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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신재민의 폭로, 신념과 주장의 간극.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3, 2019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1월3일 방송 내용입니다.)

1. 뉴스의 재발견, 오늘은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죠.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 그 의미와 파장을 살펴보겠습니다.

= 네. 오늘 주제는 준비하면서도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정말 복잡한 사건이고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판단이 잘 안 서는 사건입니다.

먼저 눈여겨볼 포인트는 내부 고발의 방식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기자회견을 하거나 익명의 투서를 했죠. 그런데 신재민 전 사무관은 앵커처럼 방송을 하고 유튜브에 내보냈습니다. 누구나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12월29일에 올라왔는데 사흘 만에 조회수가 20만에 육박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MBC에 제보를 해서 기사가 떴는데 별로 파장이 없었죠. 그런데 유튜브에서 이야기를 하니까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2. 크게 두 가지죠? KT&G 인사 개입과 국채 발행 지시 의혹인데요. 둘 다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 영상에서 보셨듯이 신재민 전 사무관은 행정고시에 합격한 5급 공무원으로서 높은 자부심과 사명감에 차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일단 이 사람이 특정 정치 세력과 연계돼 있다거나 스타 강사로 유명세를 얻기 위해 폭로를 한 것 같지는 않고요. 일련의 사건을 겪는 과정에서 공무원으로 남아있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워했던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내부 고발은 그 자체로 보호돼야 하고 이 분의 용기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분의 소신과 신념을 넘어 이분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동의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살펴보면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기획재정부는 3년차 공무원이 뭘 아느냐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은 반박을 하고 필요한 부분은 설명을 하면 됩니다. 현재로서는 신 전 사무관이 엄청난 기밀을 누설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3. KT&G부터 살펴볼까요? KT&G는 민간 기업이지만 정부 지분이 일부 있죠?

= 팩트 체크를 해보겠습니다. 정부가 기업은행 지분을 54.2% 보유하고 있고 기업은행이 KT&G 지분을 7.5% 보유하고 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이 기획재정부 공용 컴퓨터에서 “대외주의, 차관보고”라는 문건을 발견했는데요. 여기에 청와대의 지시로 기업은행이 KT&G 사장 연임에 반대표를 던지도록 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겁니다. 신 전 사무관은 비망록에서 “삼성이나 LG CEO를 바꾸라고 지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일단 정부가 우회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주총회에서 표를 행사하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총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검찰수사나 세무조사를 동원한다거나 했을 텐데 그런 정황은 드러난 게 없습니다.)

4. 실제로 주총에서 표 대결을 했고 연임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죠?

= 기업은행이 반대 표를 던졌는데 다른 주주들이 대부분이 찬성해서(56.3%, 참석 주주 76.3%) 백복인 사장이 연임에 성공했죠. 경제지들에서는 “시장이 이겼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는데요.

당시 기업은행과 국민연금(9.1%)이 반대 표를 던졌는데요. 만약 정부가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어서 반대 표를 던지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면 그건 문제가 됩니다. (신 전 차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기업은행에 반대 표를 던지라고 했다면 (그리고 그 문건이 공개됐다면) 일단 그것만으로는 문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KT&G가 과거 공기업이었지만 지금은 민간기업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민간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당연히 공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주주로서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야겠죠.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링크를 참고. https://leejeonghwan.com/?p=3306)

삼성이나 LG 사장을 교체하는 것과 같다는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은 비약이거나 왜곡입니다.

(다만 서울신문 사장 선임 논란은 또 성격이 다른데요. 언론의 독립성 침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5. 국채 발행 지시 의혹은 좀 더 복잡하죠.

= 두 가지 논란입니다. 하나는 국채를 발행할 이유가 없는데도 발행하라고 지시했다, 다른 하나는 국채를 매입하기로 했다가 갑자기 취소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건데요.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면 빚을 진다는 거죠. 채권을 매입하면 빚을 줄이는 겁니다. 2017년 5월에 정권이 바뀌었죠.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가 많아 보이게 만들려고 청와대가 추가로 국채 발행을 지시했다는 게 신 전 사무관의 주장입니다. (국회에서 28조7000억원까지 국채 발행한도가 승인이 났는데 10월 말까지 국고채 20조 원어치를 발행한 상황이었고 추가로 8조7000억원어치를 더 발행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2017년 6월 기준으로 초과세수가 20조원 정도 되는 상황이라 국채를 발행하기는커녕 상환해도 될 상황인데 추가로 발행을 지시했다는 거죠.)

6. 당시 실제로 국채가 발행되지는 않았죠?

= 기획재정부는 국채를 더 발행할 것이냐 말 것이냐 치열한 논의 결과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일부 신문에서는 빅 배스(big bath)를 시도하려다 실패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거론되는데요. 문재인 정부의 성과를 돋보이게 만들려고 지난 정부의 부실을 부풀리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거죠. 기획재정부의 설명은 실제로 국채를 발행했더라도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비율이 미미하고 또 그게 박근혜 정부의 국가 채무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 1년차 실적으로 잡힐 텐데 굳이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39.4%라는 국가채무 비율 목표까지 제시했다고 하죠. 다만 신 전 사무관도 추측 이상의 주장이 없는 상황입니다.

6-1. 바이백 취소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 바이백을 취소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없었는데요. 신 전 사무관도 바이백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다만 한다고 했다가 하루 전에 취소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청와대에서 지시가 내려왔고 김동연 전 부총리가 정무적 고려를 언급하면서 취소시켰다는 건데요. 실제로 시장에 충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어떤 배경과 의도가 있었는지는 현재로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이백을 취소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박근혜 정부의 부실을 키우려고 조작했다고 보기에는 신 전 사무관의 설명도 현재로서는 억측이거나 비약이 심한 것 같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나중에 올라가면 안 좋으니 처음에 올려놓고 개선되는 모양새를 만들려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이백 취소로 시장에 엄청난 충격이 있었다는 보도도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7. 정치적 공방이 계속될 것 같은데요.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박근혜 정부 시절 긴축재정을 펼쳐서(돈을 안 써서) 국가 재정이 좋아졌죠.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등 확장정책을 펼치기 위한 재원 마련 차원에서 현금을 많이 보유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채 발행이든 바이백 철회든 청와대가 권한을 갖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고 청와대가 기획재정부에 그렇게 지시를 했다고 그게 문제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 거 하는 게 정치죠. (그리고 균형재정을 달성하려고 그랬다면 오히려 자유한국당이 칭찬할 일이죠.)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이른바 386 인사들이 모피아(재경부+마피아) 공무원들에게 휘둘린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개혁 정책이 실패한 요인도 모피아의 농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고요. 신재민 전 사무관은 자부심이 넘치고 신념이 확실한 분 같지만 긴축재정이 선이고 국가채무는 무조건 줄이는 게 좋은 거라는 논리를 펼치는 건 관점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국채 발행 논란은 말 그대로 논란일 뿐 균형 재정이냐 재정 확대냐 결국 정책적 정책적 판단의 범위 안에 있고 문재인 정부의 치명적인 실수나 스캔들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이 터지기 전이죠. 지난 12월10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초과 세수로 국채 4억원을 조기 상환했다고 밝혔는데요. 문재인 정부도 결국 모피아의 논리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세금을 거둬서 잘 쓰면 되는 것인데, 빚 갚는 데 썼다고 칭찬 받을 일은 아닌 것이죠. 2017년 11월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별개로 문재인 정부도 균형 재정이라는 강박을 버리지 못했다는 추론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기획재정부의 이런 문화가 청와대를 움직였을 수도 있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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