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은행’은 정말 금산분리와 무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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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 산업의 분리는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가 은행 등 금융회사의 경영권을 지배해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하거나 자금을 빼돌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 만든 원칙이다. 세계적으로도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리나라에서 산업자본의 비은행 금융기관 소유는 이미 허용돼 있고 엄밀히 말하면 은산분리가 쟁점이 된다. 은산분리 원칙의 폐지 또는 완화는 재벌 대기업의 은행 진출과 직접적으로 맞물린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하 직책 생략)이 지난 2001년 재벌 대기업들과 인터넷 은행을 설립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 “금산분리 정책은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과거 행적이다. 이에 앞서 2003년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됐던 최태원 SK 회장의 구명 탄원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안철수는 최태원 탄원서에 대해서는 즉각 해명을 했지만 인터넷 은행 설립 건에 대해서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금태섭 변호사가 2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금산분리 취지와는 상관 없다”고 반박한 정도다. “은행 설립에 참여한 게 아니라 증자에 참여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는 “자회사가 3천만원을 투자한 것을 놓고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에 동참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철수 쪽의 설명을 받아들이더라도 몇 가지 의문은 남는다. 오마이뉴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안철수는 재벌 2세들과 벤처기업들 모임이었던 브이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활동했다. 문제의 인터넷 은행은 브이소사이어티 차원에서 설립을 추진했던 브이뱅크다. 브이소사이어티는 브이뱅크컨설팅이란 회사를 설립했고 SK와 롯데, 코오롱 등 대기업들과 이네트, 팍스테네트, 시큐어소프트, 그리고 안철수연구소의 자회사인 자무스 등의 벤처기업들이 참여했다.

브이소사이어티는 단순히 기업인들의 친목 모임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회사 차원에서 소액을 투자했을 뿐이라는 게 안철수 쪽의 해명이지만 안철수가 자신과 무관한 일인 것처럼 발을 빼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인터넷 뱅킹 관련 보안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던 자무스는 브이뱅크가 설립됐다면 상당한 혜택을 입게 될 회사였다. 출자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의 은행 진출에 파트너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는 쉽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거나 금산분리를 강화해야 한다거나 말로만 떠들기는 쉽다. 누구나 재벌개혁을 이야기한다. 박근혜도 문재인도 그 누구도 경제민주화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금산분리를 외치는 안철수가 과거 재벌과 손잡고 은행 설립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건 자가당착이다. 그리고 그게 착한 자본가, 안철수의 한계일 수도 있다.

금산분리 완화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국내자본을 차별하면 은행들이 외국자본에 넘어간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극단적으로는 론스타는 되고 삼성은 왜 안 되느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11년 전 브이소사이어티도 똑같은 논리를 펼쳤다. 인터넷 은행을 설립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자본금이 필요한데 그걸 조달할 수 있는 데는 재벌 대기업 밖에 없다는 논리다.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10년도 더 된 지나간 일을 꼬투리 잡아 흠집 내려는 게 아니다. 그동안 그의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에게만 더욱 가혹한 검증 잣대를 갖다 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그건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그가 결국 ‘착한 이명박’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상식적인 수준의 모범답안을 내놓고 있지만 속성과외의 결과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안철수의 투자 금액이 많으냐 적으냐는 쟁점이 아니다. 자회사가 한 일이라고 빠져나갈 상황도 아니다. 안철수가 재벌 2세들의 은행 설립 프로젝트에 동참했으며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건 박근혜가 말로만 금산분리를 떠드는 것과는 또 다르다. 박근혜가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면 안철수는 재벌과 이해관계를 함께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근혜가 위선이라면 안철수는 무지하거나 순진하다고 할 수 있다.

재벌에게 은행을 주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다만 재벌이 아니면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순환출자 구조가 옳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다만 재벌을 해체하면 대안이 뭐냐고 묻는다. 11년 전 인터넷 은행을 설립하려던 그들은 인터넷 은행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은행은 금산분리에서 예외 적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과 재벌이 아니면 대안이 뭐냐고 묻는 그들은 어떻게 다른가. 안철수는 이 모순을 설명해야 한다.

금산분리 원칙은 단순히 재벌이 은행을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 은행의 사회적인 책임을 규정하는 원칙이다. 금산분리 원칙을 이야기하려면 론스타는 되는데 왜 삼성은 안 되느냐고 물을 게 아니라 론스타도 안 되고 삼성도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안철수와 재벌 2세들의 은행 설립 시도 역시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된다. 안철수의 진정성을 회의하고 의심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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