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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주년.

“원래 언론‧출판 행위란 반역을 위해 시작된 활동이다. 반역이란 물론 주류의 가치, 즉 지배적인 제도와 관습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뿌리에서부터 의심한다는 뜻이다. 서양에서 출판을 가리키는 말(edition)과 반역행위를 가르키는 말(sedition)이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언론이 광고주와 언론 소비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언제라도 어용언론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격월간 잡지 녹색평론이 20주년을 맞았다. 발행인 김종철씨는 머리말에서 “언론은 본래의 사명을 스스로 배반하도록 강요당할 위기상황에 항상적으로 처해있는 존재”라면서 “이러한 운명을 회피할 수 있는 건 소규모 매체밖에 없는지도 모른다”고 적고 있다. “소규모일수록 외부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김씨는 “녹색평론이 비판적인 물음을 계속 던질 수 있는 것도 작은 매체 특유의 독립성 덕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씨는 “처음부터 녹색평론이 의도한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한국 사회와 세계 전체가 직면한 위기에 맞서서 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질문하는 것이었다”면서 “올바른 질문을 통해서만 올바른 방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우리는 전통적인 좌우의 이념과 논리로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정당하게 설명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는 판단으로 작업해 왔다”고 강조했다.

김씨의 비판은 냉정하고 준엄하다. “전적으로 값싼 석유에 의존해 있는 현재의 산업, 금융, 교역, 에너지, 식량 시스템은 물론이고 이와 같은 물질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정치, 문화, 교육 등 중앙집권적 시스템 전부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더 유지될 수 없는 날이 조만간 닥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진보적 사상화 개혁적 담론은 예외없이 근시안적 현실 진단과 피상적인 처방에 머물러 있다.”

김씨는 복지국가 논쟁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평가를 내렸다. “기본적으로 경제성장과 생산주의 이데올로기에 토대를 두고 있는 이상 그것이 빈곤과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는 방책으로서 정말 실효성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씨는 “복지국가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고용안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현실적으로 복지국가 논리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반문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석도 돋보인다. “오늘날 기업쪽에서 볼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비자의 존재지 더 많은 노동자의 존재는 분명 아니다. 이미 시장은 과잉 생산물로 넘쳐나고 자동화‧기계화의 급속한 발달로 생산현장에서의 인간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 전태일의 시대에 노동자는 ‘착취’를 당했으나 지금 김진숙의 시대에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노동으로부터의 ‘배제’다.”

김씨는 “더 많은 성장을 통해 극복한다는 방법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다”고 지적한다. 김씨는 “지금까지 산업사회의 주류였던 방법, 대규모 산업 시스템 속에서 일자리와 생계를 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소규모 지역 중심, 자립적 생산‧생활협동체들을 광범위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그 틀 속에서 태양에너지에 기반을 둔 순환경제를 구축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순환적 생활 패턴을 선택한다는 건 단순히 물자와 에너지 조달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결국 정치적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문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과 확산을 가로막는 기득권 세력의 방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있다”면서 “결국은 민주주의의 확립, 즉 보편적 이성이 존중 받고 합리적 상식이 통하는 정치 시스템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김씨는 “지금 필요한 것은, 이미 늦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경제에 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새로운 상식이 되도록 하는 노력”이라고 강조한다. 김씨는 “시급한 것은 경제 성장과 생산력 증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통한 발전 혹은 진보의 추구라는 낡은 공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우리의 생활방식을 자연의 본성과 리듬에 순응하는 순환적 패턴으로 전환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1991년 11월 창간한 녹색평론의 발행부수는 1만부 가량. 문예 분야 잡지 부동의 1위 창작과비평에 맞먹는 규모다. 김씨는 영남대 영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녹색평론은 농업공동체와 생태건축, 생명공학 등의 이슈를 다뤄 왔다. 최근에는 미국발 금융위기, 일본 원전 사태가 주요 이슈다. 이반 일리치, 반다나 시바, 아룬다티 로이, 제임스 러브룩 등 생태‧대안 자본주의 이론들이 이 잡지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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