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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는 어떻게 JP모건에게 농락당했나.

Written by leejeonghwan

August 24, 2004

주가가 떨어질 거라고 예상될 때 대안은 두가지다. 가장 간단하게는 주식을 팔고 떠나면 되고 좀더 복잡하게는 선물이나 콜 옵션을 팔거나 풋 옵션을 사면 된다.

선물을 판다는 건 이를 테면 오늘 주가가 1만원인데 한달 뒤에 9천원에 팔겠다고 계약을 한다는 이야기다. 만약 주가가 8천원까지 떨어진다면 당신은 8천원짜리 주식을 9천원에 팔 수 있다. 선물 거래에서는 직접 주식을 사고 파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당신은 앉은 자리에서 차액 1천원을 받게 된다. 주가가 떨어진만큼 선물에서 돈을 벌기 때문에 손해를 회복할 수 있다. 파생상품 거래에서는 이를 위험회피, 헤지 거래라고 한다.

분식회계와 경영권 분쟁을 불러왔던 지난해 SK 사태의 발단은 1996년 JP모건의 파생상품 헤지 거래에서 시작했다. JP모건은 2년만에 깨끗하게 손을 털고 나갔지만 SK는 8년이 다 돼가는 아직까지 그 후유증을 겪고 있다. 윤창현 명지대학교 교수는 8월 12일 금융경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투기자본 연구모임에서 JP모건의 파생상품 기법과 1997년 국내 금융기관들이 JP모건의 손실을 떠안았던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윤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SK사태는 결국 JP모건의 농간에 놀아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JP모건은 태국 바트화에 10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JP모건은 금리 4% 정도에 달러화와 엔화를 조달해 금리 12% 정도의 태국 국채로 바꿔서 8% 정도의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1995년부터 태국 경제가 급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1996년에는 급기야 경상수지 적자를 내기에 이르렀다. 투자자들 사이에 위기감이 확산됐다.

문제는 JP모건의 투자 규모가 너무 커서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다는데 있었다. JP모건이 팔기 시작하면 시장 자체가 무너질 상황이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게 선물과 옵션을 절묘하게 결합한 TRS라는 파생상품이었다. 바트화가 폭락하더라도 JP모건은 이 TRS에서 그만큼 돈을 벌게 된다.

JP모건은 1996년 가을, 우리나라에 건너와 국내 기업들을 찾아다니면서 TRS를 판매한다. 세계화 바람을 타고 외화를 빌려서 해외에 투자하는게 유행처럼 번지던 무렵 TRS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우리나라에서 모두 7개의 펀드가 만들어졌고 JP모건은 바트화 폭락에 대비해 완벽한 위험회피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바트화가 아무리 폭락해도 그 손실을 모두 우리나라 금융기관이 떠넘기는 상황을 만든 셈이다.

특히 SK증권이 200억원이나 쏟아부었던 다이아몬드 펀드의 구조를 살펴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다. JP모건은 SK증권 등으로부터 3400만달러를 끌어들인 다음 직접 5300만달러를 조성, 이 펀드에 주식 스왑 형태로 대출해준다. 그렇게 8700만달러 규모의 펀드가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JP모건이 직접 투자를 하지 않고 대출만 해줬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펀드가 이익을 내든 손해를 보든 만기가 되면 JP모건은 수수료 3%를 빼고 5141만달러를 돌려받는 방식이었다. 한마디로 위험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SK증권을 비롯해 이 펀드에 뛰어든 국내 금융기관들이 보기에는 5300만달러를 빌려서 투자하는데도 이자를 무는게 아니라 오히려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이른바 마이너스 펀딩이던 셈이다. 이게 이 펀드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이상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JP모건은 손해를 볼 위험이 전혀 없었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마이너스 펀딩이라는 조건에 현혹돼 정작 이 펀드가 어디에 어떻게 투자를 하는가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JP모건의 도덕성을 믿었던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 펀드는 처음부터 손해를 보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 펀드는 원금의 3배에 이르는 2억6100만달러를 대출받아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연동 채권을 샀는데 이 채권의 원금 상환비율에 따르면 루피아화의 가치가 10%만 하락해도 원금의 90%가 날아간다. 실제로 그 이듬해 루피아화는 걷잡을 수 없이 폭락했고 원금 8700만달러 가운데 7700만달러가 날아갔다. 그런데도 JP모건은 대출원금 5141만달러를 챙겨 빠져나갔다. 물론 그 나머지 손실은 모두 국내 금융기관이 떠안았다.

윤 교수는 JP모건이 원래 이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가 루피아화 폭락이 예상되자 다이아몬드 펀드에 이 채권을 떠넘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팔 수 없으니까 우리나라 금융기관을 끌어들여 펀드를 만들고 그 펀드에 이 골치덩어리를 떠넘겼을 거라는 이야기다.

바트화 선물 투자도 문제가 많다. 다이아몬드 펀드는 JP모건과 바트화 환율 25.88바트/달러를 기준으로 이보다 낮을 경우 그 차이의 5배를 지급하도록 하는 계약을 맺고 있었다. 물론 환율이 오르면 거꾸로 JP모건이 이 펀드에 차이의 5배를 지급한다. 여기서 문제는 JP모건의 손실이 최대 20%로 한정돼 있었다는데 있다. JP모건의 손실은 한정돼 있는데 다이아몬드 펀드의 손실은 무한대까지 가능한 구조였다는 이야기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이 부분도 거의 눈여겨보지 않았다.

결국 그해 바트화가 폭락하면서 다이아몬드 펀드의 돈이 그대로 JP모건으로 빠져나갔고 1년 사이에 1억89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또 다른 펀드 어드밴스트 인베스트먼트 펀드의 손실도 1억6700만달러에 이른다. 그 손실은 고스란히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몫이었다. SK증권을 비롯해 한남투신, LG금속, 대한생명 등이 큰 손실을 입었다.

윤 교수는 “당시 루피아화나 바트화의 폭락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 펀드에 뛰어든 국내 금융기관의 손실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사기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3억5천만달러라는 천문학적 손실을 입은 SK증권은 그 이듬해 JP모건을 사기혐의로 제소했고 JP모건도 SK증권에 대해 지급의무를 이행하라며 맞소송을 냈다. 그러나 이 소송은 1999년 이면계약을 통해 합의로 끝났고 SK가 그룹차원에서 손실을 다른 계열사에 떠넘기면서 SK사태의 단초가 됐다. 총수가 구속되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결국에는 경영권 위기 사태까지 맞게 됐다. 그 발단은 JP모건이 던진 미끼를 잘못 집어 문데서 비롯했다.

JP모건의 이같은 사기행각은 신의성실의 의무를 벗어났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국내 금융기관들이 파생상품 투자에 전문지식이 없었던 데다 외국의 선진금융기법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까지 겹쳐서 어이없는 사기를 당했다고 볼 수 있다.

8월 23일 기준으로 SK주식회사의 외국인 지분비율은 60.9%, 특히 소버린 자산운용의 지분이 14.99%에 이른다. 반면 SK의 우호지분은 20%에도 못미친다. 잘못된 금융거래 한건이 불러온 SK의 경영권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윤 교수는 “국수주의적인 발상을 경계해야겠지만 외국 자본에 농락당한 SK를 국내에서 보호해주기는커녕 지나치게 몰아붙여 경영권 위기를 불러온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또 “국내에 들어와있는 외국 금융기관 전문인력의 상당수가 해외에서 교육받은 우수한 한국인”이라며 “이들에게 도덕적, 사회적인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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