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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의 하수인들이 국가 원로?

제헌국회부터 지난 16대국회까지 우리나라의 전직 국회의원은 모두 2172명이다. 이 가운데 1128명은 이미 고인이 됐고 생존한 전직 국회의원은 1044명이다. 이번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직 국회의원은 이 가운데 14.8%, 154명이다.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를 빛낸 것도 모자라 아직까지도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이들 154명 전직 국회의원 여러분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먼저 이들의 평균 연세는 73세, 가장 고령은 3선 의원을 지낸 김판술 전 민주국민당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1909년생으로 올해 95세다. 3대와 5대, 11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장면 내각 때는 잠깐 보건사회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최연소는 1955년생, 올해 49세인 윤두환 전 한나라당 의원이다. 전직 국회의원이긴 하지만 국가 원로라고 하기에는 좀 젊은 나이다. 윤 전 의원은 16대 국회에서 초선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이번 17대 총선에서는 탄핵열풍에 밀려 낙선했다. 이번 시국선언에는 윤 의원처럼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전 한나라당 의원들이 여럿 눈에 띈다. 강인섭, 김종하, 박관용, 윤한도, 전용원, 조웅규 전 의원 등 낯익은 얼굴들이다.

고령 의원들 가운데서는 제헌국회 때 활동했던 김인식 전 의원도 눈에 띈다. 김 전 의원은 대동청년단 출신이다.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광복군 총 사령관을 지낸 지청천이 결성한 대동청년단은 해방 이후 반공과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반공 우익단체였다.

2대 국회의 김인선 전 의원도 역시 대동청년단 출신이다. 김 전 의원은 4·3항쟁 때 제주지역 대동청년단 부단장을 맡기도 했다. 제주 4·3항쟁 자료집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은 “한국의 공산주의는 폭력에 의해서만 근절시킬 수 있다”면서 “테러가 좌익분자들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테러만이 좌익분자들을 한국 정치권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밖에 이승만 정권의 지지기반이었던 자유당 출신의 김성택, 김재위, 안동준 의원 등도 포함돼 있다.

시기별로 보면 11대와 12대가 각각 45명과 44명으로 가장 많다. 정당별로 보면 민주정의당이 44명으로 가장 많고 민주공화당이 28명으로 2위, 민주자유당(민자당)이 26명으로 3위를 차지했다. 민주정의당(민정당)과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계보의 의원들을 모두 모으면 101명으로 이들이 옮겨다닌 정당을 모두 포함한 전체 정당 분포 221명 가운데 절반에 이른다.

이밖에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집권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유신 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맡았던 유신정우회 출신 의원도 각각 20명과 18명이나 된다. 한나라당 계보가 결국 박정희 정권의 계보와 맞닿아있다고 본다면 이 계보의 의원들은 모두 149명, 전체 67%에 이른다. 한국의 정통 보수정당을 자임했던 자유민주연합 출신 의원도 10명이나 된다.

통계를 놓고 보면 이번 시국 선언에 참여한 전직 국회의원 154명의 상당수가 군사독재 시절 여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거나 그 맥을 잇는 한나라당 계보의 의원들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야당이었던 신한민주당 출신은 18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밖에 새정치국민회희와 민주당 의원이 12명, 여기에다 평화민주당이나 통일민주당 등을 모두 포함해도 과거 야당 출신 의원은 4분의 1에도 못미친다.

이 정도면 이들의 시국 선언이 전체 전직 국회의원들의 뜻을 대변한다기 보다는 특정 정치적 성향을 지닌 의원들의 입장 표명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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