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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1000시대, 죽음으로 내몰리는 증권 노동자들.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21, 2005

지난해 1월 광주 일곡동, 30세 황아무개씨가 19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황씨는 “빚을 아버지에게 떠넘기지 말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황씨는 서울의 한 투자신탁회사에서 근무하다가 2002년부터 증권회사로 자리를 옮겨 광주 상무지점에서 일해왔다. 평소 1억원에 이르는 빚 때문에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지난해 10월 원주 치악산 해발 1200미터 향로봉 인근, 증권회사 직원 40세 박아무개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지나던 등산객이 발견해 신고했다. 박씨는 거액의 빚을 지고 빚 독촉에 시달리다 가출해 가족들과도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박씨의 경우도 알려진 빚만 8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시신은 경찰 헬기로 병원에 옮겨졌다.

지난해에만 모두 6명의 증권회사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밖에도 출근 길에 쓰러지거나 점심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일어나지 못하는 등 업무를 보다 과로로 숨진 경우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돌연사와 자살로 숨진 증권회사 직원은 모두 10명이다. 증권산업노조 관계자는 “드러나지 않고 다들 쉬쉬해서 그렇지 실제로 자살이나 과로사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만 2명의 직원이 자살하고 1명이 과로로 숨진 하나증권은 업계에서 노동조건이 가장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이 회사 대졸 지점 영업직 직원의 고정 급여는 수당을 포함해서 1017만3600원. 월급으로 치면 84만7800원이다. 상여금은 전혀 없고 세금 등을 빼고 나면 최저 생계비에도 턱없이 못미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최저 생계비는 105만5000원이다.

결국 성과급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이 회사는 영업직원이 수익을 1000만원 이하로 올릴 경우 수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는 20%, 3000만원 초과는 30%로 성과급이 올라간다. 수익 1000만원을 올리려면 수수료 0.5% 기준으로 한달에 20억원 이상 주식을 거래해야 한다. 그래야 겨우 거래 금액의 10%인 100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거래는 고객이 집에서 컴퓨터로 주문을 내는 온라인 거래가 아니라 지점에서 직원이 고객의 주문을 받아서 처리하는 위탁매매를 말한다. 최근 몇년 사이 온라인 거래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한달에 20억원의 약정을 만들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회사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증권회사들이 직원들마다 손익분기점을 설정해두고 손익분기점을 넘을 때만 그 초과분에 대해 성과급을 지급한다.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면 성과급을 전혀 받지 못하거나 대우증권이나 동원증권 같은 경우는 심지어 기본급마저 깎기도 한다.

메리츠증권의 경우는 일반 직원에게 한달에 10억~14억원의 손익분기점이 설정된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손익분기점도 올라간다. 대리는 손익분기점이 25억원, 과장은 28억원, 부장은 33억원에 이른다. 손익분기점을 초과해 수익을 올리면 23~37%가 성과급으로 지급되는 식이다.

증권회사 직원들은 손익분기점을 택시회사 사납금에 비유한다. 지난해 같은 경우는 이런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 기본급만 받아가는 직원들이 수두룩했다. 증권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10명 가운데 7~8명은 손익분기점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1999년 주식이 한창 활황일 때보다 수입이 70%에서 많게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이야기다.

증권회사 영업직원들이 약정을 올리는 방법은 두가지다. 이른 바 고객을 많이 끌어들여서 자산를 늘리는 방법이 있고 적은 자산으로 거래를 많이 하는 방법이 있다. 20억원의 약정을 만들려면 1억원짜리 거래를 20번 할 수도 있고 1천만원짜리 거래를 200번 할 수도 있다. 약정을 올리려다 보니 주가가 조금만 올라도 팔고 다시 사는 일이 많아지게 된다. 이를두고 매매 회전율을 높인다고 한다.

문제는 고객의 허락없이 고객 돈으로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이 불법이라는데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직원을 믿고 돈을 맡겼으니 수익만 내준다면 어떻게 사고팔든 굳이 문제를 삼을 이유가 없다. 영업직원은 주식을 샀다가 수수료를 빼고 이익이 날만큼 오르면 재빨리 내다파는 수법으로 약정을 늘린다. 일단 팔았다가 다시 사더라도 수수료를 먼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역삼동에서 만난 한 증권회사 지점 영업직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5천만원으로 주식을 한번 사고 팔면 수수료만 50만원이 떨어집니다. 불법이라는걸 알지만 이번 한번만 더 하자, 그런 유혹을 참을 수가 없어요. 그러다가 이익이 나면 좋지만 손해가 나면 다급해지는 겁니다. 쫓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늘 불안합니다.”

현행 증권거래법은 고객이 지정해준 종목에 한해 수량과 가격, 매매시기를 영업 직원이 임의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제한적인 일임매매를 허용하고 있다. 증권회사는 이를 달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증권선물거래소에 보고해야 한다. 매매 종목도 10종목 이내로 한정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증권선물거래소의 증권분쟁 처리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분쟁 민원 324건 가운데 일임매매가 100건으로 30.9%를 차지했다. 일임매매를 둘러싼 분쟁은 2002년 40건에서 2003년 79건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드러나는게 이 정도일뿐 일임매매는 관행처럼 일반화돼 있다. 서울 잠실동의 한 증권사 지점장은 “대부분 증권사 지점에서 불법 일임매매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직원들에게 일임매매를 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불법이니까요. 다만 위에서는 약정을 늘리라고 압력을 넣고 직원들이 불법으로 일임매매를 하는 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겁니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증권회사들은 직원들의 불법행위를 방치 또는 조장하면서 약정을 올리는데 혈안이 돼 있다. 과거 금융감독원에 적발된 사례를 보면 8개월 동안 4만번의 선물옵션을 사고 팔아 60억원이 넘는 수수료를 챙긴 경우도 있다. 30억원의 투자원금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이 사건은 법정까지 갔다. 약정에 목을 매다 보니 고객들 수익은 뒷전이 된다.

증권거래법 107조에 따르면 불법 일임매매가 적발될 경우 영업직원들은 거래 규모와 책임 정도에 따라 견책에서부터 징계면직, 해고까지 당할 수도 있다. 대부분은 법적 절차까지 가지 않거나 가기 전에 개인적으로 일부 변상을 해주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 변상 의무는 없지만 증권회사 지점에서는 돈을 잃은 고객이 영업직원 멱살을 잡고 항의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다음은 여의도 증권가에 떠도는 오래된 유머다. 증권사 직원들이 가져야할 올바른 몸가짐이라고 한다.

“밤길 보행을 삼갈 것, 휴대폰은 반드시 발신번호를 확인하고 모르는 번호는 받지 말 것, 손님들이 주는 음식물을 조심할 것, 품위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헬멧을 착용할 것, 가족들을 친척집으로 보내 안전을 도모할 것, 다리 근처나 건물 옥상에서 멀리 떨어져 자살 충동을 억제할 것.”

일임매매만큼이나 문제가 되는 건 자기매매다. 영업직원들이 자기 돈이나 친척들 돈을 끌어모으거나 대출을 받아 주식을 사고 팔면서 약정을 올리는 걸 말한다. 현행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자기매매도 불법이다. 증권거래법 42조에 따르면 증권회사 임직원들은 누구의 명의로든 자기 계산으로 영업을 할 수 없다. 내부 정보를 악용하는 등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해서다.

서울 신내동의 한 증권사 지점 직원은 “고객이 크게 줄어들면서 지점장이 주변에 아는 사람들 돈이라도 끌어오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자기매매가 불법이라는건 염두에도 없다는 이야기다.

“주변의 돈을 끌어왔다가 손실이라도 나면 인간 관계도 다 망가집니다. 동료들 중에는 집을 담보로 잡히고 대출까지 받아서 자기 돈으로 약정을 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증권사 영업직원 치고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빚 안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금융감독위원회는 포괄적 일임매매와 자기매매를 대폭 허용할 계획이다. 이미 관행적으로 불법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데다 외국에서도 이를 규제하는 경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양성화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고 있다는 비난도 많다. 불법이 합법으로 양성화되더라도 영업직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김은아 증권산업노조 조직국장은 증권회사 영업직원들의 자살과 과로사를 구조적 타살이라고 부른다. 산업차원의 산재 문제로 부각하고 제도 개선과 전면적 투쟁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1994년 쌍용증권에서 영업직원이 고객과 분쟁으로 방화 자살했을 때만 해도 증권 노동자들이 대대적인 모금활동과 조문활동에 나섰습니다. 일임매매를 주제로 공청회가 열리는 등 제도개선 투쟁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고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구조적 타살이 더욱 늘어났는데도 아무런 조직적 대응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종합주가지수는 1000을 넘어섰지만 증권 노동자들은 지금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으로 끔찍한 몸살을 앓고 있다. 동원금융지주회사가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한데 이어 하나금융그룹이 대한투자증권을, 우리금융지주가 LG투자증권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원증권은 지점폐쇄를 단행했고 우리증권은 자본금의 42.5%에 이르는 1540억원을 유상감자하려다 노조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2000년 3만7124명이었던 증권산업 종사자는 2004년 9월 3만630명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굿모닝신한증권과, 한양증권, 한화증권, 세종증권, 부국증권 등에서 대규모 명예퇴직과 강제퇴직이 단행되면서 이른바 상시적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증권산업 종사자는 3만명 미만으로 추산된다.

유화증권과 세종증권은 자진청산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대규모 유상감자로 껍데기만 남게된 브릿지증권은 리딩투자증권에 매각되면서 사실상 청산 절차를 밟게 될 전망이다. 리딩투자증권은 자본금 1310억원 규모의 회사를 단돈 20억원에 인수하고 나머지 매각대금을 이 회사 자산을 팔아 지불할 계획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최근 이 회사 대주주인 BIH를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굿모닝신한증권은 지난해 10월 340명의 명단을 작성해 강제퇴직을 종용했다. 이 가운데 160명이 퇴직하고 80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나머지는 엉뚱한 부서로 배치되거나 지방으로 발령을 받은 상태다. 한양증권은 지난해 11월 관리직 여직원들 대거 영업직으로 발령, 이 가운데 상당수가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이밖에도 교보증권이나 SK증권, 굿모닝신한증권 등에서 임금을 삭감하고 성과급 제도를 확대 적용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겟모어증권은 동부증권으로 인수되면서 노조 조합원이 모두 노조 탈퇴각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두배가 넘는 금액을 배당으로 주주들에게 나눠줬다.

하나증권도 건물 매각 대금까지 끌어들여 화끈한 배당을 실시했다. 서울증권은 66명의 임원들에게 총 114만3000주의 스톡옵션을 나눠주기도 했다. 지난해 5월 결산 때는 44개 증권회사 가운데 33개사가 흑자를 냈다. 증권회사들의 화끈한 배당 파티는 올해 주총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까지 실적이 양호한데다 새해 들어 주가가 뛰어오르면서 시장이 활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1000을 넘어서면서 구조조정이 다소 지연되는 분위기지만 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다. 주가는 올라가지만 약정은 늘어나지 않고 약정을 못올리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대형 증권회사들은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중소형 증권회사들은 생존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그 위험과 고통은 모두 노동자들이 감내하고 있다.

증권회사들은 그동안 단체교섭권을 경총에 위임하고 노조와는 일절 교섭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난해 노조는 회사들을 부당노동과 교섭회피’행위로 고소했고 회사들은 이에 맞서 업무방해와 손해배상 등으로 잇따라 노조를 고소하기도 했다. 올해는 4년 만에 처음으로 단체교섭이 재개되고 산별교섭의 발판을 다질 계획이다.

증권산업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온라인와 간접투자의 확산, 그리고 과도한 수수료 인하 경쟁에서 비롯한다. 시장이 활황일 때는 지점을 늘리고 영업직원을 마구 뽑았다가 영업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직원들에게 그 부담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이정원 증권산업노조 위원장은 증권산업의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약정 경쟁에 의존하는 지금 영업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건 분명합니다. 잘 될 때는 마구 뽑고 안될 때는 자르고 할 게 아니라 영업직원들을 자산관리 전문가로 전환배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증권산업의 제도개선을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게 증권산업도 살고 회사도 살고 노동자가 사는 방법입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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