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75km, 하프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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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얼굴이 이렇게 까맣지는 않아요.”
“아, 그래요?”

가을 볕에 얼굴이 까맣게 탔다. 지난 일요일, 마라톤 대회 때문이다. 21.0975킬로미터. 여의도에서 둔치를 타고 마포대교와 서강대교, 당산철교, 양화대교, 성산대교, 가양대교를 지나 다시 여의도로 돌아오는 하프 마라톤이다. 썬 크림을 잔뜩 발랐는데도 땀 때문에 흘러내리고 결국 얼룩덜룩 까맣게 탔다. 달릴 때는 얼굴 타는 것 따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마라톤은 기본적으로 체력 싸움이지만 시간의 싸움이기도 하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신력의 싸움이다. 두시간 가량 쉬지 않고 계속 뛰어야 하고 그동안 지치지 않도록 체력을 잘 안배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루함을 견뎌내야 한다. 지루하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뛰면 되지만 페이스가 한번 무너지면 두시간 동안 뛸 수 없다. 지쳐서 한번 쉬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내내 쉬어가며 뛰어야 한다.

최대한 빨리 뛰어야겠지만 그보다는 지치지 않고 끝까지 뛸 수 있는 속도를 찾는 게 관건이다. 나는 6분에 1킬로미터씩 뛰기로 했다. 7분은 너무 느린 것 같고 나름대로 연습할 때보다 욕심을 더 부린 셈이다. 반환점을 돌고 나니까 터벅터벅 걷거나 주저앉거나 하나둘씩 낙오자들이 나타났다. 나는 바람처럼 그 사람들을 가로질러 쉬지 않고 달렸다. 심지어 물도 달리면서 마셨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목표는 명확하다. 살아남아서 계속 달리고 이를테면 6분에 1킬로미터씩 정확히 달려야 한다. 느리지만 그게 결국 가장 빨리 달리는 방법이다. 그래야 두시간 뒤에 목표에 이를 수 있다. 서두르지 말자. 달릴 수 있는만큼 달리고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참고로 42.195킬로미터를 뛰는 풀 코스 마라톤의 최고기록은 1999년 모로코의 할리드 하누치. 2시간 5분42초다. 1분에 335.68미터, 1초에 5.59미터를 뛰었다는 이야기다. 100미터에 17.89초, 1킬로미터에 2.96분 꼴이다. 나보다 딱 두배 정도 빠른 셈이다.

참고 : ‘나는 달린다’를 읽다.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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