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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 돌풍의 교훈.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26, 2011

‘나는 꼼수다’ 돌풍이 심상치 않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정봉주 전 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진행하는 이 인터넷 라디오는 (정확한 집계는 아니라고 하지만) 100만명 이상의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취자 수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애들 장난 같은 프로그램이 이미 웬만한 주류 언론 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나꼼수’를 모르고는 대화에 끼어들기가 어려울 정도다.


‘나꼼수’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방송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콘텐츠를 유통시킨다. 김 총수와 정 전 의원, 그리고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김용민 PD 등이 1주일에 한 번 스튜디오에 모여서 녹음을 하면 김 PD가 이걸 편집해 MP3 파일로 만들어 애플의 온라인 콘텐츠 쇼핑몰, 아이튠즈에 업로드한다. 아이폰 사용자는 아이튠즈에 접속해서 공짜로 내려받을 수 있고 아이폰 사용자가 아니라면 딴지일보 홈페이지에서도 내려받을 수 있다.

요즘은 공동체 라디오인 마포FM의 스튜디오를 빌려서 방송을 녹음하는데 목요일 저녁이 되면 언제쯤 파일이 올라오느냐는 문의가 빗발친다고 한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2천만명에 육박하는 시대에 ‘나꼼수’는 이미 브로드캐스팅의 영역을 넘어선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물론 콘텐츠가 뒷받침돼야겠지만 스마트폰 한 대로 ‘손석희의 시선집중’ 못지 않은 영향력과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찌질이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신나게 웃고 떠들고 온갖 육두문자와 막말을 남발하지만 이 독특한 팟캐스트는 그 어떤 주류 언론도 하지 못했던 진실을 날카롭게 파고 든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이튠즈 팟캐스트 다운로드 순위에서 국내 1위는 기본이고 한때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을 정도다. 인터넷 방송이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국내 최초, 국내 유일의 ‘가카 헌정 방송’이라고 말하는 ‘나꼼수’는 주마다 한 번씩,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13년 2월까지 방송할 계획이라고 한다. 김용민 PD의 표현에 따르면 “아무리 통신 기술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감옥에서 스마트폰을 쓰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방송은 BBK와 도곡동 땅, 청계재단, 중수부 폐지, 남북회담, 인천공항 등 이 대통령의 꼼수를 집요하게 파고 든다.

흥미로운 건 이미 언론 보도로 알려진 내용이지만 그걸 다시 끌어내서 뒤집고 토막치고 지지고 볶고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드러나고 새로운 의제가 설정된다는 사실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다시 들으면 놀랍고 피가 끓어 오른다. 그건 그동안 주류 언론이 ‘나꼼수’만큼 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나꼼수’만큼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쉽게 과거를 잊고 너무 쉽게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나꼼수’는 ‘섬세한 가카’의 얄팍한 처세와 권모술수를 유쾌하게 조롱한다. 키득키득 웃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옳지 않은 것들에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진실을 숨기거나 묻어둘 수는 있지만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언론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해야 한다는 메시지. 그게 이 어설픈 방송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비결이다.

‘나꼼수’는 10월26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그 영향력을 입증했다. 야당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무렵 박영선 후보와 박원순 후보를 스튜디오로 불러 질문 공세를 퍼부은 데 이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를 불러 망신을 주기도 했다. 김 총수 등이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홍 대표가 “대통령께 내곡동 부지 매입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홍 대표는 ‘나꼼수’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데다 애초에 팟캐스트가 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나꼼수’가 인기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전해 듣고는 김 총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인기 시간대에 불러달라”고 말한 것이 두고두고 회자가 됐다. 반 한나라당 정서로 똘똘 뭉친 적진에 뛰어든 셈인데 홍 대표는 이 방송으로 “한나라당의 다른 보수 꼴통들과는 다르다”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냈다.

‘나꼼수’는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내곡동 부지를 이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 명의로 매입했다는 사실이 ‘나꼼수’에서 처음으로 공개됐고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연 회비 1억원짜리 피부 클리닉에 다닌다는 사실도 ‘나꼼수’의 특종이었다. 나 후보가 재단 이사로 있는 고등학교의 졸업생을 인터뷰해서 나 후보의 이중성을 폭로하기도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 선언 직후에는 ‘긴급 호외’를 발행하는 순발력도 보였다. 그때마다 청취자들은 열광했다.

‘나꼼수’ 출연진은 이제 웬만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박원순 후보의 유세 현장에 ‘나꼼수’ 멤버들이 뜨면 순식간에 팬 사인회 현장으로 돌변한다. 김어준 총수가 최근에 낸 책 ‘닥치고 정치’는 출간 즉시 베스트 셀러에 진입하기도 했다. ‘나꼼수’ 멤버들은 최근 전국 순회 ‘나꼼수’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다. ‘나꼼수’는 새로운 미디어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주류 언론의 영향력과 신뢰도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나꼼수’의 매력은 스마트폰에 담아서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혼자 키득거리면서 들을 때 새삼 깨닫게 된다. 라디오와는 다르다. 듣다가 중단해서 다시 들을 수도 있고 반복해서 들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나꼼수’를 듣는 사람들끼리는 묘한 유대감이 생겨난다. ‘가카’의 뒷담화를 까면서 느끼는 공범 의식일 수도 있다. 주변에서 ‘나꼼수’ 이야기를 시작하면 궁금해서 듣지 않고 배길 방법이 없을 정도다.

‘가카’와 ‘가카’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돌연변이 방송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나꼼수’는 여러 방면에서 태클을 당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정 전 의원이 갑자기 대법원 선고 날짜가 잡혔다고 해서 한때 비장한 분위기로 흐르기도 했다.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할 경우 정 전 의원은 꼼짝없이 감옥에 가야할 상황이었는데 여론을 의식한 때문인지 대법원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선고 날짜를 다시 미뤘다.

김 총수가 그동안 진행해 왔던 MBC 라디오 ‘색다른 상담소’에서 갑작스럽게 하차한 것도 ‘나꼼수’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류 언론은 그동안 ‘나꼼수’를 일부러 못 본 척하는 분위기였는데 급기야 중앙일보가 홍준표 대표를 겨냥해 “한나라당 대표가 반 한나라당 코미디의 주인공을 자처해 넘어지고 깨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줬다”며 “한 마디로 보수 진영에는 개념이 없다”고 위기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최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심의하는 팀을 신설한 것을 두고도 ‘나꼼수’를 규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방통심의위는 음란물이나 사행성 등 위법행위가 드러난 경우에만 한정할 것이라고 거듭 밝혔지만 향후 방송 내용을 문제 삼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을 적용해 제재를 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나꼼수’에 불이익을 줄 경우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나꼼수’에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팟캐스트의 특성상 유통 경로가 다양해 기존의 규제 방식으로 차단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내 서비스의 경우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인터넷 프로토콜을 차단할 수도 있겠지만 ‘나꼼수’는 미국 아이튠즈에서 내려받는 청취자들도 많다. 이 경우 패킷 감청을 해서 선별 차단하거나 통째로 접속을 차단하는 수밖에 없는데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나꼼수’ 돌풍은 주류 언론에 여러 가지 교훈을 남긴다. 플랫폼에 매몰되지 마라. 기득권을 포기하라. 이제 비슷비슷한 콘텐츠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철저하게 다른 콘텐츠를 만들고 새로운 스토리 텔링 방식을 고민하라. 기자들이 개인 브랜드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라. 기계적인 중립을 피하라. 객관의 함정에 빠지기 보다는 주관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논리적으로 주의‧주장을 펼쳐라.

(월간 ‘더피알’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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