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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과 호들갑… 주파수 전쟁, 언론의 대리전.

Written by leejeonghwan

May 24, 2013

업계 이해 그럴 듯하게 포장, “효율성 극대화” vs “공정 경쟁 보장해야”

통신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주파수 경매를 앞두고 첨예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보도하는 언론사들의 논조도 엇갈리고 있다. 업체들의 과장된 주장을 여과없이 옮겨담는가 하면 일부 언론사들은 노골적으로 특정 업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모습도 보인다. 온갖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작 정부가 책임감 있는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지털타임즈는 21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LTE 주파수 전쟁, 경매제 원칙을 지켜라”라는 제목으로 기획 기사를 내보냈다. 핵심은 주파수를 잘게 쪼개 블록형으로 배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 멀티미디어 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광대역 주파수 확보가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주파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매제와 주파수 광대역화라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KT의 논리에 무게를 실어주는 기사다.

파이낸셜뉴스의 논조는 또 다르다. 이 신문은 22일 “통신사들의 신경전이 치열한 1.8GHz 주파수 할당보다는 중장기 광대역 주파수 할당 밑그림을 제시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며 딴죽을 걸고 있다. “당장 모든 이동통신회사에 광대역 주파수를 할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장경쟁을 해치치 않는 선에서 주파수를 할당하고 중장기 광대역 주파수 확보 계획을 공개해 경매 과열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정확히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주장과 맞물린다.

이에 앞서 전자신문은 지난 15일 “미래창조과학부가 KT에 1.8GHz 주파수 인접 대역을 주고 SK텔레콤에 나머지 1.8GHz 대역을 할당하는 4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해 업계를 발칵 뒤집히게 만들었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결과 미래부 주파수정책과 관계자는 이 기사와 관련, “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 실무적으로 논의하는 차원”이라면서 말을 아꼈다. 언론 보도가 앞서 나갔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4안이 도입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 전반적인 관측이다.

KT는 효율성을 강조한다. 당장 1.8GHz 인접 대역을 확보하면 오는 9월부터 두 배 빠른 LTE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공정한 경쟁을 강조한다. KT 혼자 치고 나가면 2년 동안 2조~3조원을 쏟아부어야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며 엄살을 떤다. KT는 그 정도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 효율성과 공정성 가운데 어디에 비중을 둘 것인가, 언론의 입장도 크게 엇갈린다.

이에 앞서 지난 16일 문화일보는 “통신 3사가 광대역 LTE 서비스를 당장 시작할 수 있도록 광대역 폭 3개를 동시 배분해 공정 경쟁의 조건을 만들어 달라”는 SK텔레콤의 주장을 비중있게 반영했다. 이에 앞서 KT는 지난 14일 “재벌의 시장 독식”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들고 나왔다.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나 결국 재벌 계열사들 아니냐는 주장인데 가뜩이나 신경전이 치열한데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KT는 엉뚱하게도 정부 탓을 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도 했다. 2010년에 낙찰 받은 900MHz 대역이 전파 간섭이 심해 보조망으로 쓰기 어렵다면서 “KT가 1.8GHz 인접대역을 할당 받지 못한다면 경쟁사가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 KT는 자전거를 타고 오라는 것과 같은 셈”이라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쓰레기 주파수”라는 표현까지 썼다. 급기야 미래창조과학부가 나서서 언론 플레이를 자제하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언론의 대리전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황금 주파수를 경매하지 말자”는 과격한 제목을 내걸기도 했다. “이번 주파수 경매에서는 문제가 된 KT 인접 대역을 아예 배제하고 2G와 3G 회수 대역이 나오는 2016년 말에 할당해 3사가 동시에 광대역 확장을 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문화일보는 “1.8GHz 제외는 KT 퇴출 위한 고사 전략”이라는 KT의 주장을 제목으로 내걸었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사무국장은 “공정경쟁이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개입했던 과거 사례를 보면 실제로 공정한 경쟁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면서 “KT는 주파수의 효율적 활용이 필요하다고 하고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공정 경쟁이 보장될 거라고 보기 힘들고 애초에 소비자들에게 효용이 돌아갈 것으로 보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윤 국장은 “가장 바람직한 건 경매제가 아니라 정부가 적정 가치를 정해서 할당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윤 국장은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KT가 먼저 치고 나가면 이를 따라 잡는데 엄청난 투자 비용이 든다며 반발하고 있는데 KT는 몇 개월 차이 안 난다고 한다”면서 “어차피 차이가 안 나는 거라면 KT도 굳이 이 주파수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KT의 주장 역시 스스로 모순에 빠져있다는 이야기다.

윤 국장은 “지금 황금 주파수인 것처럼 보이는 게 시간이 지나서 보면 황금 주파수가 아니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애초에 주파수 할당으로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국장은 “현재로서는 1안과 2안, 3안에 모두 문제가 있다”면서 “충분한 여론 수렴과 논의 없이 업계 주장에 휘둘려 서둘러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여러 주장이 난무하지만 상식적으로 기본 원칙을 정하자면 첫째, 800MHz와 1.8GHz가 세계적으로 LTE 대역으로 쓰이는데 1.8GHz 대역에 주파수가 없는 LG유플러스에 인접하지 않은 대역을 우선 할당해야 하고 둘째, KT가 1.8GHz 인접 대역을 가져가는 게 문제라고 해서 멀쩡한 주파수를 놀리는 것도 말이 안 되고 필요하다면 그에 걸맞는 비용을 치르고 가져가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전 이사의 주장은 이렇다. 정말 KT가 1.8GHz 대역이 필요하다면 충분히 높은 가격을 부를 것이고 만약 절대 KT가 이 대역을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면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가 더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엄살과 호들갑을 거둬내면 실제로 누가 이 대역을 가져가든지 큰 차이가 없을 것이고 실제로 경매를 하면 SK텔레콤의 주장이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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