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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의 숨은 주주들, 뭐가 두려운가.

법원이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 종합편성채널 심사자료를 공개하라고 결정했으나 방통위가 이에 불복해 항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연대는 심사위원회 회의록과 주주 현황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방통위는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자료들이 국가 기밀인가. 그렇지 않다. 지상파 못지않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방송사들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선정과정은 공정했는지를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미디어오늘이 최근 입수한 종편백서를 살펴보면 수상쩍은 정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A4 용지 900페이지 분량의 이 백서는 당초 방통위가 종편 개국과 동시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던 그 자료다. 최시중 전 위원이 국회에 출석해 약속까지 했다. 그런데 방통위는 백서를 만들어 놓고도 공개하지 않다가 소송이 걸리자 법원에만 제출했다. 그게 지난 4월의 일이다. 심지어 방통위 상임위원들조차도 이 자료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백서에는 사업계획서와 심사위원회 속기록, 심사소견서, 배점표 등이 담겼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주주 현황이 빠져있다. 속기록에도 주주와 특수관계인 이름이 모두 익명 처리돼 있다.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법원 판결까지 났는데도 방통위는 막무가내로 버티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숨기면 숨길수록 의혹이 부풀어 오른다.

지금까지 드러난 종편 주주현황만 봐도 심상치 않다. KT의 자회사 KT캐피털이 종편 네 곳에 각각 20억원 이상을 투자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된 바 있다. KT는 콘텐츠 확보 차원이라고 밝혔지만 방통위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들이 종편에 수십억원씩을 투자한 사실도 논란이 됐다. 역시 투자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망해가는 상황에서 전망이 불투명한 종편에 투자한 배경에 의혹이 집중됐다.

13개 제약회사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수백억원을 나눠서 투자한 사실도 주목된다.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투자라는 개념은 아니었지만 구체적인 의미를 이야기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한진중공업이 MBN에 30억원이나 투자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방통위가 공개를 꺼리고 있는 종편 주주현황에는 또 다른 수상쩍은 주주들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결과, 채널A에 수십여개의 대학이 주주로 참여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어떤 대학들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대학이 방송사에 투자해야 할 이유가 뭘까. 이 대학 학생들은 자신들이 낸 등록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지 않을까. JTBC에 참여한 주주 가운데는 공정거래·노동 부문에서 과태료 처분을 받아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은 기업도 포함돼 있지만 역시 어느 기업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최시중 전 위원장이 대기업 광고주들을 불러모아 광고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압박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정부 차원에서 종편을 지원한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채널A와 MBN 등이 사업계획서에 명시된 납입 자본금을 확보하지 못해 승인 신청을 못하자 신청 기한을 연장해 주기도 했다. KT캐피털과 국민은행 등이 막판에 종편 주주 대열에 합류한 것도 이때였다. 공교롭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특혜 지원이었다.

방통위가 공개하지 않은 종편 심사의 이면에 관심과 의혹이 집중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종편은 태생부터 특혜와 유착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기형적인 언론 모델이었다. 훗날 역사는 이명박 정부의 종편을 권언유착의 참극으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정치권력과 결탁한 언론권력이 자본권력에 유착해 여론을 뒤흔드는 이 끔찍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특혜 의혹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미디어오늘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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