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든 용팔이들, 기자가 깡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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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은 제왕적 권력을 지닌 사주, 즉 보스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채 칼 혹은 몽둥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상하게 만들 수 있는 펜을 마구 휘두른다. 펜을 든 용팔이인 셈이다. 수시로 기업들을 돌아다니며 돈을 뜯어내는 어깨 역할도 해야 한다. 조폭 세계에서 주먹을 움직이는 것은 힘이거나 돈이다. 언론계에서 펜을 움직이는 것 역시 사주권력이거나 돈이다.”


25일 충북 제천 세명대학교에서 열린 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저널리즘의 후퇴와 공론장 붕괴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박상주 전 문화일보 기자(서울시교육청 대외협력특보)는 “사주권력과 돈의 입김 아래서 우리 언론은 공공 지식의 전달자로서 공신력을 가파르게 상실하고 있다”면서 “일부 언론은 이미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전 기자는 “공공의 적은 공공의 손으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부 사건팀은 조를 짜서 나와바리(구역)를 관리하고 경쟁조직과 전쟁 때문에 늘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신참들은 하루 3~4시간 밖에 못 자면서 나와바리를 관리하는 등 혹독한 견습과정을 거친다. 정치부 기자들은 중견급 건달과 같다. 손에 피를 묻히는 일 없이 정장 차림으로 폼나게 국회와 청와대, 통일부 등을 출입하면서 조직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일을 한다. 이때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정계 입문을 하는 이들도 있다.

경제·산업부 기자들은 조직의 자금줄이다.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와 농림수산식품부 등을 출입하면서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산업부 기자들은 광고와 협찬 수익을 거둘 기획물을 구상한다. 이들은 정부기관과 대기업 관계자들과 안면을 이용해 광고 및 판매를 유치한다. 상대방의 약점을 들이밀면서 광고를 뜯어내기도 한다. 박 전 기자는 “‘조폭 언론’이란 표현이 대한민국 언론의 특성을 대변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의 자기검열은 일상화돼있다. 기자들은 상황판단 능력이 우수한 집단이다. 경제산업부에서 기사의 뉴스밸류 판단은 ‘기업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안 되는 것인가’다. 이게 ‘대한민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안 되는 것인가’로 포장된다. ‘기업=대한민국 경제’라는 도식에 빠져있다. 기업윤리나 서민가계에 미치는 영향 등은 부차적인 문제다. 기업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다.”

박 전 기자는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정론이 밥 먹여주냐, 진실이 월급 주냐, 우선 살고보자, 기자들이 이런 걸 느끼게 됐다”면서 “죽느냐 사느냐 생존의 문제 앞에서 정론직필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고 지적했다. 박 전 기자는 “친기업적인 논조를 비판하는 내부 지적들이 가뭄에 콩 나듯 제기되기도 했지만 내부 자성의 목소리는 배부른 자들의 투쟁이라는 핀잔에 묻히고 말았다”고 털어놓았다.

박 전 기자는 “경영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조선일보가 ‘할 말을 하는 신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건 한국 언론의 현 주소를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할 말을 하는 당연한 걸 자랑해야 하는 슬픈 현실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대부분의 신문이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박 전 기자는 “독자를 위한 뉴스보다는 광고주의 눈치를 보는 뉴스 위주로 편집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사회부장은 ‘갑’이고 경제산업부장은 ‘을’이라고 한다. 사회부장은 끊임없이 기업을 조지는 기사를 준비하고 경제산업부장은 빨아주는 기사를 준비하는 일종의 역할 분담을 한다. 기업의 불법·탈법 사실에 대한 확인 취재는 언젠가부터 다음과 같은 신호를 전달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신문이 당신 기업의 잘못을 폭로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 그러니 빨리 조치를 취해라.’ 사회부는 주워오고 경제산업부는 엿 바꿔먹고, 속칭 ‘짜고치는 고스톱’이다.”

박 전 기자는 “초기엔 편집국 간부들이 광고·판매국에 지원사격을 부탁받는 정도였고 연차가 낮은 기자들에게 영업에 대한 부담을 주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금은 편집국 기자들이 직접 광고와 판매 영업 일선에 나서는 상황이 됐다. “설과 추석, 창간특집 등 광고 대목을 봐야 하는 시기엔 경제부장이나 산업부장들은 아예 전화통을 붙들고 산다”는 이야기다. 광고·판매국을 없애도 문제될 게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편집국 부장들은 매주 사장이 주재하는 마케팅 및 판매회의에 참석한다. 사장 주재회의에서 닦달을 받은 부장들은 부 회의 시간에 부원들의 광고 및 판매 실적을 채근한다. 개인별 광고·판매 실적을 적은 집계 표를 놓고 하나하나 따진다. 많은 신문사들이 기자의 광고·판매 실적에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회사 기여도란 명목으로 각종 포상이나 인사고과 등을 반영한다. 생존을 위한 채찍과 당근에 공공지식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박 전 기자는 “그러나 시민들이 펜을 든 용팔이들을 몸으로 막아서기 시작했다”면서 “독자는 더 이상 언론의 일방적 계도대상이 아니며 언론이 깔아놓은 허위의식을 간파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박 전 기자는 “엉터리 품질의 공공지식을 강매하는 조폭 언론, 공공의 적이 된 언론은 공공의 손에 의해 버림받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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