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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19, 애플의 강한 존재감과 위기의식.

“What happens in Vegas stays in Vegas.”

라스베가스에서 일어난 일은 라스베가스에 남는다. 여기서 무슨 일을 벌이든 비밀로 남을 테니 마음 놓고 도박과 유흥을 즐기라는 자칭 타칭 ‘Sin city’, 라스베가스 관광산업의 증흥기를 이끈 캐치 프레이즈라고 한다.

“What happens here, stats here.” 이게 변용돼서 “이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알자”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What happens on your iPhone, stay on your iPhone.”

애플이 CES에 참가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대형 옥외 광고를 내건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단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 같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 광고판 이야기를 했다. 이 대형 광고판은 LVCC(라스베가스 컨벤션 센터)로 들어가는 도로 입구의 건물 외벽에 걸려 있다. 지나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보지 않을 수 없는 위치다.

“당신의 아이폰에서 벌어진 일은 당신의 아이폰에 남는다(당신이 아이폰으로 한 어떤 것도 아이폰의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아이폰의 개인정보 보호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 텐데, 마치 아이폰으로 무슨 부끄러운 일이라도 저지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apple.com/privacy라고 조그만 글씨로 URL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면 이게 무슨 의미인가 갸우뚱했을 것이다.

일단 제품군이 많지 않은 애플은 CES에서 새로 자랑할만한 게 많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애플은 한 번도 CES에 나온 적 없다.) 아마존 알렉사와 구글 어시스턴트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애플은 폐쇄적인 플랫폼 정책으로 스스로 확장성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정보기술 전시회에 참가하지 못한 소외감을 뭔가 뒤틀린 심사로 이 광고에 담은 것일 수도 있다. 당신들 그렇게 떠들고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는 제대로 하고 있나?

맥월드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삐딱한 평가를 내놓았다. https://www.macworld.com/article/3331597/apple/apple-privacy-billboard.html

아이폰의 개인정보 보호가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폰에서 구동되는 아마존 알렉사와 구글 어시스턴트 앱에서는 구멍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시리는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지만 알렉사와 어시스턴트는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쌓는다.) 그러나 이 광고판이 걸린 곳이 메리어트 호텔 근처인데 최근 이 호텔에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있어났다. 아이폰을 사용해서 예약한 사람들은 개인정보 유출이 없었나? 이건 아이폰에서 벌어지는 일(happening on the iPhone)이 아닌 것인가?

맥월드는 건방진 광고판(cheeky billboard ad)라고 평가했다.

애플이 삼성전자 TV에 아이튠즈와 에어플레이를 허용하기로 한 것도 애플의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씨넷은 “애플과 삼성이 CES를 훔쳤다(Apple and Samsung steal CES 2019)”고 평가하기도 했다. https://www.cnet.com/news/apple-samsung-steal-ces-2019/

폐쇄적인 하드웨어 생태계를 고집해 왔던 애플이 한 발 물러선 것이다. 플랫폼과 콘텐츠가 합종연횡하는 최근 트렌드에서 언제까지나 고립을 자초할 수 없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지 8년째 잡스의 고집스러운 하드웨어 원칙이 한 단계 꺾였다고 볼 수도 있다. CNN은 “잡스가 애플의 소프트웨어를 자신이 해고할 수 없는 다른 누군가가 만든 하드웨어에서 돌리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잡스는 이와 관련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따로 만들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반영할 수 없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책임을 지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혼란만 남게 된다.” https://leejeonghwan.com/?p=814

심지어 홈팟에서도 블루투스를 허용하지 않았던 애플이다. 그랬던 애플이 애플이 만들지 않은 기기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연동하도록 허용하겠다는 건 정말 놀라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아이튠즈가 삼성전자 TV에 뜨고 삼성전자 리모컨으로 구동 가능하다는 건 레노버 노트북에서 macOS 모하브가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생경한 일이다. 거만하고 뻔뻔한 광고판이었지만 애플이 원칙을 꺾고 노회해진 걸까. 애플이 부재가 역설적으로 애플의 존재감을 만들어낸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애플의 위기 의식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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