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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 나갔던 CJ, 사방이 적이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10, 2013

서울 중구 쌍림동 CJ제일제당센터 1층 로비 벽면에는 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홀로그램 영상이 떠 있다. CJ그룹의 뿌리가 삼성에 있고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이병철 전 회장의 적통을 이어받은 장손이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조형물이다. 2011년 8월 일이다. 이 흉상을 두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쪽에서 굉장히 불편해 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삼성과 CJ의 감정의 골이 그리 깊지는 않았다.


그해 11월 이 전 회장의 추모식에서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은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이 날이 공식적으로 두 사람이 만난 마지막 자리였다. 1년 뒤인 지난해 11월 이재현 회장은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삼성이 정문을 쓸 테니 CJ는 후문을 쓰라는 통보에 굉장히 불쾌해 했다는 후문이다. 삼성은 “원래 정문 후문이 따로 없다”고 설명했으나 CJ는 “24년 동안 다녔던 정문을 두고 쪽문으로 들어가기는 장손으로서 낯을 들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듬해 2월 이재현 회장의 아버지, 이맹희씨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4조원 규모의 유산 분배 소송을 내면서 두 그룹은 완전히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선다. 며칠 뒤 CJ는 삼성이 사람을 시켜 이재현 회장을 미행했다고 언론에 폭로한다. 삼성은 며칠 뒤 CJCLS와 거래를 끊었고 CJ도 에스원과 거래를 끊는 등 극단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한다. 결국 삼성이 승소하긴 하지만 이 소송은 두 그룹에 모두 큰 상처를 남겼다.

삼성과 CJ의 갈등은 1967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병철 전 회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이맹희씨가 경영일선에 나선 건 잠깐, 6개월 만에 아버지의 신뢰를 잃고 동생인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게 된다. 이맹희씨는 동생이 악의적인 헛소문을 퍼뜨려 아버지와 자신을 갈라놨다고 믿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이씨를 가리켜 “우리 집에서는 퇴출당한 양반, 아무도 그를 장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CJ 비자금 사건 수사의 배후에 삼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산 소송의 보복 차원에서 확실히 CJ의 싹을 자르려고 검찰을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너무 나간 음모론이지만 업계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돈다. 만약 이맹희씨가 소송에 승소했다면 삼성의 후계구도가 송두리째 무너질 판이었다. 삼성이나 CJ나 생존을 담보로 진흙탕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지난해 7월 국회에 나돈 출처불명의 문건을 둘러싼 공방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CJ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는데 일부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된 이 문건에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의 최대 수혜자는 CJ가 될 것”이라며 “1위 업체의 독점 체제를 강화, 경제 민주화에 역행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삼성에서만 쓰는 훈민정음 폰트로 작성된 데다 삼성 대관 담당자들이 이 의원들을 만난 정황도 일부 언론에 확인된 바 있다.

삼성과 CJ는 겹치는 사업 영역이 거의 없다. 방송법 시행령이 불발된다고 해서 삼성이 얻는 이익은 없지만 CJ 입장에서는 엄청난 타격이 된다. 삼성이 CJ의 발목을 잡으려고 모든 조직력을 동원해 로비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업계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로 떠돈다. 삼성의 막강한 네트워크, 그리고 박근혜 정부와의 허니문,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재현 회장이 배제됐던 최근 박근혜 대통령 방미 사절단에서 모종의 합의가 이뤄졌을 거라는 관측도 나돈다.

검찰은 CJ를 그야말로 탈탈 털고 있다. 페이퍼컴퍼니를 경유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부터 검은 머리 외국인을 동원해 주가조작을 했다는 의혹이나 무기명 채권을 동원해 자녀들에게 편법 증여를 했다는 의혹, 계열사 부당 지원 의혹 등 그야말로 있을 수 있는 대부분의 기업 범죄들이 망라되고 있다. 이런 의혹들이 검찰 발로 흘러나오고 그대로 기사화된다. 과거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 때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동안 재벌 관련 검찰 수사가 있을 때마다 경제에 타격 운운하며 기업들 편에 섰던 보수·경제지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침묵할 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은 검찰이 흘린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도 보인다. 업계에서는 CJ가 신문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돌지만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정치적 역학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CJ는 지금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올해가 창립 60주년이다. 제일제당이 삼성에서 갈라져 나온 게 1993년이니까 이재현 회장 체제는 올해로 20년이다. 이 회장은 삼성가의 장손으로 그룹을 물려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비교적 탄탄하게 그룹의 기틀을 다져온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설탕 팔던 회사가 국내 굴지의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 파란만장한 굴곡의 역사가 있었지만 지난 몇 년은 CJ의 최대 전성기였다.

CJ그룹은 2009년 오리온그룹의 온미디어를 사들여 이듬해 계열사인 CJ오쇼핑과 합병하는 데 성공한다. 독과점 논란이 제기됐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CJ의 손을 들어줬다. 2011년에는 대한통운을 인수해 편입하고 올해 4월 CJGLS와 합병하는 데 성공한다. CJ그룹은 미디어와 물류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부문은 콘텐츠 제작과 유통 전반에서 수직 계열화를 이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CJ는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다. 우선 CJ헬로비전과 CJE&M은 각각 업계 1위의 케이블 방송 사업자(SO)와 케이블 채널 사업자(PP)다. 지상파 방송사나 종합편성채널 입장에서는 같은 파이를 두고 싸우는 껄끄러운 경쟁 상대일 뿐만 아니라 복잡한 계약 관계로 얽힌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SO들과 재송신 수수료를 두고 분쟁을 거듭하고 있고 tvN이나 엠넷 등 PP들의 공세에 시청률도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

통신사들과 SO들은 거의 같은 시장을 두고 싸운다. 이를 테면 KT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반대하고 CJ헬로비전은 KT의 DCS 서비스 허용을 반대한다. 종편들은 노골적으로 CJ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에는 종편도 아니면서 시사 프로그램을 한다는 이유로 유사 보도채널을 규제해야 한다는 보도를 쏟아내기도 했다. 2011년 12월 종편 출범 때는 SO들을 압박해 황금채널을 받아내기도 했다.

삼성이 국내 최대 광고주로 언론사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과 달리 CJ는 신문 광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 비교적 비즈니스 프렌들리 성향을 보였던 신문들까지도 CJ를 감싸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성이 막대한 광고물량을 틀어쥐고 언론과 공동 운명체라는 입지를 굳혔다면 CJ는 경쟁상대일 뿐이다. CJ헬로비전과 CJE&M은 모든 방송과 신문의 공적 1호가 됐다.

한편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도 뭔가 경제 민주화의 상징으로 내세울 만한 사례가 필요했을 거라는 관측도 나돈다. 포스코 라면 상무와 남양유업 사태, 편의점 점주들의 잇단 자살사태 등을 겪으면서 갑의 횡포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때 마침 터져 나온 뉴스타파의 조세 도피처 관련 폭로는 박근혜 정부가 뭔가를 터뜨리기에 적절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이 CJ 비자금의 실체를 처음 확인한 게 2008년이라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때도 CJ 본사와 국세청 압수수색이 있었고 CJ가 탈세 사실을 시인하고 1700억원의 세금을 납부했지만 검찰은 사건을 덮었다. 업계에서 검찰이 CJ 비자금을 재발견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왜 하필 지금이냐, 그동안은 왜 묻어뒀느냐는 의혹과 함께 정치적 배후를 둘러싼 음모론도 끊이지 않는다.

결국 최근 일련의 강도 높은 CJ 수사와 언론 플레이는 삼성과 정부와 언론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CJ가 tvN 최일구의 끝장 토론 등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하면서 납작 엎드린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부는 한 번 더 언론을 틀어쥐고 언론은 기득권 플랫폼을 더욱 공고하게 다지고 삼성은 누가 이 모든 상황을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삼성 공화국의 씁쓸한 단면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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