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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표’와 ‘녹색평론’을 생각함.

토요일 저녁에 하는 ‘느낌표’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지난 몇년 동안 토요일 저녁에 집에서 텔레비전을 본 일이 없으니 대충 이야기만 들었을뿐 사람들이 왜 그 프로그램에 열광하는가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주 토요일 처음으로 ‘느낌표’를 봤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이 요란하고 어수선한 프로그램을 10분도 견뎌내지 못했다. 사람들이 왜 이 프로그램에 열광하는가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 느낌표 추천도서라는 ‘괭이부릿말 아이들’도 사서 읽었지만 어딘가 심드렁했다. 그냥 취향의 차이일뿐이라고 생각한다.

퇴근길에 ‘씨네21’을 사서 읽었는데 마침 김규항씨의 글 가운데 ‘느낌표’ 이야기가 있었다. 발췌해서 옮긴다. 이 글 맨 아래에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녹색평론’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꼭 사봐야 할 잡지다. 읽고 난 다음에는 무기력과 실의에 빠진 얼치기 지식인들과 입만 살아있는 사이비 진보주의자들끼리 서로 돌려 읽는 것도 좋다.

격월간이고 1년 구독료는 3만원인데 조금도 책 값이 아깝지 않다. http://www.greenreview.co.kr 여기에 가서 구독신청을 하면 된다. 신청하면 책과 함께 지로용지를 보내준다.

나는 언젠가 이런 잡지를 만들고 싶었다.

몇달 전 나는 내가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는 분이 텔레비전에 한방 먹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강아지똥’, ‘몽실언니’, ‘한티재하늘’의 권정생 선생이다. 몇달전 ‘느낌표’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선생의 책 ‘우리들의 하느님’을 선정하고 출판사인 녹색평론사에 연락했다. “최소 20만부를 준비하고 표지엔 ‘느낌표 선정도서’라고 박아주고, 어쩌고…” 그러나 녹색평론사에서는 “책이 그렇게 팔리길 바라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텔레비전은 다시 권정생 선생에게 연락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행복한 경험 가운데 하나가 책방에서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일인데, 왜 그런 행복한 경험을 텔레비전이 없애려는 거냐.”

‘우리들의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삶의 길잡이가 될 책이니 그 책이 거기 소개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면 좋은 일이다. 그 책을 팔아 벌 막대한 돈도 녹색평론사와 권정생이라면 더 좋은 책을 내고 더 좋은 글을 쓰는 일에나 쓸 테니 역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유익들을 거리낌없이 거부했다. 그런 유익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 유익들을 얻기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다른 가치 때문이다. 그 가치는 오늘 인간의 위엄을 스스로 접고 사고 팔리는 물건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텔레비전 / 김규항, 씨네21 2003년 8월5일자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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