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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의 긴급 체포를 생각함.

모처럼 핑계를 치고 일찍 들어왔더니, 그 사이에 검찰에서 또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오늘 저녁 7시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게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됐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정 회장은 지난 4일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짓을 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 그 ‘어리석은 짓’이 오늘 권 전 고문의 체포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정 회장은 죽기 전날 검찰에 불려가서 무슨 이야기를 털어놓았을까. 오늘 권 전 고문이 체포되면서 이제 현대그룹 비자금 ‘150억원 플러스 알파’에서 알파가 400억~500억원에 이른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권노갑 = 김대중’이라는 그동안의 도식을 놓고 보면 권 전 고문의 체포로 사건의 불씨는 이제 김대중 정권 전반으로 옮겨붙게 됐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간단명료하다. 2001년 남북 경제협력 사업으로 자금난에 허덕이던 현대그룹은 정부에 손을 벌리고 정부는 산업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부는 정부대로 북한에 보내기로 한 1억달러를, 대출받는 김에 현대에 대신 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아마 현대그룹은 따로 비자금을 만들어 권 전 고문 또는 김대중 정권에게 건넨다. 섣불리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오늘 검찰의 움직임으로 보건대, 확실한 물증을 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대북 송금 특검은 결국 열지 말아야할 판도라의 상자였을 수도 있다. 결과는 참혹하다. 물고 물어뜯고 모두가 피를 흘리고 쓰러질 판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대북 송금과 김대중 정권의 대북 정책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몇달 동안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고 공과를 따졌다. 그 결과 모두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남겼다. 지난 3월 노무현의 선택으로 돌아가 보자. 노무현은 과연 특검을 허용해야 했을까. 노무현은 과연 원칙을 지켜야 했을까. 아니면 정치는 가끔 원칙을 넘어설 때도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인기를 버리고 좀더 정치적인 판단을 내려야 했을까.

이제 앞으로 한동안 우울하고 참담한 뉴스들이 잔뜩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지독한 뉴스들에서 벗어나고 싶겠지만 이미 사건은 터져 나왔고 벗어날래야 도무지 벗어날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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