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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현을 만나다.

마감 날 새벽, 조천현씨의 원고가 들어왔다. 하품을 하면서 원고를 몇줄 읽어 내려갔을 때 잠이 확 달아났다. 정말 머리 털이 바짝 곤두서는 것 같았다.

“각서라는 것은 일종의 차용증이었습니다. 이름과 나이, 집 주소를 쓴 후, ‘한국 땅에 도착하면 계약한 500만원(한화)을 꼭 주겠으며 이를 어겼을 경우 법률적인 조치를 취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쓰는 것이지요. 그리고 손도장을 찍었습니다.”

탈북자들과 브로커들 이야기였다. 브로커들은 탈북자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받게 될 정착금 3700만원 가운데 500만원을 소개비로 뗀다. 이들은 탈북자들을 끌어모아 가둬 놓았다가 때가 되면 한꺼번에 대사관 등에 몰려가도록 한다. 이게 이른바 기획 탈북의 실상이다.

책이 나오고 난 다음 조천현씨를 직접 만났다. 몇가지 묻고 싶은 것도 있었고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는 탈북 문제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비디오 저널리스트다. 한달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지내면서 탈북자들을 만난다. 지금까지 그가 카메라에 담아낸 탈북자들이 1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낸 필름은 편집을 거쳐 방송국에 판다. 언뜻 듣기로는 제법 수입이 짭짤한 것 같다.

먼저 궁금했던 건, 탈북자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다. 배가 고파서 살기 위해 뛰쳐나온 사람들이라면 받아주는 게 맞지 않은가. 그게 이를테면 인도주의 아닌가.

조천현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보기에 정말 배가 고픈 사람들은 탈북을 할 엄두도 못낸다.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들은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다. 이들이 국경을 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우리 정부가 줄 3700만원의 정착금.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남조선에 넘어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생활은 결코 여유롭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은 이방인이고 결국 밑바닥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다. 겨우 3700만원의 정착금으로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설령 배고프고 힘들더라도 그냥 그들의 땅에 머무는 게 차라리 나았을 수도 있다. 그들이 북한에서보다 이곳에서 더 행복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저녁을 먹으면서 시작된 술자리는 조천현씨의 작업실로 옮겨서 새벽까지 계속됐다. 알고보니 그는 내 고등학교 8년 선배였다. 그는 탈북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라고 제안했다.

아무리 많은 탈북자가 넘어온들 북한은 결코 붕괴되지 않는다. 배가 고픈 사람들은 여전히 배가 고프고 북한 인권 문제도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조천현씨가 생각하는 북한 인권 문제의 진지한 해법은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뿐이다. 탈북자들을 지원할 게 아니라 북한의 정말 굶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국에서 북한 인권법이 시행되면서 기획 탈북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한국 정부, 기독교 선교 단체, 보수 단체들이 탈북을 조장한다. 다들 북한의 인권을 명분으로 내걸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사람들 하나하나의 인권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 과정에서 탈북자들은 이용되고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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