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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지도, 커뮤니티 매핑.

Written by leejeonghwan

May 28, 2013

임완수 미국 메히리대 교수는 과테말라 출신의 한 고등학생이 죽기 며칠 전에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저는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학생은 그 말을 남기고 며칠 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임 교수는 말한다.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그래도 그 학생이 세상을 증오하지 않도록 희망을 찾게 해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데 꼭 엄청난 신념과 희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작은 아이디어와 작은 기여가 모여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임 교수의 작은 실험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임 교수는 스스로를 “커뮤니티 매핑 전도사”라고 부른다. 커뮤니티 매핑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처음 알린 임 교수는 “사람과 사람, 공동체와 공동체, 지역사회와 지역사회를 연결해 보다 평등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임 교수가 커뮤니티 매핑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2005년 공공 화장실 지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는 공공 화장실이 많지 않다. 호텔이나 음식점은 고객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임 교수는 공공 화장실을 나타낸 지도가 있으면 얼마나 편리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구글 맵스를 이용해 간단한 사이트를 만들어서 공개했다. 누구나 지도 위치를 업로드하고 설명을 추가하거나 평점을 매길 수 있다.

사이트 이름도 간단하다. 뉴욕 화장실(nyrestroom.com). 이 사이트에 가면 무려 453개의 화장실이 표시돼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간단히 이 주소만 집어넣어도 자기 주변에 있는 화장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사이트가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의 참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임 교수는 사이트를 만들고 누구나 화장실 정보를 추가할 수 있도록 개방했을 뿐이다. 누군가가 혼자 만들려고 했으면 1년이 걸려도 어려울 일이었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저지주에 허리케인 샌디가 엄청난 피해를 남겼을 때다. 임 교수는 마침 고등학생들과 커뮤니티 매핑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휘발유와 가스를 구하지 못해 쩔쩔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 전체가 정전이 돼서 주유소를 가동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가스가 떨어진 차가 길거리에 멈춰서기도 했고 비상 발전기를 가동할 기름을 구하는 사람들로 주유소마다 장사진을 이뤘다.

임 교수는 학생들을 풀어 어디 가면 기름을 구할 수 있는지 확인해서 지도에 표시하도록 했다. 그리고 서너 시간 만에 도시 전체의 주유소 지도가 완성됐다. 어느 주유소에 가스가 남아있고, 어디는 전기만 들어오면 당장 가동할 수 있고, 어디는 가스가 끊겼고 어디는 다시 들어왔고 등등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반영됐다. 어느 언론사도 이렇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게 고등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겨우 지도 한 장인데, 이 한 장의 지도에 수백 장의 사진과 수천 마디의 기사로 담지 못한 정보가 담긴다. 정보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강한 결속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임 교수는 “커뮤니티 정보의 생산자면서 동시에 수요자로서 재해를 입은 주민들의 상황을 함께 경험하거나 공감하고 정보 이용자의 시점에서 요구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구성하고 정보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4일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열린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컨퍼런스에서 만난 임 교수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고 정보기술(IT) 활용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커뮤니티 매핑을 활성화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면서 “생각하는 것처럼 복잡하지 않다, 초등학생들도 간단히 원리만 설명해주면 놀랄만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낸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구현할 아이디어와 사람들에 대한 신뢰”라고 강조했다.

서울 숭덕초등학교에서는 학교 주변 유해 환경을 지도에 담는 실험을 한 적 있다. 학생들이 직접 학교 주변을 돌면서 호프집과 노래방 등 유흥시설을 찾도록 했는데 몇몇 학생들은 ‘깡패들에게 돈을 뺏긴 골목길’을 표시했다. 한 학생은 코멘트에 “다른 친구들이 깡패에게 돈을 뺏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모를 남겼다. 학생들은 건축 폐기물이 방치돼 있는 곳이나 전신주가 기울어 있는 곳도 표시했다.

커뮤니티 매핑의 활용도는 매우 넓다. 전북 무주의 고등학생들이 만든 반딧불이 지도는 단순히 생태 조사에 그치지 않고 생태 복원을 요구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고 있다. 장애인들이 직접 서울시청 주변을 돌면서 장애인 접근성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차도와 보도 사이의 턱 높이를 재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고 음향 신호기가 없거나 점형과 선형 유도 블록이 잘못돼 있는 곳 등을 표시했다.

남아프리카의 키베라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 커뮤니티 매핑을 알려줬더니 주민들이 학교와 교회, 관공서, 병원 등의 위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에서는 신호등 고장이나 불법 쓰레기 투기, 시설물 고장 등을 커뮤니티 매핑 방식으로 신고를 받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자동으로 위치가 입력된다. 미국 샌프랜시스코에서는 범죄발생 지도를 구축해 범죄 발생률을 획기적으로 줄인 사례도 있다.

임 교수가 학생들을 모아놓고 간단히 커뮤니티 매핑의 개념을 설명해주면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낸다고 한다. 홍대에서는 길거리의 벽화(그래피티)를 찾아서 지도를 만들었고 성북동에서는 오래 된 가게와 오래 된 골목, 오래 된 나무와 바위를 찾아 지도를 만들었다. 임 교수는 “커뮤니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참여자들이 끊임없이 의견을 개진하고 소통을 통해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에 진정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매핑은 별다른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구글 맵의 API(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가 워낙 잘 돼 있기 때문에 여기에 스마트폰을 이용해 위치 정보와 설명을 붙이면 된다.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임완수 교수가 만든 매플러라는 툴도 있고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오픈스트리트맵이나 우샤히디 같은 툴을 활용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참여다. 국내에도 커뮤니티매핑센터가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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