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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 소송은 집안 싸움일 뿐?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그의 형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상속재산 다툼에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31일 6차 기일에서는 이맹희 전 회장 쪽에서 “삼성생명의 차명주식 변동현황을 확인한 결과 실명 변환된 주식 규모가 당초 알던 것보다 훨씬 큰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소송 가액을 3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혀 격론을 벌였다. 이 사실은 종합일간지 가운데 세계일보와 조선일보, 한겨레, 단 세 군데에서만 다뤘다.

특히 이날 재판에서는 이맹희 전 회장 쪽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 때는 차명주식이 상속재산이라고 주장하다가 이번 재판 과정에서는 선대회장 생전에 증여받은 가·차명예금 등 개인 재산이 섞여 있다고 말을 바꿨다”고 압박을 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 쪽에서는 “특검 때도 차명 주식의 대부분이 상속받은 주식이고 나머지 이 회장의 개인 재산도 있다고 진술했다”면서 “말을 바꾼 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삼성가의 상속재산 분쟁은 단순히 재벌가의 집안 싸움이 아니다. 지난 2007년 삼성 특검은 별도의 수사나 증거자료 없이 이건희 회장 쪽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차명주식을 상속재산으로 인정했다. 경제개혁연대 등은 명의전환한 차명주식의 일부가 상속재산이 아닐 가능성과 상속 이후 차명주식이 추가로 발행됐을 거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후계구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다음날 세계일보는 “삼성가 형제들의 법정 다툼이 내년 1월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비교적 양쪽의 입장과 쟁점을 잘 살려서 기사를 내보냈고 나머지 종합일간지들은 모두 침묵했다. 6차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지난 5월 1차 기일을 끝으로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삼성 특검 수사 내용이 처음 공개됐던 5차 공판에 침묵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9월26일 열렸던 5차 기일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 전직 임원 15명으로부터 삼성생명 주식 299만5200주를 주당 9000원씩에 사들였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또한 삼성 구조조정본부 본부장이었던 이학수씨가 “에버랜드가 매수한 삼성생명 주식의 실제 소유주는 이건희 회장”이라고 말한 사실도 공개됐지만 경향신문과 내일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를 제외한 나머지 종합일간지는 모두 침묵했다.

지난 6월27일 2차 기일 때는 이맹희 전 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겨냥해 “도둑놈 심보”라고 말한 게 화제가 됐다. 그러나 상당수 언론이 삼성 쪽의 요청을 받고 제목을 수정하거나 기사 내용을 ‘톤 다운’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오히려 인터넷 신문들이 자세하게 다루고 종합일간지와 경제지들이 몸을 사리는 양상이다. 2차 기일 이후로는 아예 취재를 하지 않거나 취재를 하더라도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 언론사들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종합일간지 법조 출입 기자는 “새로운 팩트가 없으면 쓰지 말라는 데스크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삼성과 특수관계인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특히 삼성 보도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 강정민 연구원은 “양쪽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판단이 쉽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단순히 공방으로 취급하거나 명백히 드러난 팩트조차도 무시하는 언론이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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