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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의 거짓말.

러시아의 연방보안청(KGB) 요원이 독살 당한 사건이 있었다. 2006년 사건. 사인은 놀랍게도 폴로늄-210이라는 방사성 물질 노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라는 이 요원은 음식물과 함께 이 방사성 물질을 체내에 흡수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분량은 100만분의 1그램도 안 됐다.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며 특수 장비가 아니면 계측 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소량이었지만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불러왔다.

우리 몸 안에는 평균 60조개의 세포가 있다. 이 세포들은 동일한 유전자 정보를 갖는데 새로운 세포가 생겨날 때마다 이 디옥시리보핵산(DNA) 사슬을 그래도 복제한다. DNA 사슬은 2나노미터 두께에 길이가 1.8미터나 된다. 0.2밀리미터의 실로 확대하면 길이가 180킬로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길이다. 방사성 물질에 피폭되면 이 DNA 사슬이 파괴돼서 정상적인 복제가 불가능하게 된다.

1999년 일본의 한 핵연료 가공 공장에서 방사선 누출 사고가 터져 오오우치 히사시라는 인부가 기절한 채 병원에 실려 갔다. 이 환자는 처음에 피부가 약간 빨개진 정도였지만 피부가 타서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온 몸을 붕대로 감았지만 붕대가 체액으로 찐득찐득해졌다. 피부 재생이 안 됐기 때문이다. 피부 뿐만 아니라 살과 뼈와 내장도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엄청난 수혈과 수액, 진통제가 투입됐지만 끔찍한 고통 끝에 결국 숨졌다.

교토대학 원자력실험소 연구원인 고이데 히로아키는 최근 번역 출간된 ‘원자력의 거짓말’에서 “인체에 영향이 없는 방사선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건강 검진할 때 받는 X-레이 검사도 DNA 사슬을 파괴한다. “적은 양의 방사선 피폭은 안전하고 오히려 유익하다”거나 “생물에게는 방사선 피폭으로 생긴 상처를 수복하는 기능이 있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는 이야기다.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지역이 15만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우리나라 면적이 12만제곱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끔찍한 재앙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해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체르노빌 보다 더 큰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1년이 다 돼 가도록 핵분열 반응이 계속되고 있고 추가 폭발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방사능 유출 사고가 무시무시한 것은 직접적인 외부 피폭보다 호흡이나 음식물 등으로 흡수되는 내부 피폭이 훨씬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독극물이라고 부르는 플루토늄-239의 연간 섭취한 도는 0.000052밀리그램인데 반감기는 2만4천년이다. 1000분의 1로 줄어들기까지 24만년이나 걸린다. 외부 피폭은 피하거나 막을 수 있지만 내부 피폭은 꼼짝없이 24시간 당할 수밖에 없다. 한 번도 위험한 X-레이를 수천만 번 찍는 것과 같다.

체르노빌 발전소에는 원자폭탄 2600만발 분량의 방사능이 쌓여있었는데 그 가운데 800발 분량이 흘러 나왔다. 후쿠시마 발전소는 지난해 5월 기준으로 체르노빌의 10분의 1 정도 방사능이 유출된 것으로 발표됐지만 그건 그때 상황일 뿐이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원자로가 여전히 열을 내뿜고 있고 계속해서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다는 데 있다.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훨씬 더 끔찍한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에서 내놓는 대안은 후쿠시마 사태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우선 발전소 주변을 폐쇄하고 이곳에 오염된 쓰레기를 갖다 버리자는 주장이 놀랍다. 후쿠시마 주변의 농산물을 모두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니 이 지역 농산물을 40세 이상 어른들에게만 먹도록 하자는 주장은 더욱 놀랍다. 나이가 많을수록 방사선에 둔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염 정도를 밝히지 않고 유통시키는 게 더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바다 데우기 장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100만킬로와트의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는 사실 300만킬로와트의 열을 만드는데 이 가운데 200만킬로와트는 바닷물을 데우는 데 쓰게 된다. 1초에 70톤의 바닷물을 퍼 올려 원자로를 식힌 다음 내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온도가 7℃ 정도 오른다. 발전소 주변의 바다 생태계가 송두리째 붕괴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원자력 발전소를 1년 동안 가동시키면 방사성 폐기물이 드럼통으로 1천개 정도 나온다. 일본에서는 2005년 기준으로 땅에 파묻힌 이런 드럼통이 70만개나 된다. 이 드럼통은 100만년 동안 관리를 해야 한다. 이런데도 원자력 발전이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값싼 전기요금에는 우리 후손들이 부담해야 할 폐기물 처리 비용과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위험 부담이 포함돼 있지 않다.

현재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1호기는 원자로가 격납 용기를 녹여 지하로 내려가 있는 상태로 추정된다. 이 책의 저자는 지하 깊은 곳까지 원자로 건물 전체를 감싸는 장벽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자로가 지하수와 접촉하게 되면 끔찍한 재앙이 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이나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게 이 책의 끔찍하고도 참담한 결론이다.

원자력의 거짓말 /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 고노 다이스케 옮김 / 녹색평론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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