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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방 사수’의 시대는 지났다. TV도 소셜해야 살아남는다.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15, 2011

TV를 보면서 TV를 안 본다. 무슨 말이냐고? 모토로라 모빌리티 조사에 따르면 TV 시청자의 42%가 TV 시청 중에 이메일이나 인스턴트 메신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통해 시청 중인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공유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비슷한 조사 결과는 많다. 야후리서치에 따르면 모바일 인터넷 이용자의 86%가 TV 시청 중 모바일 단말기를 통해 트위터나 페이스북, 문자 메시지, 웹 서비스 등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태블릿 컴퓨터 사용 시간의 30%가 TV 시청 시간과 겹친다. 스마트폰의 경우 20%가 겹친다. 그만큼 TV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TV와 신문, 잡지, 인터넷 등의 매체 이용 시간과 점유율을 계산해 봤더니 스마트폰 사용 이후 인터넷 점유율이 13% 늘어났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매체 이용 시간이 늘어난 건 아닌데 다른 매체를 이용하면서 모바일 인터넷을 이용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조사 결과가 있었다. 디지털클래러티가 25세 이하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 1300명을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80% 이상이 TV를 보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접속해 친구들과 수다 떨기를 즐긴다고 대답했다. 트위터를 쓴다는 답변이 72%로 가장 많았고 페이스북은 56%, 모바일 채팅을 하거나 여러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동시에 쓴다는 답변도 34%나 됐다.

이처럼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TV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IPTV 가입자가 50%에 육박하고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이른바 ‘본방 사수’의 비율도 줄어들고 있다. 공짜 콘텐츠에 광고를 붙여 이익을 내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고전적인 수익모델도 위협을 받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본방 사수’는 뉴스와 스포츠 중계 정도만 남게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방송사들 입장에서는 이제 시청자들을 TV 앞에 붙잡아 두는 게 시급한 과제가 됐다. 시청자들은 이제 굳이 9시50분부터 월화 드라마를 볼 이유가 없다.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9시55분이나 10시15분, 또는 다음날 아침이나 오후에 언제든지 보고 싶은 시간에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된다. 4세대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되고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빨라지면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도 모바일 IPTV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시크릿 가든’에서 김주원이 길라임 대신 죽음을 선택했을 때,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가 재도전을 하겠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은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서 슬픔과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출했다. 사람들은 바보상자를 멍하니 들여다 보기 보다는 뭔가 좀 더 적극적인 소통을 바란다. 만약 컴퓨터가 아니라 TV가 이런 기능을 제공한다면 어떨까. TV가 추천이나 공유 기능을 제공한다면 어떨까.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미국의 케이블 사업자 컴캐스트가 만든 아이패드 어플리케이션 엑스피니티 리모트(Xfinity remote)를 보자. 친구들을 초청해서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채팅을 할 수 있다. 튜너피쉬(Tunerfish)라는 어플리케이션도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아이디로 체크인을 해서 인기 프로그램도 확인하고 친구들의 평가도 볼 수 있다. 위치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포스퀘어를 TV로 옮겨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겟글루(GetGlue)나 미소(Miso), 인투나우(IntoNow) 같은 스마트폰 기반의 미디어 체크인 어플리케이션도 눈길을 끈다. 포스퀘어가 온라인 땅 따먹기의 개념이라면 이런 어플리케이션은 콘텐츠 세계의 땅 따먹기인 셈이다. 인기 프로그램을 먼저 선점해서 추첨하면 계급이 올라간다. 인투나우의 경우 TV를 보다가 이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키면 방송 음향을 인식해 자동으로 체크인을 할 수 있다.

TV가이드에 따르면 트위터 사용자 62%는 프로그램 시작 전에 69%가 프로그램 종료 후에 글을 남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 도중에 글을 남긴다는 비율은 47%에 그쳤다. 이 비율은 페이스북에서도 비슷해서 47%가 TV 프로그램 시작 전, 종료 후에는 68%, 방송 도중에 글을 남긴다는 비율은 24%에 지나지 않았다. TV가 소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소재가 되지만 멀티 태스킹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CBS의 소셜 뷰잉 룸이나 MTV의 백 채널 서비스는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한 방송사들의 절박한 속내를 드러낸다. 전통적인 시청자 게시판에 소셜 네트워크 기능을 추가하고 스마트폰 등 모바일 지원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페이스북에 채널 커뮤니티를 만들거나 개인화된 편성표를 제공하는 등의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아메리칸 아이돌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페이스북에 투표 기능을 열어 많은 호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KT가 TV 화면 위에 트위터를 띄우는 어플리케이션을 공개했다가 실패한 바 있다. 기본적으로 멀찍이 떨어져 소파 위에 앉아서 보는 TV와 깨알 같은 트위터의 글씨들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멀티 스크린 전략이 더 효율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지금까지는 인터넷이나 스마트 디바이스가 TV의 적이었지만 적과의 동침을 시작한 셈이다.

아직까지 국내 방송사들은 위기의식이 빈약한 편이지만 TV 바깥에서 TV를 끌어안으려는 시도는 부쩍 늘어나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네이트 TV검색이라는 이름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공개했다. 채널과 볼륨을 조정하는 등 스마트폰을 리모컨으로 활용할 수 있고 트위터 등에 글을 남길 수도 있다. KTH도 최근 TV 토커스라는 어플리케이션을 내놓고 개별 TV 프로그램 단위의 커뮤니티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머지 않아 유튜브처럼 온라인에서 출발한 콘텐츠 서비스 업체들이 TV 시장으로 치고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 유튜브는 광범위한 동영상 콘텐츠와 함께 탄탄한 소셜 네트워크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유튜브는 스마트TV 시대를 대비해 고해상도 동영상 콘텐츠를 늘리고 있다. 리얼타임으로 스포츠 이벤트 등을 중계하는 실험도 계속하고 있다. 무한대의 채널이 등장하는 스마트TV시대에는 방송시장의 기득권이 아무 의미가 없다.

소셜TV는 단순히 TV를 보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개념을 뛰어넘는다. 소셜 미디어 마케팅 전문가 데이빗 웨손은 소셜TV의 다섯 가지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첫째, TV와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또는 스마트 리모콘 등을 연계하는 멀티 플랫폼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사람들을 끌어모아 수다를 떨게 만들어야 한다. 정수기 앞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른바 워터쿨러 효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셋째, 같은 프로그램을 같은 시간에 공유하고 있다는 유대감을 만들어내야 한다. TV를 끄고 컴퓨터 앞에 앉을 때는 이미 늦다는 이야기다. 이런 리얼타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려면 멀티 스크린을 지원하는 콘텐츠 전략이 필요하다. 넷째, 포스퀘어처럼 뱃지를 주거나 등급을 부여하는 것도 참여 동기가 된다. 다섯째, TV는 기본적으로 개인 소유가 아니라 가족 소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개인화 서비스가 필요하다.

스콧 캠벨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인터넷 이용자들은 멀티태스킹과 빠른 정보 습득에 익숙하기 때문에 TV 시청 중에도 TV 시청에만 집중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아고라미디어 최고경영자인 리차드 카스테라인은 “‘머스트 시(must see)’ TV를 ‘머스트 조인(must join)’ TV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참여의 동기를 부여하라는 이야기다.

TV가 처음 나왔을 때 온 동네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서 저녁 나절을 보냈던 걸 떠올려 보자. TV는 애초에 소셜한 도구였고 여전히 소셜한 도구지만 이제 한 차원 더 소셜한 변신을 시도해야 할 때가 됐다. TV는 더 이상 ‘바보 상자’가 아니다.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는 것 못지 않게 콘텐츠의 집중도를 높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 생존의 해법과 새로운 수익창출의 기회가 있다.

참고 : 순도남의 소셜TV 따라잡기 http://blog.daum.net/pureproducer, 동양종합금융증권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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