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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브라이트만.

어떤 여자들은 평생 ‘누구의 아내’로 불리기도 한다. 사라 브라이트만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는 ‘엔드루 로이드 웨버의 아내’였다.

엔드루 로이드 웨버는 1986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만들어 아내에게 선물한다. ‘오페라의 유령’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싶은 열망으로 악마와 계약한 천재 작곡가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이 뮤지컬은 1988년 토니상 7개 부문을 휩쓴 것을 시작으로 여태까지 15개 나라 91개 도시에서 공연돼 4조원 이상을 벌어다 줬다. 이 뮤지컬을 본 사람은 무려 6천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AP통신은 ’20세기 가장 성공한 쇼’로 ‘오페라의 유령’을 꼽았다.

주연을 맡은 사라 브라이트만은 스타가 됐고 엔드루 로이드 웨버는 돈 방석에 앉았다. 1995년 통계에 따르면 엔드루 로이드 웨버는 영국에서 25번째 가는 부자다. 재산이 모두 3억8천만 파운드(5억9500만 달러, 7735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둘은 1990년에 갈라선다. 그리고 둘의 운명도 갈린다.

이혼한 사라 브라이트만은 이탈리아로 건너가 정통 벨칸토 창법을 배운다. 뮤지컬을 떠나 어릴적 꿈이었던 클래식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지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호세 카레라스와 주제곡 ‘아미고스 파라 시엠프레’를 부르기도 했다. 지난 1994년 플라시도 도밍고와 일본 순회공연에 나서 푸치니와 베르디의 아리아를 불러 갈채를 받았다. 1996년에 내놓은 첫 앨범 ‘타임리스’는 300만장이나 팔렸다. 이제 아무도 그를 ‘엔드루 로이드 웨버의 아내’로 부르지 않는다. 그는 이제 클래식과 팝을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 음악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그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사라 브라이트만이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동안 엔드루 로이드 웨버는 형편없이 무너져 내렸다. 1996년에 내놓은 ‘휘슬 다운 더 윈드’는 평단의 혹평을 받고 브로드웨이 문턱도 못밟아 봤다. 1997년에 내놓은 ‘선셋대로’로 마찬가지다. 1300만달러(200억원)을 쏟아붓고 제작비의 80%정도 밖에 못건졌다.

그는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많은 뮤지컬이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고 있고 뮤지컬 뿐만 아니라 음반 저작권 수입도 엄청나다.

그러나 지금 엔드루 로이드 웨버에게는 지난날의 번뜩이는 재능이 사라지고 없다. ‘오페라의 유령’은 사라 브라이트만이 옆에 있었기에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재능은 10년전 사라 브라이트만과 함께 떠나버렸을지도 모른다.

사라 브라이트만이 지난달 네번째 앨범 ‘클래식’을 냈다. 엔드루 로이드 웨버의 사라져 버린 재능의 흔적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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