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거버넌스, 왜 야단들이야?”

Scroll this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KT나 SK브로드밴드 같은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이 서비스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을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사들은 우리의 컴퓨터를 인터넷에 연결시켜주는 역할만 할 뿐, 인터넷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누구도 인터넷을 팔아서 돈을 벌지 않는다. 이를 테면 인터넷은 세계적인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은 불특정 다수와 선의와 호혜가 영리적인 목적과 결합한 굉장히 독특한 네트워크다.

지난해 12월17일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에서 국제국제통신규약(ITR) 개정안이 통과된 것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덕분에 인터넷 거버넌스라는 생소한 단어가 정보기술 업계의 첨예한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들이 반대한 개정안을 왜 찬성하고 왔느냐는 비난부터 단순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는 좀 더 구조적인 문제제기까지 다양한 견해가 충돌하고 있다.

인터넷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공공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지만 누군가가 관리를 해야 한다면 누가 관리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시민사회에서 참여한다면 누가 어떻게 참여할 것이며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반영할 것이며 여러 나라 정부들의 역학관계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변수다. 한 마디로 답이 나오지 않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1일 건국대 산학협동관에서 열렸던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에서는 이동만 카이스트 교수는 “인터넷 거버넌스의 핵심은 바텀업(bottom-up) 컨센서스와 멀티 스테이크홀더(multi stakeholder)”라고 강조했다. 바텀업 컨센서스란 아래에서부터 의견 수렴을 한다는 의미고 멀티 스테이크홀더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인터넷이 정부 주도로 만들어졌다면 오늘날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론 초창기 인터넷을 정부가 만든 건 맞다. 인터넷의 기원은 1969년 미국이 군사 목적으로 만들었던 아파넷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드와이드웹이 도입되면서 대중화된 건 1991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 교수는 “여기에는 왕이 없다(There is no king). 많은 사람들이 제안하고 참여하면 그게 표준이 된다”면서 “미국의 힘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민간 차원에서 시스코나 AT&T 같은 인터넷 기업들의 참여와 희생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안티 거버먼트’로 가자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서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당연히 정부도 여러 이해관계자 가운데 하나로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번 ITU 회의에서 보듯이 인터넷을 통제하고 이를 이용해서 사적인 이익을 챙기려는 시도가 갈수록 많아질 것”이라면서 “그럴수록 바텀업 컨센서스와 멀티 스테이크홀더리즘이라는 인터넷 초기 원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 논란이 됐던 것 가운데 하나는 인터넷 주소 자원의 관리 권한이다. 인터넷 주소를 등록·관리하는 ICANN(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관)은 미국 상무부 소속이다. 이번 ITU 회의에서도 러시아와 중국 등은 왜 ICANN을 미국이 관리하느냐며 딴죽을 걸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만약 미국이 작정하고 도메인네임서버(DNS)에서 ‘.cn’이라는 도메인을 삭제하면 중국은 인터넷 접속이 끊기게 된다. ‘.ru’을 삭제하면 러시아가 먹통이 된다.

우리가 웹 브라우저에 www.naver.com이라는 주소를 웹 브라우저에 집어넣으면 도메인 네임 서버에서 222.122.195.5라는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알려준다. 이처럼 도메인 네임과 IP 주소를 연결하는 주소 목록 원본은 13개의 루트 서버에 저장되는데 이를 복사한 복제 서버를 세계 곳곳에 둬서 동기화되도록 한다. 13개 가운데 10개가 미국에 있고, 나머지는 영국과 일본, 스웨덴에 각각 1개씩 흩어져 있다.

루트 서버는 최상위 도메인인 ‘.com’이나 ‘.net’, ‘.org’, ‘.edu’ 등의 일반 최상위 도메인과 ‘.kr’과 ‘.kp’, ‘.jp’, ‘.cn’ 등의 국가 최상위 도메인의 접속 정보를 담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싱글 루트 서버를 해킹한다면 특정 나라의 도메인을 통째로 차단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쉽게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미국이 시리아와 전쟁을 벌이면서 ‘.sy’라는 도메인을 차단하도록 ICANN에 요구한다고 가정해 보자. ICANN이 그런 요구를 무시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번 ITU 회의에서도 인터넷 주소의 관리 권한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러시아와 중국 등은 인터넷 주소가 미국의 통제 아래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고 미국 등은 싱글 루트 서버가 미국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러시아나 중국 등 인터넷을 통제하는 정부에게 관리 권한이 넘어가는 게 더욱 위험하다며 맞섰다. 정부의 통제냐 아니냐의 논쟁 이면에 미국의 주도권을 둘러싼 불편한 신경전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사실 미국이 ICANN을 쥐고 흔든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ICANN은 미국 정부 산하에 있지만 비영리 민간기구다. ICANN은 비교적 바텀업 컨센서스와 멀티 스테이크홀더리즘을 잘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만약 러시아나 중국이 요구했던 것처럼 인터넷 주소 관리 권한을 국제연합(UN) 산하에 있는 ITU로 가져오면 민간 섹터가 배제된 정부 차원의 논의가 된다.

이번 ITU 회의는 미국의 주도권을 견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인터넷 관리 권한을 ITU로 옮겨오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 등이 제안했던 아이디어의 상당 부분이 논의 도중에 빠지긴 했지만 인터넷을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범주에 포함하려는 시도와 함께 스팸과 보안 이슈에 정부가 개입할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상당수 유럽 국가들이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흔히 인터넷을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범주에 놓고 이야기하지만 통신은 인프라가 관련되기 때문에 정부의 관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인터넷은 그 베이스가 되는 물리적인 망이 어떤 것이든, 그게 동축망이든, 광케이블이든, 무선이든, 유선이든, 심지어 망이 없이도 접속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정부가 관여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상호 접속의 개념이라 사업자들끼리 알아서 하면 되는 문제라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대목은 우리나라의 인터넷 주소 할당 업무를 정부 공기업이 독점 대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4년에 만든 인터넷주소자원법에 따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kr’ 도메인을 독점 관리한다. ‘.한국’이라는 도메인을 만들 때는 시민사회 진영에서 제시한 아이디어들이 막판에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입하면서 뒤집히기도 했다. 인터넷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은 정부가 관리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전 이사는 “우리나라 대표단이 ITU 회의에 가서 ITR 개정안에 찬성하고 돌아왔다고 비난 여론이 많았지만 사실 우리나라 인터넷의 규제 수준은 러시아나 중국이 제안했다가 거부된 것보다 훨씬 더 후진적”이라면서 “방통위 공무원들은 굳이 그런 낮은 수준의 규제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텐데 그게 인터넷 선진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 인터넷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오병일씨는 “핵심은 인터넷의 통제권을 누가 갖느냐에 있다”면서 “최근 ITU 회의에서의 논의는 민간 부문을 배제한 채 인터넷 규제 이슈를 국가간 논의의 장으로 끌어와 정부가 인터넷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는 데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방통위가 깊은 고민 없이 규제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어서 그만큼 시민사회 진영의 역할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싼 권력 다툼이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는 데 입장을 같이 했다. 이런 변화에 저항하지 못하면 단순히 스팸 관리나 보안 강화 차원을 넘어 통신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패킷을 감청하거나 차단하고 정치 권력이 비판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통신을 검열하는 일이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인터넷의 역사는 2012년 12월17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날 포럼에서는 방통위 관계자가 나와 “인터넷 주소를 정부가 관리해서 문제된 게 뭐가 있느냐”고 항의해 분위기가 다소 격앙되기도 했다. 전응휘 이사는 “정부가 혼자서 다 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고 굉장히 골치 아픈 문제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이사는 “단순히 인터넷 주소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의 미래를 둘러싼 첨예한 권력 전쟁에서 한 나라의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Submi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