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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저항인 시대, 메탈은 우리의 삶.”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17, 2014

[인터뷰] 데뷔 25주년 맞은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 주인 되는 세상 꿈꾼다.”

‘깊은 밤의 서정곡’이 블랙홀의 대표곡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블랙홀의 리더 주상균씨는 “(더 좋은 노래도 많은데) 왜 사람들이 그 노래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어떤 노래가 가장 좋으냐고 물으니 “뭐 하나 꼽을 게 없이 다 좋다”고 말한다. ‘깊은 밤의 서정곡’은 주상균씨가 대학생 시절에 만들어 1989년에 발매된 블랙홀 1집에 실린 곡이다. 정통 헤비메탈이라기 보다는 흔히 락 발라드라고 말하는 슬로우 템포 곡이다.


‘깊은 밤의 서정곡’은 블랙홀 음반 가운데 확실히 가장 대중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헤비메탈이란 장르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앨범만 내놓고 군대니 취업이니 해서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그때 블랙홀의 상품성을 알아봤던 사람이 미국인 선교사 데린 뮈어였다. 우여곡절 끝에 데린이 매니저로 합류해 2집까지 작업을 했지만 데린이 비자 문제로 미국으로 떠나면서 한때 해체 위기를 맞기도 했다.

‘깊은 밤의 서정곡’은 독특한 곡이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메탈인데도 제목 그대로 서정적이다. 가사를 새겨듣지 않으면 언뜻 흔한 사랑 노래처럼 들리지만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노래가 마니아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정작 주상균씨는 어느 날 버스 안에서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걸 듣고 부끄러워서 버스에서 내렸다고 한다. 그렇게 1집이 나오고 몇 년이 지나서야 대중적 인기를 실감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깊은 밤의 서정곡’은 ‘네 곁에 네 아픔이’나 ‘잠들지 않는 그리움’ 등 메탈 발라드의 계보로 이어진다. 그러나 헤비메탈 밴드로서의 블랙홀의 진가는 ‘야간비행’이나 ‘바벨탑의 전설’, ‘녹두꽃 필 때에’, ‘잊혀진 전쟁’, ‘낙원탈출’ 등의 폭발적인 스피드에 실리는 유려한 멜로디, 여기에 묵직하고 날카로운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담긴 곡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블랙홀은 유러피안 멜로딕 스피드 메탈에 한국적 정서를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블랙홀이 데뷔 25주년을 맞아 9년 만에 앨범을 냈다. 말이 25주년이지 주상균씨가 1964년생, 올해 쉰 살이니까 인생의 절반을 헤비메탈 신(Scene)에서 보낸 셈이다. 25년 이상 경력의 솔로 가수는 종종 있지만 헤비메탈 밴드가 멤버 교체도 없이 이렇게 오래 꾸준하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경우는 블랙홀이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는 29일 공연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인 양재동 산리허설스튜디오를 찾았다.

‘HOPE(희망)’이라는 타이틀로 나온 이번 앨범은 2005년에 낸 8집 ‘HERO(히어로)’에 이어 정규 앨범으로는 9집이다. 막내 이관욱씨가 “내가 블랙홀에 합류한 게 12년 전인데 지금까지 낸 앨범이 딱 하나 밖에 없었다”고 투덜거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옆에서 정병희씨가 툭 끼어든다. “그러니까 다음 앨범은 18년 뒤에 내게 될 거야. 그때는 우리가 몇 살이지?” 이관욱씨가 다시 받아친다. “그럼그럼, 기타를 관에 넣고 닫고 가야지.”

주상균씨는 “그동안 냈던 싱글 네 곡과 이번에 새로 공개하는 다섯 곡을 모아놓고 보니 ‘희망’이라는 주제로 연결돼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9년 전 8집에서 블랙홀은 “자신을 희생하며 노동하는 사람들이 진짜 영웅”이라고 말했는데 이번 9집에서는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이 땅의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꾼다”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헤비메탈에서 위안을 얻는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애초에 저항과 희망이 헤비메탈의 정신 아니던가.

‘일어나, 괜찮아’와 ‘그 길은 외롭지 않습니다’ 등은 블랙홀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직선적이고 유려한 곡이다. 섬세하고 명징한 기타 선율과 묵직한 베이스, 힘찬 드럼, 그리고 이들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강렬한 에너지. 블랙홀 팬들이라면 “블랙홀, 살아있었네”라며 감격에 젖을 만도 하다. ‘희망’은 블랙홀 멤버들이 이 음반에 거는 기대를 담은 의미이기도 하다. 주상균씨는 “이 앨범으로 블랙홀 ‘시즌 투’가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헤비메탈의 대부로 꼽히지만 가수 신해철씨가 언젠가 “우리나라 노래하는 사람 중에 기타를 가장 잘 치는 사람이고 기타치는 사람 중에 노래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주상균씨가 차지하는 무게감은 크다. 그렇다고 블랙홀이 주상균씨의 원맨 밴드인 건 아니다. 20년 이상 함께 호흡을 맞춰온 베이스를 맡은 정병희씨를 비롯해 기타 이원재씨, 드럼 이관욱씨 등을 빼고 블랙홀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원재씨가 블랙홀에 합류했을 때는 세계적인 음반회사 EMI와 전속 계약을 맺고 있을 때였다. 이씨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스터데이 알지? 비틀즈, 내가 걔들 키운 애들하고 일하고 있다니까.” EMI와 결별하고 나서 블랙홀은 한때 어려운 시절도 겪었다. 김용복 이사가 매니저로 합류하면서 최근에는 제대로 ‘케어’를 받고 있다고 한다. 블랙홀 멤버들은 ‘시즌 투’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제는 좀 체계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주상균씨에게 물었다. “솔로로 전향하라는 유혹도 많지 않았나.” 주씨는 “대형 기획사에 소속돼 상품성 있는 음악을 만들었으면 지금보다 더 유명했을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더 형편이 좋았을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오히려 음악 생활이 더 일찍 끝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옆에서 정병희씨가 “상균이 형이 솔로로 나갔으면 조용필 바로 밑쯤 되지 않았을까, 그런 이야기도 한다”고 거들었다.

주씨는 “그런데 팀(밴드)하고 세션은 확실히 다르다”면서 “20년을 밴드를 같이 하다 보니 팀웍도 팀웍이지만 서로 화학작용을 계속 일으키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원재씨는 “무대에 섰는데 오늘 누가 상태가 좀 안 좋다 싶으면 다른 멤버가 그걸 보완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세션은 그게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정병희씨도 “마이클 볼튼이 아무리 세션과 호흡이 잘 맞아도 메탈리카의 네 명 멤버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따라갈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씨는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 듯 음악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25년을 했지만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다. 블랙홀은 연습량도 많지만 라이브 공연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한창 때는 1년에 200회 가까이 라이브 공연을 했다. 같은 곡을 수천 번 했을 텐데 지루하지는 않을까. 주씨는 “몸에서 배어나오는 연주가 되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지루할 거 같은데 순간 지나가지만 자기만 느끼는 변화된 연주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공연을 하고 다음 공연이 있는데 이게 레퍼토리가 다르잖아요? 레퍼토리 A와 B가 있는데 A로 공연을 하고 끝나면 바로 B를 연습할 것 같지만 우리는 놀면서 A를 몇 번 더 해요. 공연 중간에 텀이 좀 있는데도 감을 잊지 않으려고 또 하고 가는 거죠.” 정병희씨가 말하자 옆에서 이원재씨가 딴죽을 건다. “안 하면 까먹으니까.” 주상균씨도 나선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시간이 빨리 지나간 거야. 하다 보니까 벌써 10년, 그러더니 이런 날(25주년)도 오네.”

9집에 들어간 ‘라이어(거짓말쟁이)’라는 곡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두고 만든 노래다. 2008년에 공개한 디지털 싱글 앨범에 들어있던 곡인데 이번에 정규 앨범에 포함됐다. “모든 게 오해라고 / 그런 적 없었다고 / 진실로 살아온 성공한 리더라고 / 신문은 주머니에 법전은 손바닥에 / 욕심은 뱃속 깊이 양심은 항문으로 / 못한 사람이 무능한 거지 / 세상의 진실은 땅에 묻혔어.” 이런 가사의 노래가 지상파 방송을 타지 못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걸까.

블랙홀의 노래는 그 어떤 비판 기사보다도 적나라하다. 우회하지 않고 정확하게 직선으로 핵심을 파고든다. “아무리 따져 봐도 버티면 묻혀지지 / 세상은 변했지 무감각 해져가지 / 없는 자 몰아내어 천국을 만들었고 / 가진 자 끌어 모아 낙원을 이루었지 / 돈과 힘만이 세상의 중심 / 성가신 정의여 숨을 거둬라 / It’s a lie I don’t believe(거짓말이야, 난 못 믿겠어) / It’s a lie Everyday lie(거짓말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

블랙홀의 음악은 모두 주상균씨가 직접 작사작곡을 한다. ‘ECIC’란 곡도 이 전 대통령의 4대강 개발사업을 비판한 노래다. ‘ECIC’는 ‘이씨 아저씨’의 경상도식 발음이라고 한다. “파내라 파내 풀뿌리 / 묻어라 묻어 눈물들 / 올려라 올려 더 높이 / 가져라 가져 모조리 / 날아라 날아 있으면 / 기어라 기어 없으면.” 블랙홀은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 때도 기꺼이 광장에 나섰다. 민중가수로 나섰느냐는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였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오래 음악을 하면 날마다 진보한다는 느낌이 드나. 당신들 음악의 목표는 뭔가.” 주상균씨의 답변이다. “같은 노래지만 할 때마다 다르다. 얼마만큼 연습을 해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알면 알수록 가야 되는 게 있으니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우리들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고 싶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음악이니까 우리는 음악으로 싸우는 거다. 남들이 안 하니까 우리가 한다.”

이명박 시대를 지나 박근혜 시대를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희망’이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주상균씨는 “주변에 둘러보면 안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없는데, 과연 희망이 있을까, 이게 뭐야, 왜 산 거냐, 그런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여전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많더라”면서 “위안을 준다기 보다는 뭔가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럴까 블랙홀 팬 50여명이 참여했다는 마지막 곡의 합창 부분은 뭉클한 감동마저 준다.

마지막 곡 ‘그 길은 외롭지 않습니다’는 팬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고 블랙홀 멤버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짐이기도 하다. “되돌아보니 그리운 얼굴들 / 멀고 험한 길에도 함께한 얼굴들 / 어두운 밤에 혼자이지 않게 / 언제나 함께 했던 그리운 얼굴들 / 어두운 밤에 두렵지 않도록 / 별빛을 가리키던 그리운 얼굴들 / 바람에 날려도 빗물에 쓸려도 / 멈추지 않게 함께 한 모습들 / 지나온 걸음마다 함께 한 얼굴들.”

주상균씨는 미디어오늘의 오랜 열독자이기도 하다. 한때 미디어오늘 고정 필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더 프레스 디프레스’는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티비, 라디오, 신문, 사이버 / 갖고, 버리고, 안고, 누르고 / 힘에 눌리어 아프겠지만 / 보고, 써 내린 있는 그대로 / 어두운 날이 다시와 빛을 가려도 / 흔들리지 않고, 잠들지 않는 / 용기와 자부심의 진실을 말해줘 / 더 프레스 / 먼 훗날 남겨진 오늘이 / 디프레스 / 떨쳐낼 힘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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