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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큰 회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습니까.”

황유미씨가 삼성전자에 입사한 때가 2003년 10월. 황씨는 기흥공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했다. 그로부터 2년도 채 안 된 2005년 6월, 황씨는 백혈병 판정을 받는다. 그해 12월 골수이식 수술을 받고 퇴원하지만 1년을 조금 넘기고 결국 세상을 떠난다. 황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택시기사다. 황씨는 병원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아버지의 택시 뒷자리에서 숨졌다. 꽃다운 나이, 스물세 살이었다.

황씨가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삼성전자에서 찾아온 김 과장이라는 사람이 휴직 기간이 끝났다며 사표를 쓰라고 했다. 산업재해 처리를 해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버님이 이 큰 회사를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습니까?” 김 과장은 치료비를 주는 조건으로 어떤 경우라도 이유를 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치료비가 부담됐던 황씨의 어버지는 딸에게 사표를 쓰게 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약속했던 치료비를 보내지 않았고 한 차례 병원을 찾아와 50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건넸을 뿐이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찾아온 김 과장은 “개인적인 질병이라 산재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황씨가 산재신청을 한 뒤 만난 기흥공장 관계자는 “한 10억쯤 해줄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있으라”는 말도 했다. “사회단체 같은 곳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삼성전자 집단 백혈병 사고를 다룬 두 권의 만화가 나왔다. 김수박의 ‘사람냄새’는 아버지 황씨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수표로 500만원을 가지고 왔어. 아씨, 불화가 나가지고는. 내가 돈이 무척 없어가지고는. 나도 돈이 있으면 그 돈을 안 받고 그냥 귓방망이를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데, 차마 그 돈을 안 받으면 안 되겠더라고. 어쩔 수 없이 받았어. 유미를 치료해야 되니까.”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가 ‘사람냄새’라는 황씨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김성희의 ‘먼지 없는 방’은 역시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했던 황민웅·정애정씨 부부의 이야기다. 황씨가 백혈병 판정을 받고 난 일주일 뒤에 정씨는 임신 5주라는 통보를 받았다. 임신한 몸으로 정씨는 남편을 돌봤다. 죽기 얼마 전 황씨는 아픈 몸을 끌고 가 둘째의 출생신고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뒤 숨졌다. 신설 라인의 ‘셋업 멤버’로 일했던 황씨는 유해 화학물질에 더 많이 노출됐을 거라는 게 아내 정씨의 주장이다.

2010년 4월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최초로 반도체 라인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삼성전자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출발하려는 순간, 한 여성이 차에 올라탔다. 그가 바로 정씨였다. “그렇게 유족들이 보여달라고 할 때는 보여주지도 않고 왜 기자들만 부르냐고. 라인 다 바꿔놓고 이제 와서 기자들을 왜 부르는데, 왜.” 이날 기자들은 정씨를 남겨둔 채 다른 버스에 옮겨 타고 출발했다. 다음날 대부분의 언론이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은 먼지 하나 없이 청결했다고 기사를 썼다.

정씨는 말한다. “클린룸은 웨이퍼를 위한 클린룸이었구나. 우린 사람한테도 클린한 건지 묻지 않았던 거야. 왜 난 모르고 살았을까. 뼈가 부러져야 산재인줄 알았지. 고등학교 나왔지만 산재고 노동법이고 그런 거 한 번도 못 들어봤어.” 정씨 등은 지난해 6월 황씨 등의 산업재해를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법원은 “유해한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백혈병이 발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두 권의 만화는 삼성전자 집단 백혈병 사고를 과학적으로 규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온갖 화학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작업 환경과 일관 생산라인의 성과주의가 만드는 노동자들의 불안과 소외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어쩌다 방문하는 VIP와 바이어들은 호흡장치가 달린 보호장비를 입고 라인에 들어오지만 이들은 마스크까지 흠뻑 젖은 채 일을 할 때가 많다. 슬러리 폐액을 옮기거나 챔버를 세정할 때도 알 수 없는 가스를 들이 마시게 된다.

이들의 죽음에 삼성전자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문제는 제대로 된 역학조사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조사관들은 삼성의 설명을 들으며 삼성이 보여주는 곳만 둘러보고 왔다. 삼성은 산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이들의 죽음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거나 적당히 훑고 지나가는 이 답답한 현실을 이 두 권의 만화는 예리하게 파고든다.

‘먼지 없는 방’·’사람냄새’ / 김성희·김수박 그림 / 보리 펴냄.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반올림은 한국 언론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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