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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와 통신사들 짜고치는 고스톱 현장을 공개합니다.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30, 2013

때리는 척을 하면 우는 척을 한다. 이동통신 단말기 보조금 규제를 두고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27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통신 3사에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때렸다. 단말기 보조금을 너무 많이 줬다는 이유에서다. 과징금은 SK텔레콤이 560억원, KT가 297억원, LG유플러스가 207억원씩 모두 1064억원이다. 방통위는 경쟁 과열을 주도한 사업자를 가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영업정지 없이 과징금만 부과했다.


방통위는 단말기 한 대에 보조금이 27만원 이상이면 위법이라고 보고 있다. 통신 3사가 지급한 단말기 보조금은 평균 41만4000원, KT가 43만원, SK텔레콤이 42만1000원, LG유플러스가 38만원으로 나타났다. 100만원짜리 단말기를 58만6000원 정도에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24개월 분할 납부로 하면 월 2만4417원 정도만 내면 된다. 최근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출고가 90만원짜리 삼성전자 갤럭시S4가 할부원금 17만원에 판매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방통위가 보조금을 때릴 때마다 통신사들은 엄살을 부린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사상 최대 규모라느니, 과징금 폭탄이라느니 영업실적이 흔들린다느니, 그러나 따져보면 1064억원은 통신사들 이익 규모에 견주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나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7300억원, KT는 1조2240억원, LG유플러스도 1270억원이나 된다. 1064억원이면 통신 3사 영업이익의 3.4% 수준이다.

통신사들은 보조금 규제를 내심 바란다.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수 없으니 방통위가 나서서 과열 경쟁을 규제하고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이야기다. 방통위가 과징금을 때릴 때마다 통신사들 주가가 치솟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과징금 몇 백억원 보다 마케팅 비용을 줄여서 얻는 이익이 훨씬 더 크다. 소비자들을 위하는 척 하지만 보조금이 줄어들어도 통신 요금을 내리지는 않는다. 줄어든 보조금은 고스란히 통신사들 이익이 된다.

방통위 회의 때마다 나온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가관이다.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야단치는 시늉을 하면서 적당한 수준의 과징금을 때리기로 합의하고 통신사 관계자들은 과징금이 지나치게 많다며 갖은 엄살을 떤다. 이경재 방통위 위원장은 심지어 “보조금은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가) 공동으로 주는데 통신사에만 과징금 매기는 게 안타깝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국회에 계류돼 있는 단말기 유통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7월 방통위가 KT에 단독 영업정지를 부과했을 때 KT 관계자가 “위법 행위는 많았지만 방문자가 가장 많이 줄었다”면서 항변하자 양문석 상임위원이 “퍽치기를 했는데 지갑에 돈이 없다, 그럼 봐줘야 되느냐”고 극단적인 비유를 꺼내기도 했다. “90만원 주고 산 사람 있고, 18만원 주고 산 사람 있어요. 퍽치기잖아요. 국민 개개인의 이익에 엄청 반하는 거잖아요. 근데 참 마음씨 좋으시네요. 퍽치기 했는데 과정도 보고 사정도 봐줘야 한다고 하는 겁니까.”

남이 더 싸게 사면 개개인의 이익에 반한다는 발상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너무 싸게 팔았으니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애초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LG유플러스 관계자에 따르면 단말기 보조금의 40~50% 정도를 제조사가 부담하고 나머지를 통신사가 부담한다. 애초에 단말기 보조금에 거품이 있다는 의미겠지만 이처럼 획일적인 보조금 단속과 규제로 그런 거품이 빠지지는 않는다.

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있었다. LG유플러스 관계자가 “고가 스마트폰이 확산되고 있으니 보조금 기준을 27만원에서 30만원 이상으로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하자 양문석 위원이 이렇게 말한다. “LG유플러스 돈 많나요? 27만원에서 더 내리고 거품을 빼야 할 텐데 이 시점에서 보조금 또 올려서 거품을 끼우고 90만원에 사는 사람, 18만원 사는 사람 또 나오고. 이거 이용자 차별입니다. 도대체 누굴 위해서 보조금 올려야 되는지 설명해 보세요.”

LG유플러스 관계자가 “27만원은 자체가 높다 낮다보다는 이 기준을 위반하는 행태가 항상 벌어지고 그래서 고객 입장에서도 고객의 차별성이라는 행위가 항상 일어난다고 생각한다”고 다시 항변하자 양 위원이 “50만원이면 그게 70만~80만 안 뛰겠느냐”면서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상대보다 더 조금 더 쓰려고 하는 상대보다 더 끌어올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LG유플러스는 3위 업체라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해야 조금이나마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방통위가 마케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LG유플러스가 SK텔레콤이나 KT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주면 그게 국민 개개인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방통위는 모든 통신사들이 27만원씩 보조금을 주면 그게 공정한 경쟁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주먹구구식 단속과 형식적인 과징금 또는 영업정지 조치로 이용자 차별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LG유플러스 관계자가 “현실적이고 적정한 수준으로 가이드라인이 정해지고, 어느 누구도 위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다시 반박하자 양 위원이 다시 반박한다. “3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원가는 200만원으로 또 가고 보조금 170만~180만원 쓰겠죠. 올리면 그 이상에서 또 경쟁하겠죠.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더 낮춰야 됩니다. 이게 이용자 보호하는 방안입니다. 낮춰진 가이드라인에서 또 명확히 징계해야 합니다.”

다른 위원들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홍성규 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느닷없이 보조금 올리자는데 내리면 내려야지, 왜 올리자는 건지 오늘 할 이야기 아니거든요. 위법 투성인데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김충식 부위원장도 같은 맥락이다. “포화상태고 LTE-A 진화하고 있어서, 번호이동 싸움으로 사업자들이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거 방치하면 행정의 존재이유가 없어집니다.”

27일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대희 상임위원은 ” 보조금이 이용자들을 차별하는 결과를 불러온다”고 일장 훈계를 늘어놨고 김충식 부위원장도 “하늘이 뻥 뚫려 있는 것 같지만 다 내려다 보고 있다”면서 “시장 혼탁에 대한 책임을 무섭게 추궁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성규 위원도 “새해에는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서비스경쟁으로 국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마케팅을 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방통위의 기조는 과도한 보조금이 이용자들을 차별한다고 보고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양문석 위원의 표현에 따르면 90만원짜리 단말기를 누구는 50만원에 사고 누구는 18만원에 사면 안 되기 때문에 모두가 63만원에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강제로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결국 통신사들만 이익을 본다는 사실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고가 평준화를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과열 경쟁을 막는다고 게 명분인데 방통위가 마케팅 비용을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 단말기 부품 수입이 무역적자를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하는 조항이 전기통신사업법에 있었지만 2007년 일몰 시점 이후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은 대부분 부품이 국산화돼 있어 그나마도 명분이 없다.

방통위가 유일하게 근거로 삼는 조항은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42조, “전기통신서비스의 요금이나 번호, 설비, 또는 그 밖의 경제적 이익 등을 다른 이용자에 비하여 부당하게 차별적으로 제공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 보조금은 불법이 아니지만 차별적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논리인데 이런 논리에 따르면 방통위는 보조금 상한을 높여달라는 LG유플러스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도 군색하게 된다.

전 이사는 “싸게 파는 게 이용자들을 차별 한다고? 오히려 싸게 못 팔게 하는 게 이용자들의 이익을 저해하는 과잉 규제”라고 지적했다. 전 이사는 “결국 보조금 경쟁이 심화되면 통신사들의 이익을 저해한다는 말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담합을 조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전 이사는 “요금 규제는 하지 않으면서 마케팅 비용만 규제하고 정작 통신사들은 과점 구도를 유지하면서 떼돈을 버는데 아무런 관리감독 방안도 없다”고 비판했다.

애초에 27만원이라는 기준 자체도 모호하다. 2009년 기준으로 통신사들이 가입자 한 사람을 유치해서 얻을 수 있는 예상 이익을 27만원으로 잡고 누군가에게 27만원 이상 보조금을 주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보다 더 적은 보조금을 줄 수밖에 없을 테니 이용자 차별이 분명하다는 어설픈 논리다. 규제의 기준이나 명분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LTE 서비스 도입 이후 통신사들 이익 수준이 크게 늘어난 걸 감안하면 현실성 없는 가이드라인이다.

이처럼 마케팅 비용을 규제하는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공정거래법에서는 경쟁 사업자를 몰아내기 위해 부당하게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부당염매를 규제하고 있지만 단말기 보조금은 이런 경쟁제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마케팅을 규제하는 보조금 금지법이 경쟁제한 행위에 가깝다. 경쟁이 과열됐다는 이유로 경쟁을 제한한다는 논리는 결국 통신사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방통위의 입장을 듣기 좋게 포장한 것뿐이다.

방통위는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만 요금제 인가를 하고 나머지 KT와 LG유플러스는 신고만 받는다. SK텔레콤이 지나치게 가격을 낮춰 시장 질서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제도인데 실제로는 SK텔레콤이 적당히 가격을 올려서 요금제를 내놓으면 다른 사업자들도 적당히 그 수준의 요금제를 내놓아 사실상 담합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말기 보조금까지 규제하면 가격 변별력이 없어지게 된다.

방통위가 대안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단말기 유통법은 이런 모호한 보조금 규제를 법제화하려는 시도다. 단말기 유통법은 통신사 대리점에 단말기 출고가와 보조금을 공시하도록 하고 출고가의 15% 이상 보조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입자는 보조금이나 통신요금을 할인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통신사 뿐만 아니라 단말기 제조사들도 보조금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보조금까지 규제해 애초에 출고가를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고 제조사들은 보조금 규제가 강화되면 단말기 판매가 줄어들 걸 우려해 반발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보조금 내역을 제출하면 해외로 영업기밀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용자 차별을 금지한다는 법을 두고 사업자들은 저마다 손익 계산에 분주한 모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이 법이 통과되면 단말기 할부 원가가 지금보다 크게 뛰어오를 가능성이 크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부풀려진 단말기 가격이 낮아지면 보조금 지급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텐데 방통위는 이를 외면하고 엉뚱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면서 “보조금 규제에 앞서 요금제 담합과 폭리구조부터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처장은 “절대적으로 비싼 요금제를 방치하면서 보조금만 규제하면 통신사들의 폭리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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