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권 동원해 한나라당 끌어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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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초선 의원 108명은 한때 ‘108 번뇌’라고 불리기도 했다. 의욕이 넘쳐났고 그만큼 선배 의원들과 좌충우돌 부딪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선배 의원이 “초선 의원들 군기 좀 잡아야겠다”고 했을 때 “한번만 더 그런 소리하면 물어 뜯어버리겠다”고 맞받아쳤던 의원이 바로 임종인 의원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누군가 물어뜯기라도 할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그는 숨기지 않고 그대로 터뜨렸다. 그는 직설적이고 단순명쾌했다.

“어떻게 가능한 일만 하겠나. 동학혁명이나 독립운동이나 반독재투쟁이나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희망이 있어서 한 게 아니다. 해야 되니까 했던 거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역사적·민족적 요구다. 성공 가능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부딪혀야 한다. 우리는 지금 국보법을 폐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맞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제안한 대체입법 절충안을 놓고 5시간 가까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의총은 비공개로 진행됐고 나중에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을뿐 당론 변경을 제안하는 자리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임 의원의 이야기는 다르다.

“당 중진이라는 사람들이 한나라당과 밀실 합의를 했다. 의원들이 국보법 폐지 농성을 하고 있는데 당 지도부는 대체입법 절충안이라는 걸 들고 왔다. 국보법에서 이름만 바꾼 대체입법은 죽어가는 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거나 마찬가지다. 폐지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만도 못한 짓이었다.”

– 당시 의총 분위기를 말해 달라. 밖에서 듣기로는 대체입법 수용 여부를 표결에 붙이면 당이 박살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고함소리도 들렸다. 정청래 의원은 밖에 나와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포기했다는 게 한스럽고 가슴 아프다. 표결을 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했으면 그대로 통과될 분위기였다. 대체입법으로 가자는 의원들이 상당히 됐다. 분위기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면서 일단 당론을 유지하기로 겨우 의견을 모았다. 폐지까지는 못갔지만 그나마 대체입법을 막은 것만 해도 선방한 셈이다.”

– 분위기가 왜 그렇게 기울었나.

“처음부터 대체입법을 주장하는 의원들도 있었고 오래된 싸움이 다들 많이 지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당 지도부에 국보법을 폐지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이부영 당시 당의장을 비롯해 기획자문회의 사람들 말이다. 국보법 폐지가 밥 먹여주느냐고 말하는 의원도 있었다. 심지어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하는 사람들은 모두 민주노동당 당원이라고 말하는 의원도 있었다. 부끄럽고 답답한 일이다. 말이 안통한다.”

– 법사위 상정이 가로막히고 의장이 직권상정을 거부하는데 다른 대안이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했던 것 같다.

“엉뚱한 핑계다.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152석이나 차지하고 있는 여당이 법안하나 통과 못시킨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 의지의 문제다. 경호권을 발동해서 한나라당 의원들을 모두 끌어내기라도 했어야 했다. 지도부가 나서서 밀어붙였으면 지금쯤 우리는 국보법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 힘으로 밀어붙였으면 탄핵 때 같은 참담한 상황이 연출됐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내심 그런 상황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국민들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의장에게 계속 고집부리면 민주주의의 적이 된다는 압박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국민들 지지를 얻기 보다 한나라당과 적당히 밀실 협의로 해결하려고 했다.

정치인은 여론을 존중하고 따라야겠지만 때로는 선도할 책임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론을 겁내면 아무 것도 못한다. 국민들은 국보법의 내용과 의미를 잘 모를 수도 있다. 정치인들은 세금을 받으면서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국보법 폐지를 비롯한 개혁입법은 여론도 여론이지만 역사를 보고 해야 한다. 지도부가 정말 의지가 있으면 공청회나 청문회, TV토론 등을 통해 국민들 지지기반을 모으는 작업을 병행했어야 했다.”

– 문제는 2월 임시국회에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데 있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법안 상정을 저지할 것이고 의장도 직권상정을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도 그때보다 더 가라앉아 있다. 사실상 국보법 폐지는 물 건너간 거 아니냐는 전망도 많다.

“원칙대로 가면 된다. 열린우리당의 당론은 여전히 국보법 폐지다. 국보법 폐지는 여야합의가 아니라 다수결과 힘의 논리로 진행돼야 한다. 그게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열린우리당의 과반의석은 국보법을 폐지하라는 민의로 읽어야 한다. 2월에 하겠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해야 한다. 그게 민의를 대변하는 길이고 열린우리당의 유일한 살 길이다. 이번에는 경위들을 동원해서라도 한나라당 의원들을 모두 끌어내자고 할 생각이다. 의장이 직권상정해야 한다. 그게 의회민주주의다. 이번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열린우리당의 대표적인 강경파로 불리지만 임 의원은 강경파 보다는 원칙파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는 친노 직계와 중도파, 재야파, 개혁당파, 당권파 등 열린우리당의 이른바 5대 계파 가운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그는 자칭 민주개혁파다. 뜻이 같으면 누구하고도 손잡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계파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그가 주장하는 원칙은 상대적으로 더욱 강경하게 비춰진다. 그는 당 지도부의 무능력과 그로 인한 당의 분열양상을 우려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열린우리당의 가장 큰 분열은 민주개혁파와 수구파의 대립에서 비롯한다.

“대체입법을 받아들이자는 의원들을 보면서 엄청난 거리감을 느꼈다. 이 사람들, 민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심지어 누가 자기들을 지지해줬는지도 모른다. 지지층과 날마다 어울리는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지는 서민들로부터 받으면서 국회의원이 돼서 만나는 사람은 기득권층이다. 다선의원이 될수록 민의에서 멀어지고 기득권층의 논리에 물드는 것 같다. 나는 그래서 다선의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민주노동당 같은 이념 정당이 아닌 이상 의원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런 의견들을 모아서 당론을 결정하고 밀고 나가는 것이 지도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지금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정체성도 명확하지 않고 지지기반도 모호하다. 나머지 정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지도부는 계속 옛날 3김 시대 밀실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이를테면 4자 합의도 대표적인 구태 정치 가운데 하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원내대표들이 모여서 합의하면 상임위 결정도 모두 무시된다. 계파별 대표자들로 구성된 비대위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계파가 없는 의원의 의견은 아무도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적당히 합의하고 적당히 실용주의를 걸을 뿐이다.”

– 민생 문제는 어떤가. 먹고 사는 문제가 이렇게 힘든데 웬 개혁 타령이냐는 의견과 개혁과 민생은 함께 굴러가는 것이라는 당위론적 의견이 맞서고 있다. 노무현 정부 개혁 정책의 후퇴와 연관해 설명해 달라.

“이를테면 국보법이나 개혁입법은 깨끗한 물과 공기의 문제고 민생과 경제관련 입법은 따뜻한 밥과 반찬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둘다 소홀해서는 안되겠지만 선결돼야 할 과제가 있다. 국보법이 폐지되고 개혁이 완성돼야 그때 민생도 챙길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정의가 살아 숨쉬지 않는데 어떻게 경제가 성장하고 어떻게 민생을 챙길 수 있겠는가. 노 대통령도 이런 민의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지지기반이 모호한 건 사실이지만 그 최대공약수는 국보법 폐지다.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 지난해 말부터 열린우리당의 지지기반은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도 뚜렷한 개혁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대로 가면 4월 보궐선거에서 크게 패배할 거라는 전망이 많다.

“의원들끼리 우스개소리로 지난해 한나라당은 B+학점, 열린우리당은 C학점을 받았다고 하더라.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열세면서도 얻을 건 다 얻었고 열린우리당은 4대 개혁입법 처리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물러나는 상황까지 왔다. 개혁입법 때문에 물러났으면 새로운 지도부는 앞으로 열심히 더 잘하겠다고 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아직도 민생 타령만 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열린우리당은 끝장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나는 국보법을 폐지하고 개혁입법을 통과시키는 것만이 이번 보선에서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왜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 지지층까지 신경을 쓰는가. 그건 대통령이나 할 일이다. 대통령은 누구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든 모든 국민을 고려해야겠지만 정당은 자기 지지층의 이해를 대변하고 결속시키면 된다. 한나라당이 세금 인하를 추진하고 민주노동당이 부유세 신설을 추진하는 것처럼 열린우리당도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해야 한다. 지지층을 명확히 설정하고 결속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임 의원은 상임위원회 활동에서도 돋보이는 주장을 쏟아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나 군 검찰 개혁 문제에서도 한발 앞선 주장을 펼쳐왔고 특히 남북 군사력 비교 문제에 많은 열정을 쏟고 있다.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국방위원회에 자원해서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 자료를 인용, 우리 군사력이 북한과 비교할 때 육군은 80%, 공군은 103%, 해군은 90%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임 의원은 이 같은 비교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한다.

“지난 3년 동안 국방비를 70조나 증액했다. 북한의 15배나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떻게 북한보다 전력이 떨어질 수 있는가. 북한 군사력 우위론은 전력 증강을 합리화시키고 안보 불안감을 조성하려는 목적에서 수십년간 고정관념으로 뿌리내려져 왔다. 남한은 잠재군사력이나 전쟁수행능력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현존군사력에서도 북한을 크게 압도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 뒤집을만한 근거가 충분히 있다. 올해에도 이 부분에 전력을 다할 계획이다. 지켜봐도 좋다.”

– 군축 주장 등은 국방위 의원들 사이에서도 크게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원칙론으로 흐른다는 비판도 있다.

“설득을 하고 다들 공감은 하는 것 같은데 지지를 못 얻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여당 의원으로서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 같다. 파병철회 문제도 마찬가지다. 나는 원내대표나 당 지도부가 아닌 이상 의원이 지나치게 여당의 책임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그게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 올해 각오와 계획을 말해달라.

“열린우리당의 내부 분열과 정체성의 문제는 결국 곪아서 터질 거라고 본다. 지도부가 못하면 당원들이 할 거라고 본다. 국보법 폐지와 개혁입법 쟁취가 최우선 과제다. 한나라당이 강조하는 상생이라는 구호에 넘어가면 안된다. 자기들 수가 많을 때는 수로 밀어붙이고 이제 와서 상생하자고 한다.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고 정의가 결국 승리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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