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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뒤를 캐는 정부.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3, 2012

총선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발단은 201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 PD수첩이 김종익씨의 억울한 사연을 소개하면서 민간인 불법사찰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씨는 영화 ‘식코’를 패러디한 ‘쥐코’라는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을 받았다. 김씨는 공직자가 아닌데도 사찰 대상이 됐고 횡령·배임 등의 혐의를 뒤집어쓰면서 평온했던 그의 삶은 산산조각으로 파괴됐다.

그해 11월에는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에서 총리실에 대포폰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BH 하명 사건’이라고 적힌 메모도 발견됐다.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정황이 명백했지만 검찰은 증거인멸로 수사가 어렵다며 발을 뺐다. 검찰이 사상 처음으로 국무총리실을 압수수색했지만 그때는 이미 문서와 하드디스크 등이 모두 파기된 뒤였다. 검찰은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 등 실무 담당자들을 구속 기소하는 수준에서 물러섰다.

그런데 지난달 12일,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과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대화 녹취록이 공개됐다. 녹취록에 따르면 최 전 행정관은 장 전 주무관을 만나 “평생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먹여 살려 주겠다”며 법정진술을 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이 5천만원을 주며 회유했다”는 폭로와 함께 “청와대 지시로 증거 인멸을 했다”는 양심선언까지 나왔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파업 중인 KBS 노조가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된 문건을 입수해 공개하면서 민간인 불법사찰의 충격적인 전모가 드러났다. ‘하명사건 처리부’라는 이름의 문건에는 청와대의 지시 사항과 함께 처리 내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이 문건은 2010년 11월 총리실 압수수색 때 확보해 대법원에 제출한 자료 가운데 일부였지만 검찰은 추가 수사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과 자료를 종합하면 몇 가지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불법사찰의 몸통은 청와대다. 청와대가 사찰 대상을 찍어 뒷조사를 지시했고 결과는 청와대에 직보됐다. 조직적인 사찰이 2008년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이후 정부 비판적인 인사들을 각개격파로 접근, 약점을 잡아 압박하고 여론을 통제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촛불로 쌓인 대통령의 원한을 풀려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가 KBS와 MBC, YTN 등 방송사 사장과 임원 인사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청와대는 방송사에 낙하산 사장을 심어 비판적인 성향의 언론인들을 억압하고 보도 방향까지 뒤흔들었다. ‘BH 하명’으로 분류된 문건에는 “KBS의 색을 바꾸고 인사와 조직개편을 거쳐 조직을 장악한 후 수신료 현실화 등을 추진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지시가 담겨 있다. 정부 정책을 비판했던 PD수첩 작가들과 한겨레21 편집장 등도 사찰 대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가 증거인멸을 지시하고 검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국가권력이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데 아무런 감시·견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 사건을 폭로한 게 파업 중인 기자들이라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낙하산 사장 체제의 KBS가 과연 이 소식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KBS는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고 부를만한 이 희대의 특종을 물타기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국가 권력이 국민의 뒤를 캐는 극악의 범죄 행위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고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민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권력을 전유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고 처벌하는 방식으로 악용했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권력형 비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끔찍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해법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엄중한 책임자 처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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