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람들’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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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은 이 영화의 세 부분을 문제 삼았다. 박정희의 여자 관계를 언급한 부분과 그가 일본말을 쓰는 부분, 심수봉이 일본 노래를 부르는 부분 등이다.

물론 박정희나 박지만에게도 부당한 명예훼손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있다. 그러나 실존인물의 역사적 사실이 명예훼손이 되는 경우라면 문제는 다르다. 사실 여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고 부당한 명예훼손의 가능성도 있다. 법원은 결국 애매한 타협을 선택했다.

누구나 그가 박정희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영화에는 박정희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법원은 영화의 앞뒤 3분 50초 분량의 실사 다큐멘터리 부분을 잘라내라는 결정을 내렸다. 다큐멘터리 부분만 없으면 형식적이나마 이 영화는 허구라고 우길 수도 있다. ‘효자동 이발사’처럼 말이다.

법원이 박지만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었던 나름의 배경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원의 이런 배려는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박지만을 조롱한 셈이 됐다. “이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네 아버지가 아니야. 됐냐.”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법원은 박지만을 가지고 놀았다.

법원의 이번 결정을 사전 검열이라고 보는 건 과민반응일 수도 있다. 검열은 국가 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경우를 말한다. 검열에는 국가 권력의 의도와 판단이 개입된다. 법원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걸 인정한다면 이번 결정의 기준은 과연 박지만의 명예가 부당하게 훼손되는가다. 또는 훼손되는 정도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만큼 심각한가다.

물론 법원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고 이번 결정에 법원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박정희라는 실존 인물을 가공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희화화할만한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됐지만 박지만이든 누구든 피해 당사자라면 부당한 명예훼손에 항의할 자격이 있다. 그, 정도의 판단은 법원의 몫이다.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뒤흔들고 웃음을 끌어내는 것은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고 위험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영화를 만드는데는 아무런 정치적 판단도 용기도 필요하지 않다. 줄거리를 모두 알고 있는 이 영화에서 그나마 새로운 부분은 구체적인 상황과 인물 묘사고 그 부분은 창작이거나 허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역사적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만으로 이 영화는 역사를 냉소하고 조소하는 책임을 벗어날 수 있다. “이게 모두 사실인데 어쩔 거야?”

이 영화는 역사를 영화에 끌어들이면서 아무런 해석도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역사는 그냥 영화가 되고 언뜻 해석도 판단도 무의미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섬뜩한 일이다.

(임상수 감독은 법원의 결정에 항의하는 뜻으로 3분 50초 동안 검은 화면을 그대로 내보낼 거라고 했지만 영화관에서는 5초 남짓한 정도만 남겨놓고 건너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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