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지상파 보고서가 말하지 않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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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며칠 동안 떠들썩했던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보고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게 보고서를 발주한 곳이 조선일보라는 사실이 밝혀졌네요?

= 문재인 정부 들어 TV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편향성이 더욱 심해졌다는 내용의 보고서였죠. 지난 월요일(11일)에 이 연구소 홈페이지에 공개된 보고서인데 월요일 아침 조선일보 1면과 3면에 쫙 깔렸습니다. 적어도 조선일보는 이 보고서를 주말에 미리 받아 봤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래서 당연히 이 연구 용역을 발주한 곳이 어디냐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어디어디 지원을 받아 연구했다고 밝히는 게 일반적인데 밝히지 않았거든요.

= 그런데 어제 저희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가 취재 결과, 이 보고서가 조선일보가 발주한 보고서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연구소 소장인 서울대 윤석민 교수에서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더니 맞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연구소 홈페이지에 공지가 떴는데요.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에서 3000만 원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이뤄진 연구라는 겁니다. 기사가 나갈 것 같으니까 뒤늦게 밝힌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2. 왜 처음부터 밝히지 않았을까요?

= 왜 그랬냐고 물으니 엉뚱한 방향으로 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밝혔는데요. 홈페이지 공지에도 3000만 원이 적은 비용은 아니지만 분석 규모에 비해 빠듯한 연구예산이었고 연구비가 어디에서 왔건, 연구자는 독립적으로 연구목적에 충실한 완성도 높은 연구를 수행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연구는 연구의 내용 자체로 평가돼야 하고 이 연구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3. 연구는 연구 내용 자체로 평가돼야 한다, 그런데 조선일보 발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논란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는 거네요?

= 윤석민 교수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추천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을 지낸 적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학자의 양심을 믿어야겠지만 일단 보수적 성향으로 알려져 있는 분이 시사 프로그램의 편향성을 분석한다는 게 논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발주 보고서였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자기들이 발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서울대가 자체적으로 연구해서 만든 보고서인 것처럼 보도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보고서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연구 윤리 차원에서도 문제가 많습니다. 조선일보는 지상파 방송사들과 경쟁하고 있는 TV조선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언론사입니다. 언론사가 한 시장에서 경쟁하는 언론사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주한다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일입니다.

= 오늘 아침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는 “이번 연구를 편향적이라고 매도하는 모든 시도들에 대해서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언론사의 편향성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보고서는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이게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논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숨길 게 아니라 먼저 밝히는 게 맞습니다.공개하기 곤란한 자금 출처라면 애초에 그런 연구비 지원을 받지 않는 게 맞고요.

4. 처음 듣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내용을 좀 살펴볼까요?

= 거의 3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인데요. 제가 내용을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 일단 KBS·MBC·CBS·TBS 라디오 아침 시사 프로에 출연한 정치인들의 출연 횟수를 집계했더니 116회 중 더불어민주당이 55회, 자유한국당 20회, 정의당 15회, 바른미래당 14회, 민주평화당 14회 등 범여권 인사들이 70%에 이른다는 겁니다.

= 여야 논쟁적인 아이템이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170건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236건으로 늘었다고 하고요. tbs 김어준의 뉴스 공장과 SBS 김용민의 정치쇼 등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사 프로그램의 비판성이 줄어들었고 전반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강하다는 게 결론입니다.

= (최강시사의 경우도 정부 비판보다 옹호가 약간 더 많고 출연자들도 민주당 지지 성향이 많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정부 변호적 방송이다, 이런 표현을 썼네요.)

4-1. 어제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최강시사에 한 달 동안 4번이나 고정 출연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과 동시에 출연하는 최고의 정치라는 코너죠? 아마 방송을 들어보지 않고 숫자만 집계한 것 같습니다.

= 조선일보가 “공정성 잃은 지상파”라는 제목으로 사흘 연속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데요. 서울대 보고서를 깔고 평소 이 신문이 했던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지상파가 좌편향 됐다는 것이죠. 보고서를 인용한 부분과 이 신문의 주장이 뒤섞여 있는데 서울대의 분석인 것처럼 읽히게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5. 편향성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개념인데 어떻게 평가한 걸까요?

= 최강시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 신설된 프로그램이라 비교가 어렵습니다만, CBS 김현정의 뉴스쇼 같은 경우도 박근혜 정부 때는 비판적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비판성이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고 하는데요. 이런 조사에서 주의할 부분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죠. 비판할 부분이 많아서 비판한 것인지, 비판할 부분이 많은데도 정부를 감싸고 도는 것인지 서로 다른 정부에서 수많은 다른 사건에 대한 기사를 두고 비판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편향됐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애초에 접근 방식 자체가 편향됐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결론을 갖고 접근한 것이죠.

6. 박근혜 정부를 비판한 것 같은 강도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지 않으면 편향된 것이다, 이런 논리인데요.

=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과 통합진보당 해산, 간첩단 조작사건,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잃어버린 7시간, 메르스 사태, 개성공단 폐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사드 배치, 마지막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탄핵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치적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죠. 이것도 편향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이런 사안에서 정부를 비판하지 않으면 그건 언론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죠.

= 당연히 문재인 정부도 잘못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을 백지화했고(이건 잘했다는 여론도 많았죠.) 사안은 다르지만 드루킹 사건도 있습니다. 국가 채무 논란도 있었죠. 그런데 상식적으로 박근혜 정부와 비교하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사회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큰 사건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남북 화해 분위기가 불편한 보수 언론이 해묵은 색깔론을 들고 나오고 최근 5.18 역사 왜곡 논란에서 보듯이 보수 진영 일부가 극우 성향으로 돌아서면서 팩트 체크 성격의 보도가 늘어나고 보수 진영과 맞서는 양상을 보이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편향됐다고 볼 수는 없죠.

7. 진행자와 출연자들의 발언을 분석한 부분도 있던데 기준이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 “삼성 공화국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홍준표 대표가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네요”, “사법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꼽히는 충격적인 이야기” 이런 식의 표현을 편향성의 주요 사례라고 거론했는데요. 특별히 어느 쪽에 편향됐다기 보다는 애초에 진행자가 의견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시각에서 편향성이라는 개념을 규정한 것 같습니다.

= 오히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이 좀 더 자유롭게 의견 개진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KBS와 MBC가 동시에 파업을 벌였고 해직 언론인도 있었고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이 취재 현장에서 배제되기도 했죠. 이런 맥락을 빼고 문재인 정부 들어 비판성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놓으면 연구 보고서를 빙자한 정치 찌라시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8. 미디어 전문 매체 미디어오늘의 대표로서 이번 서울대 보고서를 한 마디로 평가하신다면?

= 이 보고서 자체가 진영 논리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왜 이러느냐는 건데요. 같은 맥락이라면 TV조선은 박근혜 대통령을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라고 감싸고 돌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서 갑자기 비판적으로 바뀌었죠.

= 애초에 편향성을 분석한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봅니다. 아무리 공신력 있는 연구 집단이 조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조사하는 사람이 갖는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편향성 뿐만 아니라 공정성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인데요. 모든 이해관계와 정치적 입장 차이를 만족하는 언론 보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완벽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도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 “정부 비판적이면서 다양한 의견을 들려주는 정론적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도 있던데요. 과연 박근혜 정부 시절 공영 방송이 정권에 장악돼 있을 때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는지 스스로 반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저는 언론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현장의 저널리스트들이 얼마나 외부의 압력에서 자유롭게 주장과 신념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자와 PD들도 각자의 편향이 있을 수 있지만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저널리즘의 원칙과 사명감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때 공정성이 보장된다고 보기 때문이죠.

= 출연자의 성비와 소속 등을 계량화하고 사실 전달과 주장 또는 의견의 비중을 분석하는 조사는 의미가 있습니다. 좀 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이 뒷받침됐다면 좋은 연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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