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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열심히 공부하지만 가장 불행한 아이들.

미국 하버드대가 낙제생들 현황을 조사했더니 동양계 낙제생 10명 가운데 9명이 최고의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들이었다. 그 원인을 조사해보고 내린 결론은 이랬다. “Nothing long term life goal(장기적인 목표가 없다).” 하버드대 입학이 목표였던 학생들이 정작 입학 이후에 인생의 궁극적인 성취목표를 상실했다는 이야기다.

OECD 교육국 베르나르 위니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지만 가장 행복한 아이들은 아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아이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들은 핀란드에 비해 공부에 대한 의욕이 낮다. 그래도 성적은 좋다. 왜일까. 바로 경쟁 때문이다.”

OECD 회원국 중고등학생들 대상으로 청소년 행복지수를 조사했더니 우리나라는 삶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53.9%만 그렇다고 답변했다. 네덜란드는 94.2%, 핀란드는 91.6%, 전체 평균은 84.8%였다.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미국은 1위가 소방관 또는 경찰관, 일본은 음식점 주인, 중국은 기업 최고경영자, 우리나라는 연예인이라고 답변했다는 조사 결과도 흥미롭다.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는 최근 출간된 ‘최고의 학교’에서 “지금껏 우리는 아이들에게 인간에 대한 이해를 빠뜨린 채 오직 기능인·직업인으로 살도록 하는 교육을 12년 동안 해왔다”면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교육을 받는다는 생각은 솔직하고 정확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인가에 있다”고 지적한다.

남 교수는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원하는 일을 하고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못했다”고 반성한다. “불행한 일 어려운 일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 그것이 교육이 돼야 한다”는 게 남 교수의 주장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정규 수업 외 공부 시간은 핀란드 학생들보다 3배 가까이 더 길다. 우리나라는 일주일에 20시간이 넘는데 핀란드는 7시간 정도다. 학교 과제에 들이는 시간은 비슷하지만 학원수업과 보충수업 등이 각각 4.85시간과 3.80시간씩이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피터 존슨 핀란드 교장협의회 회장은 이런 조언을 남겼다.

“경쟁은 교육에 해롭다. 학생들은 협동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배운다. 경쟁에 대한 부담은 사고력을 약화시킨다. 깊은 생각을 할 여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공부를 고통으로 여기게 된다. 경쟁에도 순기능이 있지만 학생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경쟁은 옳지 않다. 아직까지는 경쟁을 배제하고 협력을 강조하는 방식이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비 지출 비율은 7.3%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 5.8%를 크게 웃돈다. 정부 부담 비율은 4.5%, 민간 부담률은 2.9%인데 OECD 평균은 각각 4.9%와 0.8%다. 공교육 보다는 사교육 부담이 크고 그만큼 소득 격차에 따른 구조적인 불평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강남과 강북지역 교육경비 보조금이 평균 3.8배, 학교에 따라 최대 7배나 차이난다는 사실도 놀랍다.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학교 202곳에 지원된 보조금은 평균 2억4400만원이었는데 은평구와 강서구, 금천구는 평균 6500만원에 그쳤다. 자치구의 재정격차가 공교육의 불평등 현상을 심화시켜 교육 양극화를 초래하는 상황이다.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자녀 한 명에게 지출되는 양육비는 출생 이후 대학 졸업까지 22년 동안 2억6204만원에 이른다. 영유아기 6년 동안 5404만원, 초중고등학교 12년 동안 1억3989만원, 대학교 4년 동안 6811만원이 든다. 지난 10년 동안 대학 등록금은 국립대가 82.7%, 사립대가 57.1% 올랐다. 이 기간 동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5%였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은 지난해 기준으로 40조4313억원에 이른다. 월 평균 사교육비는 유치원생이 29만1500원, 초등학생이 42만8천원, 중학생이 56만8200원, 고등학생이 65만9500원이다. 소득 수준에 따른 격차도 커서 연 소득 6천만원 이상 상위소득 가구는 하위소득 가구보다 2.5배의 사교육비를 지출한다.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은 노인 빈곤과 저출산 고령화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우리나라 노인들 빈곤율은 45.1%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빈곤율은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인구의 비율을 말하는데 평균은 13.5%다. 우리나라에서 은퇴 후 필요한 생활비는 211만원 정도지만 실제로 노후 대비 저축은 평균 17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었다.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교수는 한국을 방문해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에게 아이들은 행복해지는 법을 결코 배울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남 교수는 “자녀들에게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치지도 못하고 자신의 노후도 스스로 준비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런 교육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짐과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존 밀턴은 “교육개혁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설계작업 중의 하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1945년 이후 17차례나 대학 입시제도를 바꿔왔다. 남 교수는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교육을 이용하고 기득권 계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땜질하듯 교육개혁을 남발하면서 정책적 오류를 반복해 왔다”고 지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찌감치 이런 말을 남겼다. “최상의 재원과 영토, 올바른 정치, 사회제도를 갖고 있더라도 적절한 교육 체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상국가를 세울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가는 모두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보면 뭐라고 할까.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지만 성과지상주의 무한경쟁은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잠식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요구하는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겠지만 창의력과 상상력을 거세하고 경쟁에서 쳐지는 90%의 아이들을 시스템 바깥으로 밀어내는 교육이다.

남 교수는 제레미 리프킨의 말을 인용, “이제 적자생존의 시대에서 공감의 생존 시대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 교수가 말하는 최고의 학교는 경쟁이 아닌 협력, 성과가 아닌 성취, 결과가 아닌 과정을 높이 평가하는 학교다. 최고의 학교는 역설적으로 최고를 위한 욕망을 절제하고 공동의 가치를 돌아볼 때 그곳에서 찾게 될지도 모른다.

최고의 학교 / 남승희 지음 / 인카운터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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