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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갈택이어(渴澤而漁)면 기불획득(豈不獲得)이나 명년무어(明年無魚)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 얼마 전 한국금융연구원 주최의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연못의 물을 말려버리면 당장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겠지만 다음에 잡을 물고기가 없다는 뜻이다. 중국의 ‘여씨춘추’에 나오는 말이다.

윤 위원장은 외국 자본을 물고기에 연못을 우리나라 경제에 비유했다. “너무 몰아세우면 다 떠나버릴 수도 있으니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판단하고 대응하자”는 이야기였다. 물론 “외국 자본도 우리를 상생과 공존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원론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윤 위원장이 인용한 고사성어는 거꾸로 대입해 볼 수도 있다. 외국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얻는 투자수익이 물고기가 된다. 욕심을 너무 부려 연못을 망치면 물고기가 점점 더 줄어들게 되고 나중에는 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된다. 결국 이 어부는 다른 연못을 찾아 떠나야 한다.

연못은 하나인데 두 종류의 어부들이 있다. 연못을 망치더라도 당장 더 많은 물고기를 잡고 싶어하는 어부들이 있고 어떻게 하든 연못을 지켜야하는 어부들이 있다. 이 연못이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어부들을 쫓아낼 수도 없다.

이 ‘갈택이어’ 딜레마의 해법은 명확하다. 연못의 미래를 신경쓰든 쓰지 않든 어부들은 모두 이 연못의 물고기에 관심이 있다. 연못의 미래를 지키고 싶다면 모든 어부들에게 최소한의 규칙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물고기가 충분히 많이 있다면 어부들은 기꺼이 규칙을 받아들이면서 남아 있으려고 할 것이다. 규칙을 못 지키겠다면 떠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연못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외국 자본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왔다. 그래서 필요이상으로 다른 어부들에게 친절했고 그들이 우리 연못을 망치는 걸 방치해왔다. 어설픈 민족주의나 재벌 옹호 이데올로기로 흐르는 걸 경계해야겠지만 바야흐로 금융 세계화 시대, 우리의 연못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부들을 내쫓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장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와 금융 세계화에 저항하는 민중적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 움직임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대안적 상상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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