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이데올로기가 한승조와 맞물리는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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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가 우리나라에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왔는가.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식민지배가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일까.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다. 우리는 식민지배를 부정하면서도 식민지배가 가져온 자본주의 발전은 긍정하는 모순에 빠진다. 모순을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해법은 식민지배와 자본주의 발전이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그 주장을 믿어 버리는 것이다.

박정희의 독재는 조금 더 복잡하다. 박정희의 독재가 가져온 경제 성장은 어느 정도 명확하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독재를 부정하면서 동시에 그 성과를 긍정해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완용이나 한승조를 비롯한 친일파와 박정희 지지 세력, 그리고 수구 보수 세력은 정말 다들 한끝 차이다. 좀더 냉정하게 보고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경제 성장이 식민지배나 독재와 만나는 지점, 여기에 이 문제의 본질이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어떤 사람들은 식민지배나 독재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와 노동자들의 희생, 계급 양극화를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성장 이데올로기가 한승조와 맞물리는 맥락을 직시해야 한다.

월간 ‘말’ 4월호에서 이종태 편집부장은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북을 포함한 한반도 내 각종 정치 세력들은 민족주의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권력투쟁을 벌이게 된다. 이 권력투쟁에서 자유주의, 즉 사적 소유와 이윤활동의 무제한 자유를 지지하는 세력이 헤게모니를 차지하기는 점점 힘들어질 거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일본 제국주의와 박정희가 선점해버린 의제이기 때문이다. 여기 한국 자유주의의 위기가 있다.”

민족주의의 함정을 경계할 필요도 있다. 언젠가 김규항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오랜 적대감은 한국과 일본이 아니라 한국 민중과 일본 제국주의 사이에 있다. 일본 민중도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 진짜 문제되는 건 친일 자체가 아니라 그 친일의 성격이다. 적은 한승조 같은 친일파 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있다. 떠들썩한 민족주의는 가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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