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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겨 맞는 CJ, 뉴스 없는 미디어 그룹의 비애?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18, 2013

납작 엎드린 재벌 방송… ‘끝장토론’ 무기한 연기, “창조경제 응원” 신문광고도.

“우리 정말 종편에 관심 없습니다.” 종합편성채널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기자들이 CJ를 찾았지만 늘 같은 답변이었다. 종편 출범 직후 한때 TV조선 등이 사업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이에 맞춰 CJ에 종편 인수 태스크포스가 떴다더라, 어디어디가 CJ와 접촉을 했다더라는 소문도 설득력 있게 떠돌았다. CJE&M 관계자의 답변은 “지금 하고 있는 것 잘 하기에도 바쁘다”는 것이었다.


CJ 지주회사 관계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렇다. “언젠가 우리가 종편을 인수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낮은 가격이 돼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굳이 특혜 논란을 무릅쓰고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마지노선은 굉장히 낮다.” 지금의 콘텐츠 포트폴리오가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이야기였다. 돌아보면 CJ는 최근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다가올 위기를 전혀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CJ의 미디어 사업부문은 크게 CJ헬로비전과 CJE&M , CGV 세 축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CJ헬로비전은 유선방송 사업자, 흔히 SO라고 불린다. CJE&M은 tvN과 엠넷, 투니버스, 슈퍼액션, XTM 등 케이블 채널을 운영하는 유선방송 채널 사업자, 흔히 PP라고 불린다. CJ헬로비전과 CJE&M은 각각 SO와 PP 업계 1위 사업자다. CJ는 이밖에도 영화 배급사인 CJ엔테테인먼트와 멀티 플렉스 체인인 CJCGV 등으로 수직 계열화를 이루고 있다.

CJ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리온그룹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오리온의 OCN에 맞서 CJ가 채널CGV를 만들고 CJ의 엠넷미디어에 맞서 오리온이 MTV를 만들고 다시 CJ가 KMTV를 인수하는 식이었다. 영화판에서는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 CGV와 메가박스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러나 CJ가 CJ오쇼핑을 내세워 2010년 온미디어의 지분 55.17%를 4344억원에 인수하면서 CJ 독주 체제를 굳혔다.

CJE&M은 온미디어와 CJ인터넷, 엠넷미디어, CJ미디어, CJ엔터테인먼트 등을 흡수 합병해 만든 회사다. CJ엔터테인먼트가 영화를 만들거나 들여오면 전국 113개 CJCGV 상영관에서 튼다. CJ엔터테인먼트의 관객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27.9%, CJCGV 스크린 점유율은 44.3%에 이른다. 그렇게 틀고 난 영화는 CJE&M의 채널CGV나 캐치온에서 틀고 다른 PP들에게 다시 팔기도 한다.

요즘 SO들은 케이블과 인터넷은 물론이고 전화 사업도 한다. 이른바 트리플, 쿼드러플 서비스라고 한다. CJ헬로비전은 최근 헬로모바일이라는 이름으로 MVNO(가상 이동통신망 서비스)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KT 망을 임대해서 서비스하는데 KT 보다 요금이 7000원 이상 싸다. 티빙이라는 이름으로 N스크린 서비스도 한다. KT와 사업 영역이 완전히 겹치는데 가격 경쟁력이 있고 상대적으로 네트워크 보다는 콘텐츠에 더 집중하는 시스템이다.

10여년 전 오리온그룹과 경쟁하던 시절에는 콘텐츠 구매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곤 했지만 과점 구도를 형성한 지금은 막강한 ‘바잉 파워’가 생겼다. CJE&M은 콘텐츠 제작과 배급, 유통과 부가 판권 전반에 이르는 밸류 체인을 구축한 국내 유일의 종합 미디어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채널 온게임넷과 온라인 게임 사이트 넷마블도 모두 CJE&M 계열사다. 최근 카카오톡에서 대박을 터뜨린 ‘모두의 마블’도 CJ 작품이다.

CJ는 종편 같은 말 많은 사업에 뛰어들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다. 일찌감치 골치 아픈 보도 부문에 관심을 끄고 철저하게 드라마와 연예·오락에 집중해 왔다. ‘슈퍼스타K’나 ‘응답하라 1997’, ‘SNL코리아’, ‘코미디 빅 리그’ 같은 독특하고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면서 시청률을 높여왔다. 종편이 명색만 종편일 뿐 손을 대는 드라마마다 실패하고 적당히 시사·보도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종편과 CJ가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 데는 이런 복잡한 배경이 있다. 종편과 CJ는 같은 파이를 두고 싸우는 경쟁 관계면서 갑과 을로 얽히는 사업 관계이기도 하다. 종편 출범 초기에는 케이블 채널 배정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고 최근에는 유선방송 수신료 배분 문제를 두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에만 허용된 8VSB 전송 방식을 종편에 허용하는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CJ를 잡아야 종편이 살 수 있는 상황이다.

6월13일 최민희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종편 관계자들 비밀 회동 문건에 따르면 채널A 관계자가 “CJ를 무력으로 진압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JTBC 관계자가 “CJ를 총체적으로 공략해서 어느 수준에서 CJ가 백기를 들면 그 이후에 각사가 사정에 맞게 개별 협상을 벌이자”고 말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미디어오늘 집계에 따르면 이 대책회의 직후 6월13일까지 종편 4사와 조중동매 신문들이 쓴 CJ 관련 기사가 416건에 이른다.

8VSB는 주파수 대역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만약 종편 4개 채널이 8VSB 방식으로 전환하면 기존의 다른 PP 채널이 최대 12개 가까이 빠져야 한다. 이미 8VSB 방식으로 전송되고 있는 지상파 채널들과 인접 대역으로 묶어야 한다는 것도 민감한 문제다. 시청률이 훨씬 잘 나오는 tvN 등에도 못 주는 특혜를 달라는 것도 펄쩍 뛸 일이지만 지상파 채널 사이에 있는 홈쇼핑 채널을 밀어낼 경우 수천억원에 이르는 채널 수수료를 날리게 된다.

CJ 미디어 왕국의 또 다른 축은 CJ헬로비전이다. 지상파 직접 수신 비율이 10%도 채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가구가 SO를 통해 TV를 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CJ헬로비전의 시장 점유율은 23.4%인데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운다는 전략이다. 3위 업체인 씨앤엠을 인수할 경우 점유율이 41.6%로 방송법에 규정된 점유율 규제를 넘게 되는데 이를 완화하는 시행령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조중동은 이를 ‘CJ 특별법’이라고 부르며 반대하고 있다.

종편과 CJ는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종편 입장에서는 CJ헬로비전을 쥐고 흔들어 유리한 채널을 따내고 재송신 수수료도 높여 받아야 한다. CJ는 종편이 의무전송 채널로 편성돼 있는 데다 황금 채널을 공짜로 쓰고 있기 때문에 재송신 수수료는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CJ는 지상파들과도 재송신 수수료 문제를 두고 지루한 협상을 계속하고 있는데 종편은 조중동을 내세워 CJ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특혜를 주문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CJ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CJ 관계자는 “평소에 신문들에 광고라도 했어야 했던 것 아닐까 하는 후회가 든다”고 말했다. “어느 언론도 CJ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도 했다. 삼성이 국내 최대 광고주로 언론사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과 달리 CJ는 신문 광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 비교적 비즈니스 프렌들리 성향을 보였던 경제지들까지도 CJ를 감싸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MBC를 떠나 최근 tvN에 합류한 최일구 앵커가 맡을 예정이었던 ‘끝장토론’이 무기한 연기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tvN은 첫 방송을 하루 앞둔 지난 5월28일 보도자료를 내고 “언제까지 연기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방송을 기다린 분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검찰이 일주일 전 CJ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난 1주일 뒤였다. 엎드려도 너무 납작 엎드린 것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재벌 방송’의 구조적 한계라는 지적도 나왔다.

CJ의 백기 투항은 최근 조중동 등 종편을 소유한 신문들이 유사 보도 프로그램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에도 한경와우TV나 MTN, 이데일리TV 등 경제지들이 만든 유사 보도채널이 문제라는 지적은 많았지만 공론화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조중동의 공격은 엉뚱하게도 tvN에 집중됐다. “‘쿨까당’이나 ‘끝장토론’ 같은 프로그램들은 교양 프로그램을 빙자한 보도 프로그램”이라는 게 조중동의 논리였다.

CJ는 미디어 그룹이면서 언론은 아닌 독특한 영역에 있다. 특혜와 유착으로 출범한 종편이 CJ의 유사 보도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건 방송보도의 기득권 장벽을 굳건히 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방송은 돈만 있으면 할 수 있지만 보도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영역 표시인 셈이다. CJ는 납작 엎드렸다. 유사 보도 프로그램은 수위를 낮추거나 폐지 수순으로 가고 있고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라는 노골적인 광고를 언론에 뿌리기도 했다.

CJ는 지난 몇 년 동안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한국의 디즈니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 단단한 위상을 갖췄지만 정작 보도 기능이 없는 미디어 기업의 한계를 드러냈다. CJ 관계자는 “돈 안 되는 보도 기능은 필요 없다는 게 그동안 CJ의 기본 입장이었는데 이번 사건을 치르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구축한 영향력이 정치권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CJ는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컸다. 지상파 방송사들과 조중동 종편의 밥그릇까지 위협한 결과다. CJ 비자금 수사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플랫폼 시장에서 CJ의 헤게모니를 무너뜨리려는 콘텐츠 사업자들의 공격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그리는 창조경제의 윤곽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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