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국 등 반대한 인터넷 검열조항, 한국은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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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U 회의 중국·러시아 등과 함께 서명 참가… 방통위 “국익에 배치 안 돼서.”

정부의 인터넷 통제를 허용하는 인터넷 거버넌스 조항이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의 반대로 채택되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치적 검열과 통제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이 조항에 우리나라가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동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의 독재국가들과 함께 찬성 표를 던진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이명박 정부의 국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즈와 이코노미스트 등에 따르면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에서 14일 새로운 국제국제통신규약(ITR)을 채택했으나 논란이 됐던 인터넷 통제 관련 조항은 막판에 제외됐다. 그러나 미국 등은 “정보보호나 스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공조할 수 있다”는 등의 문구를 문제 삼고 있다. 결국 최종 규약을 놓고 투표를 벌인 결과 193개 회원국 가운데 89개국이 서명을 했으나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55개국은 서명을 거부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방송통신위원회의 태도다. 방통위는 16일 WCIT 결과와 관련,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 차이로 ITRs 개정에 대한 회원국들간의 만장일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막을 내리는 아쉬움을 남겼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우리 대표단은 ITRs 개정 내용이 국내법이나 국익에 배치되는 내용이 없으며, 인터넷 논의가 2013년 서울 사이버스페이스 총회, 2014년 부산 ITU 전권회의 등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마지막으로 우리나라가 2014년 ITU 전권회의 의장국인 점 등을 고려해 최종 서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 스웨덴, 호주 등 20여개 국가는 인터넷 관련 이슈는 ITU에서 다뤄질 사항이 아님을 주장하면서 최종 서명에 불참했다”면서도 이들이 왜 서명에 불참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지난 2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이번 WCIT 회의는 개막전부터 인터넷 분야를 ITRs에 포함시킬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였다. 지난 1988년 ITRs가 제정될 당시에는 인터넷 관련 규제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러시아와 중국 등의 요구로 ITU가 인터넷 관리 권한을 갖고 정부에 검열·감시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결국 이번 회의에서는 ITRs의 적용 범위를 통신 분야에만 한정해 유지하되 망중립성과 트래픽 관리 관련 조항도 추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리차드 힐 ITU 두바이 회의 수석 카운슬러는 “새 조약에는 인터넷이나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한 어떤 표현도 명기되지 않았다”며 “다만 정보보호나 스팸 등에 있어 회원국들이 공조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론적인 수준이나마 정부가 인터넷을 관리하고 규제할 수 있다는 원칙이 명문화되면서 향후 국제적으로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인터넷 검열과 통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정보보안이나 스팸 등을 이유로 국가가 인터넷 서비스를 제재할 수 있는 명분을 열어뒀기 때문에 향후 이 조항이 국가관의 관계에서 구속력을 갖고 비관세 장벽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 이사는 “우리나라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독재국가와 개발도상국들과 함께 인터넷 규제에 찬성하는 입장에 섰는데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방통위의 스탠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없다”고 평가했다.

전 이사는 “미국이 대표단 10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시민사회와 프라이빗 섹터로 구성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 대표단만 참석했다”면서 “정부가 인터넷의 관리 주체라고 보는 후진적인 발상을 국제적으로 드러낸 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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