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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을 보다.

김기덕의 영화는 대개 끔찍하다. 이를테면 살인의 예감 같은 것이다. 의도하지 않게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 또는 죽이는 상황, 그리고 파국. 강간을 하거나 강간을 당하고 미치거나 낚시 바늘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김기덕의 영화가 끔찍한 것은 그런 파국이 일상적인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상상이지만 김기덕은 그런 상상을 그대로 영화에 담아낸다.

‘빈 집’의 끔찍함은 좀더 교묘하다. (아래는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줄거리를 전혀 모르고 보는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주인공 남자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름도 없다. 그는 말쑥한데다 꽤나 비싸보이는 BMW 모터싸이클을 몰고 다니지만 집이 없다. 그는 여기저기 다른 사람들의 빈 집에 들어가 산다.

중국집이나 통닭집 따위 홍보 전단을 집집마다 대문에 붙여놓고 몇일 뒤까지 그대로 붙어 있는 집을 찾아 문을 따고 들어간다. 그는 그 빈 집에서 샤워를 하고 밥을 차려 먹고 잠옷을 꺼내 입고 아무 칫솔이나 골라 이빨도 닦는다. 그가 찾는 집 가운데는 부자의 집도 있고 가난한 집도 있다.

물론 언제든지 갑자기 집 주인이 들이닥칠 수 있다. 주인공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슬렁거리지만 지켜보는 관객은 불편하다. 관객들은 이 남자가 물건을 훔치거나 강간을 하거나 죽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불편함의 정체는 파국의 예감이다. 집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무슨 일이든 벌어진다.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크다. 관객들에게 그것은 여전히 낯설고 끔찍한 경험이다.

김기덕은 노골적으로 이 남자가 많이 배웠고 전과도 없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이 남자는 성적으로 무관심하고 주인공 남녀는 심지어 잘 때도 손만 잡고 잔다. 이를테면 이 남자는 도덕적이거나 위선적인 당신일 수도 있다는 암시다. 김기덕의 다른 영화들보다 이 영화는 일상의 영역에 좀더 깊숙히 파고들고 있다.

주인공 여자의 이름은 선화다. 남편에게 늘 두둘겨 맞는 선화는 주인공 남자를 따라 나서고 둘의 기묘한 여행이 시작된다. 영화의 나머지 절반은 참신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시시하고 꽤나 유치하다. 상징은 어설프고 작위적이다. 김기덕 특유의 유머가 그나마 돋보인다.

궁금하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외국 영화 평론가들의 눈부신 찬사다. 이 영화는 9월 12일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10월 15일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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