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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거나 펴거나 접거나 늘리거나, 완전히 다른 디스플레이의 시대가 온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8, 2020

(학교 과제로 쓴 글입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와 나노 기술.
이정환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석사 과정.

1.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이상과 현실.

지난해 9월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내놓은 폴더블폰, 갤럭시 폴드는 참담한 실패였다. 239만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도 내구성이 턱없이 떨어졌고 굳이 스마트폰을 접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올해 2월에 다시 내놓은 갤럭시 플립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격은 297만 원으로 더 뛰었지만 힌지의 치명적인 주름을 해결하지 못했고 새로운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둘 다 아몰레드(AMOLED) 방식의 인피니티(infinity)-O 플렉스 디스플레이를 채택했는데 여기에 갤럭시 폴드는 강화 유리 대신에 투명 폴리아미드(PI) 필름을 씌웠고 갤럭시 플립은 울트라 씬 글래스를 씌웠다. 디스플레이를 접어야 하니 강화 유리를 얹을 수 없다는 게 폴더블폰의 숙명이었다.

안타깝게도 갤럭시 폴드는 화면 보호 필름이 우그러지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일부 소비자들은 이 필름을 통상적으로 새 스마트폰에 덧씌워 있는 보호 필름으로 착각하고 손으로 벗겨내는 일도 있었다. 갤럭시 플립 역시 필름이 문제였다. 유튜브에서는 갤럭시 플립의 액정을 손톱으로 긁어서 홈이 패이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일부 리뷰 사이트에서는 “이걸 유리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급기야 필름을 벗겨내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애초에 액정이 벗겨진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었다.

“접는 게 아니라 펴는 것”이라거나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중간 단계”라는 등의 꿈보다 좋은 해몽이 남발했지만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스마트폰은 매끈하고 단단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새로운 스마트폰을 손에 쥐자 마자 액정 보호 필름을 찾는 게 인지상정인데 우둘투둘한 스크린, 게다가 손톱으로 떼어낼 수 있는 디스플레이는 악몽과도 같은 것이다. 폼 팩터(form factor)의 혁신이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아직은 실험 단계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2. 연구 동향과 기술.

플렉시블(flexible) 디스플레이는 단순히 커브드(curved) 디스플레이와 다르다. 둘둘 말거나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어야 하고 외부 충격에 강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변형되거나 끊겨서는 안 된다.

보통 OLED(유기발광 다이오드, Organic Light-Emitting Diodes)라고 부르는 평면 디스플레이는 폴리아미드 기판 위에 박막 트랜지스터(TFT)층과 유가 발광층을 증착하고 유리를 덮어서 만든다. 박막 트랜지스터층은 표시 소자를 구동하기 위한 스위치의 역할을 하고 유기 발광층이 실제로 화면과 컬러를 표시하게 된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여기에 봉지(encapsulation)막을 씌우는 과정이 추가된다. 봉지막은 유기 소자를 외부의 불순물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유연해야 한다. 고정된 디스플레이의 경우 유리를 덧씌우면 되지만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접었다 펼 때 구겨지거나 부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폴더블폰의 실패에서 봤듯이 결국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핵심은 얼마나 유연하고 단단한 봉지막을 구현하느냐에 있다.

갤럭시 플립의 울트라 씬 글래스의 두께는 30μm였다. 보통 사람의 머리카락 두께가 17~180μm 정도라고 하니까 머리카락 중에서도 가는 머리카락 정도의 두께다. 워낙 충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여기에 폴리에틸렌 필름을 입혔는데 이게 손톱에도 파일 정도로 무른 재질이어서 실망을 더했다.

삼성전자보다 앞서 폴더블폰을 만들었던 중국의 로욜이나 삼성전자와 경쟁하고 있는 화웨이의 경우 모두 폴리아미드를 커버 윈도우로 썼다.

가뜩이나 화웨이 메이트X처럼 바깥으로 접는 아웃 폴딩 방식은 충격에 취약해서 유리 재질을 쓰기 어렵다. 반면 갤럭시 폴드처럼 인 폴딩 방식은 곡률 반경(radius of curvature)이 1mm 미만으로 매우 작기 때문에 아무리 잘 만들어도 화면 가운데 세로 줄을 피할 수 없다. 둘 다 접히는 지점이 우그러지거나 들뜨는 현상은 마찬가지였다. 3만 번 이상 접었다 펴는 것까지 가능하다고 하지만 현재 기술력으로는 완벽하게 평평한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스마트폰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LG전자가 2019년 1월 CES(소비자가전쇼)에서 선보였던 롤러블TV도 비슷한 딜레마에 부딪힌 상태다. 시그니처 올레드 R이라는 이름의 이 둘둘 말리는 디스플레이의 TV는 떠들썩했던 이벤트 이후 1년 반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당초 1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릴 거라는 전망도 있었는데 결국 시장성이 문제가 아니라 수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출시 시점이 계속 늦춰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LG전자의 실패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롤러블 TV의 디스플레이는 OLED 패널처럼 유리 기판 위에 박막트랜지스터(TFT)와 유가 발광층을 증착해서 만드는데 디스플레이를 둘둘 말아 접으려면 유리 기판이 0.2mm 정도로 매우 얇아야 한다. 현재 기술력으로는 대량 양산할 정도로 공정을 개선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도 지난해 OLED의 대안으로 폴더블폰 디스플레이에 쓰고 있는 폴리아미드나 울트라 씬 글래스 등을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폴리아미드는 빛을 투과하지 않기 때문에 후면 발광 방식의 설계를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 울트라 씬 글래스는 당연히 투명하지만 경도가 보장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폴더블폰의 문제는 당분간 쉽게 해결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인폴딩 방식을 채택한 갤럭시 폴드는 곡률 반경을 키워보려고 힌지를 집어넣었는데 그만큼 접었을 때 두께가 늘어나게 된다. 아웃폴딩 방식은 상대적으로 인장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지만 디스플레이가 전면에 노출되는 데다 정작 강화 유리를 씌울 수 없기 때문에 선호가 엇갈릴 수 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첫째, 휘어도 깨지지 않는(Unbreakable), 둘째, 구부러지는(bendable), 셋째, 둥글게 말 수 있는(Rollable), 넷째, 접을 수 있는(foldable) 등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폴더블폰이나 롤러블TV는 구부리거나 접거나 펴는 단계까지 왔지만 여전히 제약이 많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와 관련해 최근 거론되고 있는 기술은 다음과 같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매우 얇고 매우 유연할 뿐만 아니라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야 한다.

탄소 나노튜브(Carbon nanotube, CNT)는 6각형 모양의 탄소 원자의 박막을 튜브 모양으로 말아서 탄성과 강도를 높은 첨단 소재다. 지름이 수십~수백 nm 정도로 매우 가늘면서 전기 전도성은 뛰어나다. 보통의 탄소 섬유는 1%만 변형시켜도 끊어지는데 탄소 나노튜브는 15%가 변형돼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섭씨 35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도 견딜 수 있고 정전지 차단 기능이 뛰어나 여전히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로 주목 받고 있다.

탄소 나노튜브가 원통이라면 그래핀(graphene)은 탄소 원자 1개의 두께로 이뤄진 2차원 평면이다. 두께가 1nm 미만으로 우주에서 가장 얇은 물질로 꼽히지만 강철보다 200배나 더 단단하고 열 전도성도 구리나 알루미늄의 10배에 이른다. 게다가 10% 이상 면적을 늘리거나 접어도 전도성을 잃지 않는 꿈의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디스플레이 전극으로 활용돼 왔던 인듐주석산화물(ITO, indium tin oxide) 대신에 그래핀으로 투명 전극을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그래핀은 광학 투명성이 98.7%라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투명 전극을 만들기에도 최적의 소재로 꼽힌다. 그래핀 전극은 투명하고 잘 깨지지 않아 초박형 고화질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진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그래핀은 두께가 얇은만큼 제작 과정에서 찢어지기 쉽고 잔류물이 표면에 남는 경우가 많아 아직 본격적인 제품과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최근에는 플렉시블을 넘어 스트레처블(stretchable) 디스플레이 연구도 활발하다.

카이스트 최경철 교수 연구팀은 최근 패턴화된 기판과 유연한 기판을 결합하는 방법으로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기판을 늘리고 난 뒤에 주름을 형성하는 방식을 시도했지만 주름의 형태가 일정하지 않아 화면의 왜곡이 발생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높은 신축성을 갖는 유연한 기둥과 멤브레인 형태가 결합된 새로운 기술을 시도했다.

최경철 교수팀은 외부 전원 없이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태양 전지와 OLED 소재를 옷감 위에 부착해 입는 디스플레이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경우도 봉지막이 관건인데 원자층 증착법과 스핀 코팅 등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일주일 간격으로 세탁을 한 뒤에도 태양 전지는 98%, 디스플레이는 96%의 성능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IBS(기초과학연구소) 나노구조물리연구단은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해 투명하고 늘어나는 전기 소자를 개발하고 있다. 그래핀은 잘 휘어지게 만드는 힘에는 잘 견디지만 늘리는 힘에는 쉽게 부서졌다.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전자의 이동을 제어하는 절연막도 함께 늘어나야 하는데 최근에는 주름진 산화막을 이용해 20%까지 늘어나는 전기 소자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퀀텀닷(Quantum Dot)도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꼽힌다. OLED가 유기 발광 소재를 쓰는 것과 달리 QLED(Quantum dot Light-Emitting Diodes)는 스스로 빛을 내는 QD 소재를 쓰기 때문에 백라이트가 필요 없고 지름이 2~10nm에 지나지 않아 훨씬 더 얇은 구조도 가능하다. 수명도 길고 번인(burn in) 현상도 거의 없다. 삼성전자 등이 QLED TV라고 선보이는 제품들은 QD 시트에 LCD 백라이트를 쏘는 방식이라 엄밀하게 QLED라고 하기는 어렵고 QD 필름을 추가한 LCD TV라고 부르는 게 맞다.

실제로 QLED라는 명칭을 두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묘하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 업체들이 벌써부터 시제품을 내놓는 등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한국전자정보통신연구원(ETRI) 유연소자연구그룹 이현구 그룹장은 ETRI 웹진과 인터뷰에서 “LCD에 OLED로 디스플레이 시장이 바뀌었듯이 OLED에서 QLED로 시장이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현재 개발 중인 잉크젯 프린팅(soluble) 방식의 본격적인 QLED 기술이 상용화되면 훨씬 싸게 훨씬 화질 좋은 디스플레이의 시대가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4. 플렉시블 또는 스트레처블을 넘어, 벌써 다가 온 미래.

스스로 빛을 내는 퀀텀닷 소재의 디스플레이가 개발되면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와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의 시대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입는 디스플레이는 물론이고 피부에 부착하거나 종이처럼 둘둘 말았다가 펼쳐 보는 디스플레이도 가능하게 된다. 퀀텀닷 뿐만 아니라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 등의 기술 개발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 소재의 혁신도 계속되고 있다.

투명 OLED도 이미 기술적인 문제는 거의 해결한 상태다. OLED는 백라이트가 필요 없기 때문에 소자를 작게 만들 수만 있다면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 투명 디스플레이를 활용하면 냉장고 문을 열지 않고도 냉장고 안을 들여다 보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 평소에는 냉장고 문이 디스플레이 스크린이 될 것이다.

TV를 굳이 말아 넣을 필요 없이 TV를 보지 않을 때는 그냥 투명하게 만들어도 될 것이다. TV 뒤쪽에 가족 사진을 걸어둘 수도 있다. 만만찮은 비용이 들겠지만 아예 창문을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백화점 매장의 쇼윈도에도 스크린이 들어서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공상 과학소설에서나 가능했던 투명 망토도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투명 디스플레이는 빛을 투과시키는 것이지만 투명 망토는 빛을 굴절 시키는 것이라 전혀 다른 기술이다. 아직은 실험실 단계에서나 거론되는 기술이다.

나노 테크놀로지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디스플레이의 진화다. 더 얇고 더 가볍고 더 유연한 디스플레이가 이제 생활 곳곳에 파고들 것이다. 모니터와 스크린을 넘어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이 디스플레이가 될 것이고 커뮤니케이션 환경도 이에 맞춰 진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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