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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코스프레는 약해? 회장님들 ‘침대’끌고 법정으로.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30, 2013

[뉴스분석] 환자복 차림에 면도 안한 초췌한 모습, 링거도 기본… ‘법정의 기적’ 연출하기도

이제는 휠체어로는 비주얼이 안 나온다. 침대 정도는 끌고 나타나야 동정심을 살 수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9일 서울 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까지 꽂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김 회장은 지난해 8월 위장 계열사의 빚을 다른 계열사에 떠넘긴 혐의로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으나 올해 1월 건강이 안 좋다며 구속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4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줄어들었고 지난달 대법원은 배임액 산정이 잘못 됐다며 사건을 서울 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김 회장은 세 차례나 구속 집행정지 기간을 연장했는데 다음달 7일이면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한다. 김 회장은 최근 다시 연장 신청을 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몸이 나쁜 상태가 교도소 수용이 불가능할 정도인지 의문이다, 의사 출신 검사들도 상당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룹 회장들이 법정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 것은 징역을 살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겠지만 다분히 언론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포토라인 앞에서 죽치고 있는 사진기자들을 뚫고 나가려면 어떤 사진이 찍힐지 통제가 안 된다. 그러나 경호원들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올라타면 표정관리도 되고 기자들의 질문 공세도 피할 수 있다. 아픈 사람이니 괴롭히지 말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셈이다.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환자복을 갈아입지 않는 건 물론이고 면도도 하지 않아야 한다. 마스크를 쓰는 것도 좋고 링거병을 들고 나타나는 것도 좋다. 판사의 질문에 꺼져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거나 그나마 아예 대답을 할 수 없는 정도는 돼야 동정심을 끌어낼 수 있다. 휠체어가 고통의 표현이라면 침대는 좀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를 테면 나는 죽어가는 사람이다, 감방에 보내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인 셈이다.

김 회장은 판사가 생년월일과 주소 등을 묻자 직접 답변을 했다. 흰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기도 했다. 만성 폐질환과 천식에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는 의사의 설명이 있었지만 반신불수가 아닌 이상 법원까지 병원 구급차를 타고 왔더라도 20분 남짓한 동안 휠체어로 갈아탈 수는 없었는지 의문이다. 법정에서는 판사가 법정에 들어서면 전원 기립을 해야 한다. 그런데 김 회장은 침대에 누워서 판사를 맞았다. 일반인들도 이런 ‘깡’을 부릴 수 있을까.

김 회장은 서울대병원 VIP 병실에 묵고 있다. 부속실이 달린 웬만한 아파트 넓이의 병동에 하루 입원비가 60만~100만원. 그나마 4개 병실 밖에 없는데 김 회장과 CJ그룹 이재현 회장,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 머물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이 병원 VIP 병실에 입원하려 했으나 자리가 나지 않아 다른 병동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의 재판에는 이 병원 의사 4명이 함께 동석해 김 회장의 병세를 설명했다.

검찰은 “구속집행정지 연장 심리가 있을 때마다 김 회장이 대금을 지급하는 서울대병원 의사가 진술하고 있어 공정성에 의문이 간다”며 “진료기록을 객관적인 제3의 기관이나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판사는 “의사라는 직업적 양심을 전제로 말하는 소견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판사는 김 회장 변호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20분 만에 퇴정을 허락했다.

김 회장이 꾀병을 부리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재벌 회장의 환자 코스프레는 역사가 길고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하다. 한국의 재벌 회장들은 체어맨이 아니라 휠체어맨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 법원은 기업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회사를 계속 경영하도록 하는 것이 국익이라고 믿는 것 같다”며 “모든 시민을 평등하게 다루는 사법제도가 오히려 더 국익에 부합하지 않겠느냐”고 비꼬기도 했다.

지난 7월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던 영훈학원 김하주 이사장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러 나오면서 간이침대에 누워 링거까지 꽂고 나타났다가 구속이 결정되자 환자복 위에 양복 저고리를 걸쳐 입고 걸어 나왔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아프면 법원에 가야겠다”거나 “구속영장이 특효약”이라거나 “예수가 일어나라라고 하자 환자가 벌떡 일어났다는 성경 속의 기적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는 등의 우스갯소리가 한동안 나돌았다.

태광그룹 이선애 상무는 침대에 담요까지 뒤집어쓰고 나타났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은 휠체어에 안대를 하고 나타났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나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거슬러 올라가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까지 휠체어는 재벌 회장들의 필수 아이템이었는데 최근에는 침대에 담요로 진화하고 있다. “아프니까 재벌이다”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런 환자 코스프레가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을 청부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영남제분 사모님 윤아무개씨는 유방암과 파킨슨병 등을 형집행정치 처분을 받아 6년 가까이 병원에서 생활해 왔다. 윤씨에게 가짜 진단서를 발급했던 연세세브란스병원 박아무개 교수도 구속기소됐다. 이홍하 서남대 총장처럼 병보석으로 풀려났다가 꾀병이라는 게 밝혀져 다시 수감된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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