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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된 인터넷 실명제, 그 오욕과 삽질의 역사.

Written by leejeonghwan

August 23, 2012

인터넷 실명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부끄러운 제도였다. 하루 방문자 10만명 이상의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쓰려면 실명 확인을 하도록 의무화한 이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웃음거리가 됐다.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하고 중국이 도입을 검토한 적 있는 정도다.


2007년 7월 도입된 인터넷 실명제는 당초 하루 방문자 30만명 이상 사이트를 대상으로 적용됐으나 2009년 4월 하루 방문자 10만명 이상 사이트로 확대됐다.

2009년 4월 구글은 유튜브 사이트에 인터넷실명제를 적용하라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저항해 한국 계정의 동영상 업로드와 댓글 기능을 차단해 논란을 촉발시켰다. 인터넷 실명제에 정면으로 대항한 해외 서비스는 유튜브가 처음이었다. 유튜브는 “국적을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로 바꾸면 본인 확인 없이도 모든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고 버젓이 우회 경로를 공지해 방통위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후 2009년 12월 애플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본인 확인 없이 동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게 돼 유튜브에 인터넷실명제를 적용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방통위는 결국 유튜브는 인터넷실명제 대상이 아니라는 굴욕적인 결론을 내놓았다. 방통위는 지난해 “국내에서 유튜브에 접속할 때 주소가 kr.youtube.com이었는데 현재는 www.youtube.com으로 바뀌어서 실명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군색한 해명을 내놓았다.

인터넷실명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또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2010년 4월 블로터닷넷을 시작으로 댓글을 폐쇄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이른바 소셜 댓글을 도입하는 사이트가 늘어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트위터에서는 얼마든지 익명으로 계정을 만들 수 있다. 트위터로 로그인하면 익명으로 댓글을 달 수 있는데 여전히 일반 계정은 실명 인증을 해야 하는 어색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계속돼 왔다.

해외 서비스에는 인터넷 실명제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역차별 논란도 제기됐다. 이를 테면 포털 사이트 네이버나 다음에 동영상을 올리려면 실명 인증을 해야 하지만 유튜브에는 얼마든지 익명으로 올릴 수 있다. 거의 비슷한 서비스지만 다음 티스토리는 실명제 사이트고 구글 텍스트큐브는 아니다.

방통위는 한때 소셜 댓글에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유야무야됐다. 방통위에서 여러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애초에 해외 사이트에 실명제를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올해 4월 국회의원 선거 때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언론사들에 소셜 댓글 실명제를 의무화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픽플소프트나 라이블리 등 소셜 댓글 사이트에 인터넷 실명제를 강제했는데 미디어오늘 등은 이를 거부하고 소셜 댓글 자체를 전면 차단했다. 선거법에 규정된 실명제는 이번에 위헌 결정이 난 정보통신법상 실명제와 다른 제도지만 역시 폐지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인터넷 주인찾기’가 주최한 인터넷 실명제 컨퍼런스에서는 다양한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우선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해외 교포나 그 자녀들의 경우 한국 사이트의 접근이 원천 차단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어린이 전용 사이트의 경우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도록 돼 있어서 부모가 없는 어린이의 경우 가입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도 인터넷 실명제가 개인정보 유출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 실명제 적용 대상 사이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관행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문화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병찬 변호사는 “흔히 실명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오해하지만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가 정치적 보복이나 차별의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정치권력을 비판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익명 또는 가명으로 이뤄지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블로거 새드개그맨은 “인터넷 실명제는 애초에 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문제가 된 글을 누가 썼는지 색출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즈는 지난해 9월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를 소개하면서 “한국에서의 경험은 실명을 강요하는 정책이 멍청한(lousy) 아이디어라는 걸 입증했다”면서 “온라인에서의 익명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개인 정보 보호 차원이 아니라 아랍의 반정부 시위에서 보듯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거나 기업의 기밀을 폭로하려는 내부 고발자에게 필수적”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뉴욕타임즈는 또 “현실의 세계는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우며 익명의 개인들로 넘쳐난다”면서 “인터넷도 마찬가지로 내버려두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성명을 내고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 생태계를 왜곡시켰던 대표적인 갈라파고스 규제”라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을 이제라도 폐지해 돼 다행스럽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며,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혀 인터넷 실명제 폐지를 기정사실화했다.

미디어오늘과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지난해 4월 인터넷 실명제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미디어오늘은 “본인 확인제는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독자와의 소통을 막는 등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고, 언론사에 개인 정보 저장·유출 방지 등 기술적 조치에 대한 경제 부담까지 이중으로 지우고 있다”며 헌법 소원 이유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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