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의 빵집 철수? 문제는 재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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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계열사인 호텔신라가 논란 끝에 커피·베이커리 전문점 아티제 사업을 전격 철수하기로 했다. 재벌 대기업이 골목 상권을 죽인다는 비난을 의식한 결과지만 빵집 철수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가 ‘한국 : 재벌과의 빵 싸움(South Korea : bun fight with the chaebol)’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해 눈길을 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대기업 회장의 딸들이 취미로 빵집을 경영하며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정치권의 비판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면서 “대기업이 제과·제빵 사업에서 철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겉치레(cosmetic)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본질은 국가가 영세 자영업의 구조조정과 진정한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인데 한국 정치권은 이 민감한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한국 대기업이 일본이나 독일 같은 소규모 전문 기술기업의 양성을 막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면서 “한국에서는 혁신적인 기술을 갖고 누군가가 사업을 시작하면 재벌이 이를 인수해 그 회사의 직원과 자산을 빼앗아 버린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또 “한국은 아직도 기술 부품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고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으나 한국 정치인은 이러한 숙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벌 2·3세가 운영하거나 지분을 가진 빵집은 이밖에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외손녀 장선윤 블리스 대표의 포숑,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지분을 갖고 있는 조선호텔베이커리의 데이앤데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딸 정성이 전무가 있는 해비치호텔리조트의 오젠 등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동네 빵집에 위협이 되는 건 이들 재벌 빵집 보다는 SPC그룹의 빠리바게트와 CJ푸드빌의 뚜레주르 같은 체인 빵집들이다.

삼성그룹이 빵집 철수를 발표한 날, LG그룹 계열사인 아워홈도 순대와 청국장 소매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9월 순대와 고추장, 떡, 막걸리, 금형 등의 16개 사업분야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하고 대기업 진출을 자제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국회에는 이를 법적으로 강제하고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특별조치법이 계류돼 있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즈는 “중요한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인들은 재벌의 빵집 철수를 큰 성과라고 생각하겠지만 한국의 유권자들 가운데 이를 납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라호텔의 빵집 진출은 비난받을 일이지만 이미 골목 상권을 장악한 대형 할인마트와 대기업 체인 빵집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으며 근본적으로 재벌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끄럽게도 한국 언론의 재벌 빵집 철수와 관련한 보도는 이 영국 신문의 비판에 턱없이 못 미쳤다. 정치권은 여론을 의식해 적당히 구색을 맞춘 법안을 쏟아내는 데 그쳤고 보수·경제지들은 재벌 대기업들이 엄청난 양보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한국경제는 “그럼 빵집은 누가 하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진보성향 신문들도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 채 다분히 표면적인 비판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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