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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다.

이 그림, 어딘가 수상하다. 일단 옛날 그림치고는 꽤나 직설적이고 선정적이다. 이 여자애 표정을 봐라. 슬쩍 뒤돌아보는 그런 무심한 눈빛이 아니다. 진주 귀걸이도 수상하다. 예쁘긴 하지만 많아봐야 17살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딱 봐도 별로 부유해 보이지 않는 여자애가 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예쁜 귀걸이다.

1632년 네덜란드 태생의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그림이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꼽힌다.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냈던 베르메르는 평생 36점의 그림밖에 안그렸고 43살에 일찍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지만 이 여자애가 누구인가, 베르메르와는 어떤 사이인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딸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은 아니다. 그렇다고 연인을 바라보는 열정적인 눈빛도 아니다. 이 영화의 상상력은 여기서 출발한다.

왜 이 여자애는 내가 가장 아끼는 귀걸이를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그리움이 가득 담긴 눈길로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영화에서 베르메르의 부인은 이 그림을 보고 “음란하다”면서 울부짖는다.

그림을 그리면서 집안에 수상한 공기가 감돈다. 이 여자애, 그리트는 베르메르 집의 하녀다. 베르메르는 잡아먹을 것처럼 그리트를 노려보지만 더 다가서지는 않는다. 돈을 벌려면 그림을 그려야 하고 장모와 부인는 그림을 재촉하면서도 두 사람의 사이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결국 모두가 눈치를 챈다.

그리트는 아마도 베르메르를 사랑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꿈이라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베르메르 대신에 시장 푸주간에서 일하는 남자애를 만난다. 베르메르 역시 그리트를 좋아하면서도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거나 드러내지 못한다. 베르메르와 그리트가 자유롭게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은 그림 밖에 없다. 그리트는 눈빛에 감정을 담아내고 베르메르는 그걸 그대로 그림에 옮겨담는다. 언뜻 평화로운 그림이지만 폭풍같은 열정이 숨어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음란’한 그림일 수도 있다.

그리트를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은 그림의 여자애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인다. 예쁘긴 하지만 눈빛은 공허하고 그리트가 보여주는 밝은 미소도 없다. 대체로 유쾌하지만 그리트는 언뜻 무력하고 수동적인 것처럼 비춰진다. 그림 하나가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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