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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을 읽다.

“나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였지만 왜 그랬을까. 이제부터는 미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다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이루어 낸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무일푼으로 전락해 아파트마저 잃고 길바닥으로 나앉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세명의 남자가 있다.

첫번째 남자 마르코 포그는 아버지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어머니의 이름은 에밀리 포그. 11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다. 어머니의 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걸로 봐서 어머니가 아마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보살펴 주던 삼촌까지 죽고 난 다음 포그의 삶은 엉망진창이 된다. 삼촌은 수천권의 책과 얼마 안되는 돈을 남기고 떠났다. 포그는 부지런히 책을 읽고 헌책방에 팔아치우면서 그걸로 먹을거리를 마련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나마 있던 책마저 모두 팔아치우면서 포그는 끝없는 절망에 직면한다.

“만일 키티 우라는 여자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굶어 죽었을 것이다. 나는 마침내 그 기회를 내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조건의 한 형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나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보게 되었다. 그녀를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살아난 포그는 두번째 남자 토마스 에핑을 만난다. 포그는 에핑의 집에 가서 그의 자서전 쓰는 일을 돕는다. 에핑은 86세, 돈은 많지만 눈이 멀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허약했다.

에핑은 자서전에서 자신이 사실은 줄리안 바버라는 화가였다고 털어놓는다. 바버는 서부로 여행을 떠났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뒤 이름을 에핑으로 바꾼다.

“거기는 너무 넓어서 얼마쯤 지나면 땅이 사람을 삼키기 시작하거든. 세상에서도 가장 이상한, 꿈에서나 보일 것 같은 그런 세상이었어. 온통 붉은 땅과 이상한 바위들, 거인들이 지은 어느 잊혀진 도시의 폐허처럼 땅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구조물들, 오벨리스크, 미나렛 궁전들, 그건 마치 구름으로 그림을 그린 것 같았어.”

에핑은 죽기 몇일 전, 평생 모은 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니까 우리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낯선 사람들에게 50달러짜리 지폐를 건네주자는 건가요? 폭동이 일어날 텐데요. 사람들은 미칠거고 우리를 잡아찢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받고는 무너지듯 주저앉아 울었고 어떤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또 50달러로는 성에 차지 않는 욕심 많은 사람, 우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의지할 데 없는 사람, 우리에게 술을 한잔 사고 싶어하는 낙천적인 사람,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하는 애처로운 사람,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에핑은 죽었다. 포그는 대학교수라는 에핑의 아들 솔로몬 바버에게 편지를 쓴다. 에핑은 이름을 바꾼 뒤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고 당연히 그 아들도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세번째 남자 솔로몬 바버는 엄청난 뚱보에다가 대머리였다.

“잔뜩 부풀어 오르고 살이 불거진 몸집을 한 그를 보고 있으려니 나 자신이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가 차지하고 있는 3차원이 다른 사람 보다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았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가장자리로부터 스며나와 그 주위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육중한 목의 주름위로 엄청나게 커다란 대머리가 솟아 있었다.”

바버는 좋은 사람이었고 두사람은 곧 친구가 된다. 그러나 사고로 죽기 직전 바버는 자신이 포그의 아버지일 수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바버는 25년전 포그의 어머니 에밀리 포그와 한번 잤다. 그 사실이 발각되면서 교수와 제자 두 사람은 학교에서 쫓겨났고 그뒤로 다시 만나지 못했다. 바버는 여러차례 에밀리 포그와 그 아들을 찾아다녔지만 에밀리 포그는 일찍 죽었고 그 아들 마르코 포그는 조카를 뺏길까봐 두려워한 포그의 삼촌 덕분에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첫번째 남자는 세번째 남자의 아들이고 두번째 남자의 손자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두번째 남자는 죽고 세번째 남자는 막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두번째 남자와 세번째 남자는 평생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두번째 남자는 늘 가까이 있었던 첫번째 남자가 자신의 손자라는 사실도 모르고 죽었다.

폴 오스터 칭찬하는 사람이 많길래 그래 얼마나 대단한가 보자 하고 한번 읽어봤다. 가끔 삶은 참 낯설다. 아찔할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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