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달러의 함정, 소득주도 성장이 문제라고?

Scroll this

1. 뉴스의 재발견, 지난해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고 하죠. 이게 12년 만이라고 하던데요.

= 한국 전쟁이 끝난 뒤 1953년에 67달러였죠. 100달러를 넘어선 게 1963년. 1977년에 1000달러. 1983년에 2000달러. 1만 달러를 넘어선 게 1994년이었습니다. 2만 달러를 넘어선 게 2006년인데 그러니까 12년 만에 1만에서 2만, 그리고 다시 12년 만에 2만에서 3만1349달러로 성장한 겁니다. (북한은 아직 1214달러. 146만 원 수준입니다.) (스위스가 8만이 넘고 미국과 호주가 5만이 넘죠.)

1-1. 좀 오래 걸린 편인가요?

= 일본과 독일은 2만에서 5만 가는데 4년 밖에 안 걸렸습니다. 미국은 9년, 영국은 11년, 그러니까 한국이 약간 더 오래 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14년이 걸렸네요.) 그래도 오래 걸린 것은 10년 마다 금융위기가 겹쳤기 때문입니다. 1만 달러를 넘으니까 IMF가 왔고 2만 달러를 넘으니까 서브프라임 모기지론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죠. 3만 달러를 넘어섰으니까 이번에는 신흥국발 금융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 이런 징크스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 3만 달러면 국민 1인당 3000만 원 이상 번다는 이야기인데요. 어린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그렇게 안 되는 것 같거든요. 가족 4명이면 1억2000만 원이 넘는다는 건데요.

= 정확하게 환율로 계산하면 1인당 3450만 원입니다. 착시현상이 있죠. 첫째, 일단 환율 효과가 큽니다. 지난해 환율이 2.7% 하락하면서 원화 가치가 올라갔죠. 그래서 달러로 환산하면 소득이 좀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둘째, 국민소득 GNI는 기업소득과 정부소득까지 합산됩니다. 그래서 실제 가계소득과는 다른데요. 한국은 기업 소득이 좀 큰 편입니다. 그래서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이라는 걸 봐야 되는데요. 2017년 기준으로 1만6573달러입니다. (2000만 원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가계소득이 국민소득의 56% 정도인데요. 미국과 일본은 73%와 62%입니다.

3 방송 들으시는 분들 중에도 소득이 늘긴 늘었다는데 체감하지 못하겠다, 이런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 지난해 소득 격차가 역대 최악으로 집계됐습니다. 하위 20%는 오히려 소득이 17.7%나 줄었고요. 상위 20%는 10.4% 늘었죠. 한국일보는 소득주도 성장의 배신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위 2분위, 그러니까 20~40% 구간도 4.8% 줄었는데요. 그러니까 전체 국민 10명 중에 4명이 지난해 소득이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4. 소득 양극화 확대가 폐지 가격 하락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던데요.

= 중요한 요인인 건 사실입니다. 뉴스톱이라는 팩트체크 전문 언론에서 이런 분석을 내놨는데요. 하위 20%의 사업 소득이 1년 전 22.9만 원에서 8.5만 원으로 줄었는데 이게 대부분 폐지를 팔아서 번 돈이라는 겁니다. 폐지 가격이 kg당 150원까지 갔다가 60원대로 떨어졌죠. 정확하게 이 시기가 일치합니다. 중국에서 폐지 수입을 중단하면서 나타난 변화인데요.

4-1. 폐지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분이 그렇게 많나요?

= 확인을 해봤는데요. 170만명이라는 추산이 언론 보도에 자주 인용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30만 명 정도라는 게 합리적인 추산인 것 같습니다. 하위 20% 가구가 290만 가구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1인 가구가 562만 가구) 정도 되니까 폐지 가격 하락이 소득 감소의 핵심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고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다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자면, 소득 없는 노인 인구 비중이 늘어나고 이 분들이 소득 하위 가구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5. 그래서 3만달러는 넘었지만 축제 분위기는 아니군요.

= 언론 보도는 매우 시니컬합니다. 조선일보는 4만 달러까지 가려면 20년 넘게 걸릴 수도 있다면서 저주를 퍼붓고 있고요. 다른 신문들도 냉정합니다. 샴페인 터뜨릴 때 아니다(국민일보), 이런 보도도 있고, 퇴보와 도약의 갈림길에 섰다(매일경제)는 보도도 있고요. 일단 지난해 성장률이 2.7%로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경제지들의 흔한 레퍼토리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고용 참사와 투자 부진을 초래하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을 포기해라, 기업 규제를 완화해라, 이런 주장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포퓰리즘 때문에 미래가 없다는 식의 보도도 많고요.

= 실제로 한국도 2만이 넘었다가 1만달러로 추락하기도 했고 3만이 넘었다가 2만으로 떨어져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스페인 같은 나라도 있습니다. 일본은 22년째 3만달러에 머물러 있고요.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한국경제 성장률이 2.1%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는데 경제지들이 이런 전망을 인용하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 언론 보도를 보면 15년 전 노무현 정부 시절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고용과 성장 지표가 안 좋아지고 있는 건 맞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의 정책 기조를 다 바꿔야 되느냐 하면 그건 아니죠. 원인과 결과를 뒤섞는 보도가 많습니다.

6. 경제규모가 커지면 성장률도 줄어드는 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

= 몇 가지 살펴볼 지점이 있는데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시점에 잠재 성장률이 얼마나 됐는지 비교해 봤더니 독일과 프랑스 등은 1.9%, 1.8% 정도 밖에 안 됩니다. 23개국 평균은 2.8%인데 한국은 2.9%니까 그래도 한국이 기초 체력이 좀 된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잠재 성장률이라는 건 한 나라의 경제가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이라는 건데요. 지난해 성장률이 2.7%라고 하지만 여전히 나쁜 편은 아닙니다.

= 실업률도 다른 선진국 대비 높은 편은 아니고 정부 부채는 오히려 매우 낮은 편입니다. 지난해 초과 세수가 25조원이나 됐죠. 정부가 좀 더 돈을 풀고 경제의 역동성을 살린다면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7. 3만달러를 달성한 나라가 25개. 인구 5000만명을 넘으면서 3만달러 이상인 나라는 7개 밖에 안 되는군요.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네. 한국 경제가 5% 이상 성장을 하던 그런 시대로 다시 가기는 어렵고요. 보수 성향의 신문들이 소득 양극화를 비판하는데요. 지난 정권과 논조가 많이 바뀌었죠. 분명한 것은 그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 때문이거나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인구 고령화와 경제 구조가 바뀌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 오히려 소득 양극화가 심화된 것처럼 나타나는 건 이명박 박근혜 정권 10년의 결과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 잘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낮은 성장률과 낮은 출산률, 인구 고령화를 받아들이면서 성장 패러다임을 다시 짜야 하는 시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leejeonghwan.com audio
Voiced by Amazon Po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