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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자본주의가 경제 말아먹는다.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6, 2004

우리는 흔히 주가가 뛰어오르면 우리 모두가 돈을 벌고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터무니 없는 착각이다. 실제로 우리는 주가가 뛰어오를 때마다 더욱 가난해진다. 주식투자를 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주식시장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 주식시장의 오래된 비밀을 공개한다. 그동안 이 비밀은 숨겨지거나 잘못 이해돼 왔다. 우리가 주식시장의 주주 자본주의와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의 생존이 달린 절박한 문제다.

먼저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1997년 IMF 외환위기 무렵, 우리나라 증권거래소 상장주식의 시가총액은 57조원까지 줄어들었다. 그리고 7년 뒤인 지난해 12월, 시가총액은 다시 400조원 규모로 늘어났다. 그동안 새로 상장된 종목들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어림잡아 계산해도 무려 343조원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721조원의 절반 정도 되는 규모다.

우리는 이 343조원의 출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년 전과 비교해도 시가총액은 1995년 12월 144억원에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돈은 모두 어디서 와서 모두 누구의 돈이 된 것일까. 그때와 비교해서 우리는 그만큼 부자가 된 것일까.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건너온 사모펀드, 론스타는 2003년 9월 외환은행의 지분 51.0%를 한주에 평균 4245원씩 1조3834억원을 주고 사들였다. 그 주식은 지난해 12월 14일을 기준으로 7800원까지 뛰어올랐고 론스타의 주식 시가총액은 2조5419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불어났다. 시세차익은 모두 1조1585억원에 이른다. 론스타가 벌어들인 이 엄청난 이익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얻으려면 주가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가격과 가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주식시장은 주식이 사고 팔리는 시장이고 주가는 주식이라는 상품의 가격이다. 핵심은 주가가 오른다고 해서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는데 있다.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주식의 가격이 다른 재화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형의 재화와 비교하면 이해가 더 쉽다. 금 값이 오르면 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돈을 번다. 물론 금 값이 오른다고 해서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금은 그대로 금이고 다만 다른 재화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비싸졌을 뿐이다. 결국 그들의 부가 늘어나는만큼 금이 없는 사람들의 부는 상대적으로 조금씩 줄어든다.

부동산 시장과 비교할 수도 있다. 부동산 가격이 뛰어오르면 부동산을 가진 몇몇 사람들만 부자가 되고 부동산이 없는 다른 사람들은 그만큼 더 가난해진다. 마찬가지로 담배 값이 오르고 담배회사가 더 많은 이익을 챙기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나 피우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 상대적인 손실을 본다.

넓게 보면 시장은 결국 통털어 제로섬이고 누군가가 돈을 버는만큼 다른 누군가는 직접적으로든 상대적으로든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만 놓고 보면 제로섬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높아진 주가는 결국 주식시장 외부의 상대적인 저평가를 초래하고 결국 제로섬이 된다. 그래서 주가가 오를 때 주식시장 바깥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진다.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사회의 부가 주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빠져나와 주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종합주가지수가 1000이나 2000까지 뛰어오른다고 해도 우리나라가 부자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것은 주식 투자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조작된 환상이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으로 벌어들인 1조1585억원은 주식시장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가치가 아니다. 론스타가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어들이는만큼 주식시장 외부의 가치는 떨어진다. 이를테면 주식시장에서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는 셈이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시장 외부에서 사회의 부가 흘러들어간다. 오르면 오를수록 주식이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진다.

그렇다면 주가는 어떻게 오르는 것일까.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 1년 3개월 동안 외환은행의 사업구조를 철저하게 돈 되는 사업을 중심으로 개편했다. 기업에 돈을 빌려주기보다는 그 돈을 쌓아두거나 내부 부실을 메꾸는데 썼고 심지어 지점을 폐쇄하는 등 사업규모를 줄이고 직원을 잘라내면서 수익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 결과 외환은행은 지난해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내게 됐고 주가도 두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외환은행의 기업대출은 2003년 말 21조6056억원에서 지난해들어 9월말까지 20조4205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외환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가운데 개인사업자 비중은 19.8%로 업계 최저 수준이다. 업계 평균은 36.9%다. 음식과 숙박, 건설, 도소매 등 이른바 위험산업이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9.0%로 업계 평균 45.3%보다 크게 낮다. 그 결과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업계 최저 수준인 1.3%까지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구조조정도 주가를 끌어올린 한 매력이 됐다. 지난해 500명을 감원한 외환은행은 올해 판관비를 200억원 가량 줄일 수 있게 됐다. 수익 대비 비용 비율도 39.7%에서 35.5%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외환은행은 추가 구조조정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다른 은행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3분기까지 국내 은행들 순이익은 모두 5조6793억원으로 2003년 1조6039억원보다 4조754억원이나 늘어났다. 그야말로 사상 최대의 실적이다. 위험부담이 큰 기업대출을 줄이고 손쉬운 가계대출을 늘리는 사업전략은 이제 유행이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 대출금에서 차지하는 기업대출 비중은 1998년 말 75.9%에서 지난해 9월 기준 52.3%까지 떨어졌다. 가계대출 비중은 거꾸로 24.1%에서 47.7%까지 두배 이상 늘어났다.

멀리 보면 지금 우리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투자와 고용의 부진도 최근 은행의 이런 변화 탓이다. 은행이 은행의 역할을 거부하고 당장 눈앞의 이익을 쫓아 수익성을 강화하는데 욕심을 부리는 상황이다. 이제 기업은 공장을 지을 돈이 없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당연히 내수도 한계에 부딪힌다. 그런데도 경제가 망가지거나 말거나 은행의 수익이 늘어나면 당연히 주가는 따라 오른다. 스스로 목을 조르는 꼴이지만 그 유혹은 치명적이다.

론스타 같은 투기펀드는 세계를 휩쓸고 다니면서 주식시장을 약탈한다. 기업의 방향을 장기적인 성장이 아니라 단기적인 이익에 맞추면 이익을 늘릴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성장성은 한계를 맞겠지만 기업의 이익은 늘어나고 주가도 그에 맞춰 뛰어오른다. 투기자본은 이 과정에서 얻은 엄청난 시세차익을 먹고 자란다. 충분히 이익을 챙기고 나서 털고 떠나면 그만이다.

주주들은 기업의 미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은 10년 뒤를 내다보기보다는 1년 뒤, 짧게는 한달이나 일주일, 또는 하루 뒤를 내다보고 주식투자에 뛰어든다. 투기자본은 주주들의 그런 투기적 속성을 부추긴다. 윤소영 한신대학교 교수는 주식시장이 이처럼 투기자본의 도박판으로 전락한 역사적 배경에 주목한다.

“미국은 1965년부터 자본축적과 이윤율 저하의 위기를 맞았다. 다국적 은행 자본의 성장으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1980년대 들어 중남미의 외채위기로 좌절된다. 결국 미국은 저금리 정책을 도입하고 주식시장 육성을 통한 성장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다국적 금융자본 또는 투기자본이 성장했다.”

윤 교수는 고금리와 예대마진을 통한 은행산업의 성장은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결국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거대한 이익을 끊임없이 만들어낼 유일한 돌파구는 주식시장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저금리 정책을 도입하면서 미국 주식시장은 1990년대 들어 10년 가까이 폭발적인 호황을 구가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기업들은 철저히 성장성 중심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주가 상승이 계속될 수 없다는데 있다. 끝없이 성장할 수 없다면 기업의 수익은 언젠가 한계에 이르게 되고 주가도 언제까지나 마냥 오를 수는 없다. 그래서 미국의 다국적 금융자본은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본질이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세계를 모두 미국의 주식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처럼 주가가 낮고 빼먹을 게 많은 나라가 그 사냥감이 된다.

윤 교수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세계 경제는 빠른 속도로 은행 중심에서 주식시장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모든 게 주가로 환산된다.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우고 새로운 수익성을 확보하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전통적으로 은행 중심 경제에 의존해왔던 일본과 유럽도 이미 버텨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윤 교수는 미국과 반대의 길을 걸으면서 은행 중심 경제구조를 고집했던 일본이 지난 10년 동안 바닥없는 불황에 빠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금리가 확산되면서 이미 은행 중심의 시대는 끝났다. 주식시장에 뛰어들지 않으면 자본은 이제 그 규모를 유지할 수 없다. 이제 버티려고 해도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만 봐도 상황 판단이 쉽다. 1997년 IMF는 우리나라 외환위기의 원인이 은행 중심의 경제구조와 기업의 경영 불투명성에 있다고 지적하고 주식시장 활성화를 자금 지원의 요구 조건으로 내걸었다. 정부는 금융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처리를 목표로 기꺼이 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7년 뒤, 전체 주식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주가는 여전히 제자리지만 주가가 한번 출렁거릴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빠져나간다.

주식시장 중심의 경제구조는 이미 그 폐해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업의 설비투자 부진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설비투자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2.8%에서 2003년 9.5%로 줄어들었다. 1998년 이래 가장 낮은 규모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설비투자 규모는 1995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업이 더 이상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새로운 기계를 들여놓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언젠가부터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당장의 주가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설비투자를 하려면 그만큼 이익이 줄어들고 당장 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설비투자 계획을 발표한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는 경우도 흔하다.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신규 사업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주식시장이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 설비투자 재원 가운데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 72.8%에서 지난해 15.4%로 크게 줄어들었다. 기업들이 더 이상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거나 빌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돈이 없는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이 있는 기업도 주식시장의 압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됐다.

유철규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이를 두고 “한국 경제의 공격성이 거세됐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생산 세계 5위를 비롯해 선박 건조량 1위, D램 반도체 시장 점유율 38% 등의 과거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끌어왔던 공격적인 설비투자가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 이상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유 교수는 철저하게 수익성을 강조하는 주식시장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설비투자 선행지표인 제조업 기계수주 증감율은 지난해 6월 18.1%를 기록한 이래 7월부터 10월까지 계속 마이너스 성장에 머물렀다. 특히 9월과 10월에는 각각 -8.9%와 -8.1%로 감소폭이 컸다. 선행지표가 6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올해도 설비투자는 침체 분위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짚고 넘어갈 부분은 이런 상황에서 주식시장이 과연 기업에 어떤 의미를 갖느냐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놀랍게도 주식시장에서 기업에 흘러들어간 돈 보다 거꾸로 빠져나온 돈이 더 많다. 2003년 기준으로 유상증자와 신규 상장 등 기업에 흘러들어간 돈은 모두 11조1686억원,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으로 기업에서 빠져나간 돈은 15조1557억원에 이른다. 빠져나간 돈이 4조원 가까이 더 많다는 이야기다.

정승일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는 이런 상황을 “주식시장의 기업 수탈”이라고 규정한다. 주식시장이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기능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이제는 기업의 이익을 합법적으로 수탈하는 통로로 전락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주식시장에 투자된 자본 100달러 가운데 기업의 생산적 투자에 들어간 돈은 1달러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99달러는 모두 투기에 사용됐다. 정 교수는 “주식시장이 가장 발달한 미국과 영국에서도 주식시장이 기업의 생산적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을 멈춘지 50년이 지났다”고 지적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미국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은 1조2700억달러에 이른다. 미국 국내총생산의 10.9%에 이르는 그야말로 사상 최대 규모다. 그러나 이 신문은 “미국 기업들이 돈을 쌓아 두고도 설비투자를 꺼리고 있다”며 “투자와 고용 부진이 경제성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컴퓨터 장비회사, 시스코의 경우 지난해 6개의 기업을 사들이면서 3억5000만달러를 투자한데 이어 자사주 매입에 20억달러를 썼다. 이 회사는 여전히 2분기 현재도 193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현금과 기타 유동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갈수록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 유상증자는 2002년 412건에서 2003년에는 245건으로, 지난해는 144건으로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월에는 한건의 유상증자도 계획돼 있지 않다. 신규 상장과 공모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배당은 사상최대 규모로 늘어나고 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331개 12월 결산 법인의 지난해 예상 배당총액은 9조6107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2003년 7조2266억원보다 2조원 이상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여기에다 3월과 6월, 9월 결산법인을 합할 경우 배당총액은 모두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이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주식시장 중심의 경제구조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시세차익을 빼고 주식시장의 배당수익률만 따져도 4.3%로 이미 은행의 이자 수익율을 넘어섰다. 자본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주식만큼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투자수단은 이제 없다.

더 큰 문제는 주식시장이 만들어 내는 기업의 양극화다. 증권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혹독한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기업에는 여전히 돈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인다. 12월 결산상장법인 449개사의 현금성 자산이 9월말 기준 46조728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23% 늘어났다.

놓치면 안될 부분은 이 가운데 상위 10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1조8011억원으로 46.7%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전체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9조1128억원 늘어났는데 상위 5개 기업에서만 6조2824억원, 68.6%를 차지했다. 상위 10개 기업까지 보면 8조8103억원, 96.7%에 이른다.

결국 상위 대기업을 뺀 나머지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은 오히려 크게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한쪽에서는 돈이 넘쳐나는데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금이 말라붙어가는데도 은행 문턱조차 밟지 못하는 극심한 양극화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주가가 오를 수 있는 기업만 자본의 관심을 끈다.

이런 양극화는 기업들 실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을 보면 삼성전자가 8조9614억원으로 전체 495개 상장회사 39조1155억원의 22.9%를 차지했다. 상위 10개 기업까지 보면 23조2767억원으로 59.5%가 된다. 10개 기업이 전체 기업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이다. 나머지 기업들의 실적은 참담한 수준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런 착시현상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분 비율은 45%를 넘어섰고 대부분 돈 잘 버는 상위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5월 증권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 지분 비율이 40% 이상인 기업은 전체 9.3%인 47개사였는데 이들의 지난해 1분기 순이익은 전체 순이익의 56.4%를 차지했다. 이들 기업들은 부채비율도 85.0%밖에 안되는데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도 평균 훨씬 높았다. 그야말로 알짜배기 회사들만 사들인 셈이다.

당연히 이들이 받는 배당도 엄청난 규모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2003년 전체 배당금 6조3010억원 가운데 43.9%인 2조7784억원을 가져갔다. 같은 비율로 계산하면 올해에도 4조원 이상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배당으로 빠져나갈 전망이다.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의 목표로 잡는 주주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이다. 주주의 이익은 결국 자본의 이익이고 기업은 자본의 이익에 굴복하고 기꺼이 그들의 미래를 희생한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지금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2003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주식 투자자는 모두 394만명으로 전체 경제인구의 17.2%에 이른다. 외국인과 법인을 포함한 통계다. 얼추 6명 중에 1명 꼴로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빈부격차는 두드러진다. 2만여명의 투자자가 전체 주식의 77.0%를 차지하고 나머지 392만명이 23.0%를 나눠갖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의 정의석 부장은 지난 15년 동안의 주가 움직임을 분석해 의미심장한 통계를 내놓은 바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오르락 내리락하며 제자리를 걷고 있는 동안 상위 30개 종목으로 구성한 지수는 3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오르는 종목만 오르고 나머지 종목들은 철저하게 소외됐다는 이야기다. 정 부장은 “사회의 중산층이 무너진 것처럼 주식시장에서도 중간가격의 종목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식시장에서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는 몇몇 종목들만 살아남고 내수 종목을 비롯한 나머지는 모두 버려지는 상황이다. 수정 주가를 감안하면 상위 30개 종목을 뺀 나머지 종목들의 주가는 지난 15년 동안 10분의 1로 떨어졌다.”

결국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극소수의 큰손 투자자와 극소수의 대형 종목 위주로 굴러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게 바로 우리 주식시장에서 다국적 투기자본의 기업 수탈이 진행되는 방식이다. 이제 자본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기업은 버려지고 소외된다. 공장을 팔고 직원을 잘라서라도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기업의 주가가 오른다.

론스타가 1조1585억원을 벌어들인 것처럼 주가가 오를 때마다 우리 사회의 부가 주식시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상당부분이 결국 외국인 투자자들 또는 투기자본의 몫이 된다. 안타깝게도 주식시장이 우리 경제와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언뜻 주가가 오르는 것과 함께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수익성은 미래를 희생하고 얻은 대가다. 주식시장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없다. 주가가 오르고 몇몇 투자자들은 돈을 벌겠지만 그들을 뺀 나머지 경제주체들은 갈수록 가난해진다.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성장의 한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투기자본이 아니라 자본의 투기적 속성이다. 론스타를 막아도 또 다른 론스타가 오고 또 다른 외환은행이 넘어간다. 우리는 주식시장에 성장의 동력을 빼앗기고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주주 자본주의를 넘어설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가 이 거대한 자본의 탐욕을 멈춰세워야 한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못넘는 이유.

그림 : 종합주가지수와 국내총생산. (단위 : 10억원) (이정환닷컴)

주가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반영하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의 기대를 더 많이 반영한다. 주가가 오를 거라는 기대가 넘쳐날 때 주가는 얼마든지 오른다. 전설적인 주식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일찌감치 멋진 격언을 남겼다. “바보보다 주식이 많으면 주가가 떨어진다. 거꾸로 주식보다 바보가 많으면 주가가 오른다.”

주식시장을 보는 가장 극단적인 비유는 16세기 유럽을 뒤흔들었던 튤립 열풍이다. 그 전말은 대략 이렇다. 튤립이 인기가 있나 싶더니 언젠가부터 튤립 뿌리 값이 엄청나게 치솟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집을 팔고 보석을 팔아 튤립 뿌리를 사들였다. 그때 튜립 뿌리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50달러짜리 튤립 뿌리가 8000달러를 넘어설 무렵 사람들은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튤립 뿌리를 내다팔기 시작했고 가격이 폭락하면서 결국 튤립 뿌리는 양파 뿌리만큼의 값어치도 나가지 않게 됐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1995년 1월 종합주가지수는 1013.57을 찍고 주저앉았다. 그러다가 한창 IMF에 두들겨 맞던 1998년에는 280.00까지 빠지기도 했다. 그 뒤, 1999년에 잠깐 1000을 넘어섰다가 2001년 9월 미국에서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을 때는 468.76까지 빠지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14일 기준 종합주가지수는 849.40이다. 돌고 돌아 겨우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주가의 움직임은 경제 규모와도 거의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국내총생산은 1994년 428조원에서 2004년 추정, 694조원으로 늘어났는데 종합주가지수는 오히려 크게 떨어졌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의 문턱을 제대로 넘지 못하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1000 이상 주가에 대한 기대감이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600이나 700, 800 근처에서 샀던 투자자들이 1000에 가까워지면 모두 주식을 내던질 텐데 그걸 받아줄 투자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금은 바보보다 주식이 많은 시점이다.

투자자들에게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 이외에 장기적인 성장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래서 주가가 오르면 다같이 주식을 내다판다. IMF 이후 7년 동안 인수합병이나 구조조정, 부실청산 등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숱한 노력들도 성장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에는 부족했다. 단기적인 수익성과 장기적인 성장성은 결국 배치되기 때문이다.

종합주가지수 1000은 우리 스스로 만든 한계다. 500년 전의 튤립 열풍처럼 조작된 환상으로 넘기에는 그 문턱은 너무 높다.


“은행들 이렇게 가다간 다 망한다”

“대기업은 위험부담이 적긴 하지만 은행의 주요 고객이 될 수 없다. 일단 내부 유보자금이 충분히 많은데다 부족하면 얼마든지 주식시장에서 조달할 수도 있다. 결국 은행의 주요고객은 중소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은행이 주식시장과 경쟁해서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도 여기다.”

조복현 한밭대학교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위기의 해법을 은행산업의 재건에서 찾는다. 조 교수는 “공공성 차원이 아니라 수익성 확보 차원에서도 기업 대출 특히 중소기업 대출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기업과 가계대출에 치중하는 지금 상황이 자칫 자산가격 상승과 금융시장 전체의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IMF 외환위기 7주년을 맞아 개최된 토론회에서 게리 딤스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딤스키 교수는 특히 은행의 합병과 대형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강조하면서 은행에 사회적 책임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저하게 시장의 논리에 따라 대출이 결정되고 부유층을 중심으로한 소매금융이 핵심 사업이 된다. 규모를 키워서 더 많은 부유층고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그 결과 끊임없는 인수합병이 계속되고 몇몇 은행은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중소기업과 저소득 계층은 금융산업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딤스키 교수는 그 대안으로 지역재투자법을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가 지역 재투자 실적이 높은 은행에 정부의 예금 자산과 공적 기금을 맡기는 등 은행의 성장지향형 행동을 유인하라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은행의 정부예금 유치실적과 공적기금 신탁관리 실적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해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딤스키 교수는 이밖에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지원하는 출자펀드를 조성하거나 저소득˛실업층을 지원하는 특수목적기금을 활성화하라는 제안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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