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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디지털 시대, 하나로 연결된 세계의 가능성과 위험.

Written by leejeonghwan

May 26, 2013

전쟁의 폐허에서 이라크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목숨처럼 아꼈다. 6년 동안의 참혹한 전쟁, 음식도 물도 전기도 없고 아무런 미래도 전망할 수 없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구입했다. 2009년 가을, 이라크 바그다드를 찾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기술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책,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서 “2025년이 되면 세계 인구 80억명 모두가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낸다.

이라크 사람들은 휴대전화가 전쟁으로 찌든 그들의 삶과 운명을 개선해 줄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더 큰 세상으로 가는 통로. 에릭 슈미트는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네트워크에 연결된다면 우리는 국가나 혁명이나 전쟁의 개념을 다시 정립해야 할지도 모른다.

2011년 사살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5년 이상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쓰지 않고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오프라인 상태로 지내야 했다. 빈 라덴은 인터넷 대신 사람을 보내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결국 꼬리가 잡혔다. 인터넷을 쓰는 것도 위험하지만 인터넷을 안 쓰는 건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빈 라덴이 잡히고 난 뒤 오프라인에 보관하던 내부 정보들이 고스란히 미국 정부에 넘어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디지털 활동의 상호 연결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범죄자들은 숨을 곳이 없어졌다. 인터넷을 끊으면 된다고? 오히려 가상공간에서 아이덴티티가 불분명한 ‘숨어사는 사람’들이 범죄 용의자로 의심받는 그런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과거에는 오프라인의 신원을 온라인에 투사했지만 이제는 온라인의 신원을 오프라인에서 확인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빈 라덴처럼 골방에 틀어박히지 않는 이상 네트워크를 끊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요즘 미국 감옥에서는 스마트폰 한 대가 1000달러에 거래된다고 한다. 2010년 조지아주에서는 6개 교도소에서 동시에 폭동이 일어났는데 교도소들끼리 수감자들이 서로 전화통화로 거사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이 아예 교도소 안에 아지트를 만들고 20마일 바깥의 도시에 테러 공격을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전파 방해장치까지 설치했지만 테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요즘은 테러리스트들도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알카에다의 선동가 안와르 알 아울라키는 유튜브에 테러를 부추기는 동영상을 버젓이 올려놓기도 했다. 일부 이슬람 단체는 아예휴대전화 대리점에 잠입해 조직원들 신분 세탁을 하거나 요주의 인물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기도 했다. 과거에는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리스트 훈련 캠프가 인공위성으로 발견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온라인에서 해커들을 모집하기 때문에 적발이 쉽지 않다.

2010년에 처음 발견된 스턱스넷 웜은 윈도우즈 운영체제에서 돌아가는 특정 유형의 산업 통제 시스템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바이러스는 이란의 핵 농축 감시시설에 침투해 경보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동시에 원심분리기의 가동속도를 갑자기 올리거나 내렸다. 뉴욕타임즈는 이 바이러스가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모의한 국가 주도의 프로젝트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2007년 에스토니아가 러시아와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을 때 에스토니아의 정부 웹 사이트에 갑자기 디도스 공격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 러시아의 소행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러시아는 혐의를 부인했고 증거도 확보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2009년 디도스 공격 때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내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강한 심증만으로 보복을 할 수는 없으니까.

에릭 슈미트는 이 책에서 “분석가들은 디도스 공격이 북한이나 다른 어떤 국가가 저질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는데 한국 국민들은 북한의 체신청을 공격의 배후로 지목했다”면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것이 북한 정권을 상대로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도록 선동하기 위해 한국 정부나 운동가들이 꾸며낸 조작극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책에서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전쟁에서는 냉전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인 대리전쟁이 재현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이 마약범죄 조직에 전자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남미국가들에게 은밀히 자금을 지원하거나 그들을 훈련시킬 수도 있다”는 전망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좀비가 된 PC를 강제로 격리·차단하는 중립적인 국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은 참신하지만 공격의 발원지까지 데이터 패킷을 추적하는 건 불가능하다.

국가의 검열과 통제도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텐안먼이나 파룬궁 관련 콘텐츠를 모조리 삭제하고 있고 터키는 국민들이 네 단계로 구분된 인터넷 필터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모든 단계에서 쿠르드족이나 동성애 관련 콘텐츠들이 차단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북한 관련 콘텐츠를 필터링한다. 독일도 나치와 홀로코스트 관련 콘텐츠를 엄격히 규제한다. 말레이시아는 파일럿베이를 비롯해 파일 공유 사이트들을 차단하고 있다.

이란은 아예 하랄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깨끗한 인터넷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하랄이란 이슬람 윤리에 따라 도축한 음식을 말한다. 이란 정부는 공공연하게 “하랄 인터넷이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기존의 웹을 대체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메르라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공개했는데 정부가 승인한 동영상만 볼 수 있는 이란판 유튜브다. 한 국가 전체가 인터넷에서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구글은 2009년 중국 정부가 조직적으로 구글을 공격한 정황을 발견했다. 중국 인권 운동가들의 지메일 계정을 감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중국 정부는 “중국 영토 안에서 인터넷은 중국의 통치 아래 있다, 인터넷 통치권은 존중받고 보호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에릭 슈미트가 2011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중국 뉴스 사이트에서는 관련 기사를 단 한 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구글은 결국 중국 사업을 접고 홍콩에서 중국어 서비스를 하고 있다.

끔찍하고 암울한 전망을 늘어놓으면서도 에릭 슈미트는 신세계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예상하는 미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움직이면서 가장 흥분된 시간과 약속, 도전으로 가득찬 멋진 신세계다. 우리는 과거 그 어느 세대보다 빠르게 일어나는 변화를 더 많이 경험할 것이다. 우리가 들고 있는 기기들에 의해 주도될 이런 변화는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개인적 참여적 성격을 띨 것이다.”

하나로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시민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힘을 갖겠지만 사생활과 보안 문제에서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에릭 슈미트는 “우리는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디지털 카스트 제도가 미래에도 존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주목된다. “최상위 계급의 일부는 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불쾌한 결과를 피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을 거라는 이야기다.

에릭 슈미트는 2010년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디지털 혁명에도 다소 냉소적이다.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사람들이지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에릭 슈미트는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 몇몇은 혁명에 아주 적합하고 영향력이 있겠지만 그 보다 많은 사람들은 혁명에서 앰프나 소음 생성기 역할 밖에 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오히려 혁명을 오나수하는 데 필요한 리더의 개발을 지체시킬 것”이라고 전망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의 말을 인용한 다음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권력을 얻은 시민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뛰쳐나오게 만들 줄은 알지만 정작 광장에 나온 사람들을 데리고 뭘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승리했을 때조차 뭘 해야 할지 잘 모르죠. 사람들을 1년에 20번이나 광장으로 불러낼 수는 없습니다. 객관적인 한계가 존재하고 다음 단계도 분명치 않아요.” 언뜻 우리나라 2007년의 촛불집회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민주사회에서는 사회적인 부도덕과 경제적인 불평등 문제에 저항하는 시위가 더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고 억압적인 국가의 국민들은 부정선거와 부패, 경찰의 잔혹행위 등과 같은 이슈에 맞서 저항할 것이다. 인터넷의 익명성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힘은 운동가들과 새로이 운동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그런 노력을 하도록 장려해주는 새로운 보호막을 제공해줄 것이다.”

에릭 슈미트는 “더 이상 봄은 없다”고 경고한다. “혁명이란 시스템 내에서 변화를 추구하거나 현 체제에 불만을 제기하는 방법인데 가장 파괴적이면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똑같은 목적을 이루려는 집단이 늘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연결성이 큰 역할을 하면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봉기에 참가하겠지만 혁명이 끝난 후에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정치로부터 갑자기 배제됐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어딘가 앨빈 토플러의 향기가 난다. 에릭 슈미트는 ‘하나의 네트워크’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그게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생생한 사례와 분석으로 그려낸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최고 경영자 출신답게 복잡한 정보기술 이슈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지만 아쉽게도 앨빈 토플러 만큼 아이디어와 인사이트가 넘치지는 않는다. ‘새로운 디지털 시대’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새롭다는 것 이상의 메시지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에릭 슈미트는 이 책 전반에서 기술의 양면성을 경고한다. “가상세계에서는 용기있는 사람들만 나서도 충분히 혁명을 일으킬 수 있지만 국가는 계속해서 잔혹한 길거리 진압전략에 의지할 수 있다”는 경고도 의미심장하다. “소수자 집단은 가상 국정운영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연대감을 강화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모험이 잘못되면 참가자들과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에서 모두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에릭 슈미트는 “그래도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목격되는 남용과 고통, 파괴를 저지할 수 있는 기술과 연결성이 가진 능력 때문”이라면서 “불평등이나 권력의 남용을 없앨 수는 없지만 기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권력이 개인의 손으로 이양되도록 도울 수 있으며 개인들이 기꺼이 그것을 받으리라 믿는다”고 밝히고 있다. 도구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의지와 지향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새로운 디지털 시대 / 에릭 슈미트 등 지음 / 알키 펴냄.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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