결국 핵심은 뜨내기 독자와 열성+충성 독자를 다르게 접근하라는 것이다. 뜨내기 독자들을 한 번 더 찾게 만들고 하나라도 기사를 더 읽게 만들고 몰입하게 만드는 게 장기적으로 뉴스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전략이다.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강조하는 건 구독은 습관이라는 것이다. 습관을 바꾸는 건 결코 쉽지 않지만 한 번 바꾸면 오래 간다. 세상에는 돈 안 되는 뉴스도 필요하고 시장에 영합하지 않고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언론도 필요하다. 이제 뉴스를 잘 만들면 팔리는 시대가 아니라 잘 팔아야 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잘 만들기 위해서라도 잘 팔아야 한다.

구독 우선(subscription first) 전략으로 조직의 우선 순위를 설정한다면 기사의 작성과 콘텐츠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뜨내기 독자들을 쓸어 담고 트래픽을 끌어 올리는 것으로는 구독 전환을 할 수 없다. 그동안 썼던 기사의 대부분을 버리고 좀 더 본질적이고 좀 더 구조적인 해법에 접근하는 기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 기사 때문에 구독을 하게 됐다”는 게 최고의 칭찬과 명예가 돼야 한다.

구독은 습관,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우리는 냉소적이고 불만에 가득 찬 수많은 뜨내기 독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한 줌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충성 독자들에게 매달려야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우리의 퀄리티 저널리즘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뜨내기 독자들을 간과했지만 우리가 그들을 뜨내기 취급했기 때문에 떠나갔던 것이다. 우리는 좀 더 친절해야 하고 좀 더 겸허해야 한다. 좀 더 원칙적이고 끝까지 정의로워야 한다.

과거에는 논조와 별개로 신문을 많이 찍으면 영향력이 생기고 광고 효과를 확보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독자들이 기꺼이 돈을 낼만 한 뉴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의 이유를 입증할 만한 기사를 만들어야 하고 독자들이 뉴스의 가치를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구독은 뉴스라는 상품을 구입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뉴스의 가치에 동참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반문할 것이다. 네이버에 공짜 뉴스가 널려 있는데 누가 뉴스에 돈을 낼까? 나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한국 언론의 포털 종속이 생태계 다양성을 무너뜨리고 공론장을 위축시키고 있다. 지금은 모두가 네이버에 한 발을 걸치고 있지만 이제는 타고 온 뗏목을 불사르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발을 내디뎌야 할 때다. 가까운 미래에 네이버와 결별할 수 없다면 당분간 공존하면서도 뉴스의 맥락과 패키지를 복원하고 과금 모델을 만드는 대안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공짜 뉴스가 넘쳐나지만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뉴스에 돈을 지불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민중의소리 창간 20주년을 축하한다. 미디어오늘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 광고와 기사를 거래하지 않고 저널리즘 원칙과 언론인으로서 열정과 신념을 지키면서 뉴스를 만드는 것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더 많은 독자들이 민중의소리를 후원하기를 바란다. 민중의소리 같은 대안 언론이 독자의 힘으로 살아남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상품은 뉴스다. 최고의 뉴스를 만들고 뉴스를 팔아 뉴스를 만들 재원을 마련하고 선순환 투자를 해야 한다. 뉴스를 제대로 평가하고 뉴스에 제 값을 치르는 시스템,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진짜 언론 개혁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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