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커밍아웃은 운동이고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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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말하다” 릴레이 인터뷰 ⑤ 영화 “종로의 기적’ 만든 이혁상씨.

영화 ‘종로의 기적’은 성소수자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네 명의 게이가 주인공이고 영화를 찍은 이혁상 감독 역시 게이다. 이혁상씨는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어느날 어버지가 전화를 걸어오셨다고 한다. “너는 왜 나는 영화를 안 보여주냐, 니 엄마만 보여주고.” 그 말을 들은 이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머니가 전화를 바꿔 받으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영화, 잘 봤다.”

아들이 찍은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에 친구들을 잔뜩 몰고 영화관을 찾으셨던 어머니는 아마도 큰 충격을 받으셨으리라. 그러나 다행히도 이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고 한다. 이씨는 영화로 커밍아웃을 한 셈이다. 이 영화 덕분에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성공적인 커밍아웃인 셈이다. 이씨는 “게이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래군 : “관객이 얼마나 들어왔나. 매진된 적도 있었다고 들었다.”
이혁상 : “90일 동안 610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박래군 : “1만명도 안 되네. 이거 소수자 차별이다.(웃음)”
이혁상 : “독립 영화가 다 그렇지. 이 정도면 훌륭한 거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중에 3천~5천 정도가 보통이고 많이 들었다면 1만명 정도? 흥행에 성공한 건 트루맛쇼 정도다. 인권영화제에서도 상영을 했으니까 그걸 더하면 우리도 1만명 이상은 본 것 같다.”

박래군 : “쉽지 않은 영화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만들게 됐나.”
이혁상 : “성소수자 모임인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했었다. 민주노동당에서 성전환자 실태조사를 하다가 자료집만 만들지 말고 다큐멘터리를 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 만든 영화가 세 명의 트랜스젠더 이야기를 다룬 ‘3×FTM’이었다. 흔히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하리수처럼 남성에서 여성으로 된 경우를 생각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여성에서 남성이 된 사례를 다뤘다. 그 영화를 편집하고 있던 와중에 차별금지법 논란이 있었다. 성적 지향 등 7개 항목이 삭제된 데 반발해 연분홍치마를 비롯해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진보신당에서 최현숙 후보가 커밍아웃을 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그때 선거본부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를만들었다. 그러다가 트렌스젠더, 레즈비언 다큐를 만들었으니 삼세판은 하자. LGBT 가운데 바이섹슈얼은 잘 모르겠고, 워낙 조용히 계시는 분들이라. 우리 게이 다큐 한 번 만들어 볼까.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연분홍치마에서 내가 유일하게 게이라 나에게 일이 또 떨어졌다.”

박래군 : “성소수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나타나는 경우가 잘 없다. 차별금지법 투쟁할 때 조직적으로 움직이기도 했지만 보통은 다들 관심이 없으니까. 사회적으로 보면 성소수자 문제가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영화도 크게 흥행이 안 돼서 없는 취급을 받고. 영화 보러 온 사람들 반응은 어떻든가.”
이혁상 : “성소수자들, 특히 게이들은 영화관에 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다. 그게 레즈비언과 또 다르다. 남자 혼자 이 영화를 보러 온다는 게 게이로 오해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보면 게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이 꽤 많이 있었다. 잘 아는 친구들도 있었고 본 사람들은 빚지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즐겁고 유쾌하게 주말마다 종로에 나와서 친구들도 만나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살고 있는데, 그런 뒤에는 커밍아웃하고 커뮤니티 만들고 앞서 나가는 저런 게이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기분이 좋은 게 이 영화 개봉하고 난 뒤 동성애자인권협회와 게이 커뮤니티인 ‘친구사이’에 후원이 많이 늘었다고 하더라.”

박래군 : “연분홍치마에는 후원 없었나.”
이혁상 : “게이들이니까 게이단체에 후원하는 게 자연스럽겠지.”

박래군 : “영화 본 사람들이 모두 성소수자는 아니었을 텐데 이성애자들 반응은 어땠나.”
이혁상 : “놀라워 하더라. 거기까지 오는 이성애자라면 성차별적으로는 많이 깬 사람들일 텐데 여태까지 동성애자들이라고 해서 미디어에 비춰지는 걸로 볼 때는 뭔가 차별적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모습이거나 모자이크 뒤에서 또는 앵앵거리는 음성 변조 뒤에서 음험하고 어두워보이거나 코믹한 캐릭터로 희화화돼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지 않나. 현실적인 그런 느낌보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나왔던 스테레오 타입화된 형태일 텐데. 이 영화에서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게 되니까. 예쁜 애들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박래군 : “우리랑 다르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다.”
이혁상 : “이성애자들은 그게 그렇게 놀라웠나 보더라.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는 여성스러운 캐릭터도 있고 유쾌한 캐릭터도 있고 느끼한 캐릭터도 있고. 이 영화는 카메라의 방향을 틀어서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준 것 뿐인데 그게 그렇게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흔히 성소수자라고 하면 차별받고 고통과 시름 속에서 살고 눈물 흘리고 살거나 문란하게 살 것 같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 영화가 그런 편견을 깬 것 같다.”

박래군 : “박래군이란 사람을 생각할 때도 분노에 차 있고 슬픔에 젖어 있거나 자나깨나 투사로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 (웃음)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겠나.”
이혁상 :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다가가지, 그랬는데. 만나서 보니 옆집 아저씨 같더라.”

박래군 : “만들면서 고생이 많았을 텐데 그래도 보람이 있었겠다.”
이혁상 : “다큐가 세상을 바꾸거나 하긴 힘들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동성애자들 반응을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정말 잘 했다고 생각되는 건 지금 현재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 내가 게이인 것 같다, 보통 남자들과 다르고 이성에게 시선이 가는 게 아니라 동성에게 관심이 간다, 그래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긍정하는 케이스가 많더라. 그게 종로의 기적을 만든 가장 큰 목표였는데 그런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다.”

박래군 : “혼자서만 끙끙 앓지 말고 도움을 받으면 좋을 텐데.”
이혁상 : “인터넷에 정보가 많은데 그런데도 여전히 고민하면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SOS 신호처럼 다가가면 좋겠다. 열심히 유쾌하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신호의 반응이 오기 시작하더라.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연락을 드렸다면서, 메일 제목이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더라. 지금까지 너무 힘들어 했던 거야. 왜 결혼 안 하냐. 주변에서 압력이 들어오고. 자기는 남자가 좋은 것 같은데. 검색만 해도 히스토리에 남아서 누가 볼까봐 검색을 못하는 거야.”

박래군 : “이 영화가 사람 여럿 살렸구나.”
이혁상 : “뒤풀이 자리 와서 이야기하고 종로에 같이 갔던 사람들이 꽤 된다. 지금은 나보다 더 열심히 연애하면서 산다.”

박래군 : “영화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인 영수씨는 죽지 않았나.”
이혁상 : “처음에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갔는데 이 와중에도 카메라를 들고 가야 되나,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2년 가까이 연애하듯이 찍었는데 복잡해지더라. 그런데 도착하는 순간 마구 찍어댔다. 그러면서 잊었던 것 같다. 다 찍고 나서 나중에 지나서 아예 편집도 안 하고.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져서 버려뒀다가 한참 뒤에 다시 보면서 아, 내가 편집한 걸 영수는 못 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우리는 관객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자긍심과 자부심을 찾게 될 텐데, 영수는 그걸 못 느끼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미안하고 슬프더라. 서둘러서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죄책감도 들고 더 힘들어지더라.”

박래군 : “평생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죽는 게이들도 많지 않나.”
이혁상 : “죽어서도 당당히 게이였다는 걸 말할 수 없다는 건 정말 비참하다. 예전에 빨갱이었던 사람이 죽으면 일부러 쉬쉬하는 것처럼. 자기 정체성을 밝히지 못하는 거다. 우리 사회의 금기니까. 영수의 죽음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까. 한 달 넘게 토론을 했는데 죽음도 영수의 삶의 일부였고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고.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친구들 많이 봤는데 그 모든 친구들이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장례식장에 가면 가족들이 우리를 경계한다. 뭔가 남들과 달라 보이니까. 그러면 우리는 대학교 동아리라거나 사회생활 친구들이라고 둘러대곤 한다. 그리고 구석에서 조용히 있다가 온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가족 보다 더 가까운 친구들이었는데 죽음을 마음 놓고 슬퍼하지도 못한다.”

박래군 : “어떨 때는 가족이 가장 무서운 것 같다.”
이혁상 : “가족에 대한 커밍아웃을 가장 최후로 남겨두고 있는데. 영수는 죽기 전에 커밍아웃을 했다. 무지개 깃발 앞에 서 있는 사진으로 영정 사진을 만들고 가장 큰 장례식장을 빌려서 우리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보이스 불러주고 내가 찍어놨던 영상 틀어서 보면서 많은 동성애자 친구들이 그 장례식을 보면서 부러워하더라. 앞서 간 친구들 장례식도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벽이 너무 높다. 영수의 장례식이 특별했던 거다. 영수의 죽음은 안타깝고 가슴아픈 사건이긴 했지만 그런 영수를 떠나 보낸 과정들 때문에 다들 새로운 경험을 얻고 많은 걸 깨닫게 됐다.”

박래군 : “다른 세 사람은 영화 나오고 나서 힘들었던 것 없었나.”
이혁상 : “없었던 것 같다. 영화제 행사 하느라 술을 많이 마셔 힘들었던 것 말고는. 감독과의 대화만 마흔번 넘게 했는데. 일주일에 거의 매일 뛴 적도 있었다. 뒤풀이도 늘 했다. 영화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의 모습을 실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감독과의 대화가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한 커밍아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가 커밍아웃 캠페인이라고 생각했다.”

박래군 : “그런데 왜 1만명도 안 됐을까. 언론 보도는 많이 타지 않았나.”
이혁상 : “조중동에 안 나가서 그러나. 그보다는 작은 영화의 한계가 있는 거 아닐까.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예산 지원 3천만원을 받았는데 이걸로는 광고도 할 수가 없고 해봤자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마케팅이나 포스터 전단을 좀 뿌리는 정도였다.”

박래군 : “그런 두려움은 없었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거.”
이혁상 : “왜 없었겠나. 이 작품을 하는 내내 모든 주인공들과 내내 고민했다. 네 명의 주인공만의 문제가 아니라 되게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성소수자의 커뮤니티가 집단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는데. 그러니까 주인공을 섭외하는 과정에서부터 커밍아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었다. 관객들이 물어보면 캐스팅 기준을 미모로 뽑았다고 이야기하곤 했지만(웃음) 다큐 출연이라는 사회적 커밍아웃을 함께할 수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다큐의 가장 기본적 선결 조건이 아닐까.”

박래군 : “게이가 만든 게이 다큐라는 컨셉을 내걸었다. 당신도 이 영화로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나.”
이혁상 : “부담은 만들기 전에는 크지 않았는데, 까짓거 그랬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네 명의 주인공들이 고민하는 것들, 판이 점점 커져가는 느낌이 들면서 두려워지기 시작하더라. 조금씩 실감이 되더라. 처음에는 초반 촬영본을 보면 카메라 뒤에서 아무 말도 안 했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주인공을 따라가기만 했는데. 나레이션을 안 쓰고 감독이 드러나지 않도록. 그랬는데 찍는 과정에서 주인공들도 마음을 잡고 확신을 하고 나도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어떤 좀 더 힘을 가지려면 네 명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결심이 아니라 결의를 하게 되더라. 커밍아웃을 할 거면 그냥 화끈하게 하자. 그렇게 선택을 하고 나니까 편해졌다. 그래도 나는 주인공들보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다큐를 찍고 보니까. 가뜩이나 소수자 문제를 다룬 다큐니까. 이걸 비판하면 차별적으로 보일 것 같으니까. 다들 칭찬들을 많이 하더라(웃음). 칭찬을 받으면서 커밍아웃을 하다 보니까 부담이 덜한 느낌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박래군 : “부모님께도 말씀을 안 드렸다고 들었다.”
이혁상 : “영화가 커밍아웃을 했다. 개봉 전에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그냥 이명박 시대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청년들 이야기를 찍는다고 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개봉되면 언론에 나갈 테니까, 그 전에 말씀을 드려야겠구나 하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회를 못 잡고 개봉을 해버렸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가 그 영화를 보고 오셨다더라. 어머니 말씀이 친구들이 영화 개봉했더라, 그래서 친구들 끌고 갔다는 거야. 어머니는 이 영화를 보고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신 거다. 친구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으셨을 텐데 그렇게 됐다. 미리 말씀을 드려서 안심을 시킨 다음에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너무 쿨하게 받아들이시더라. 걱정은 많이 하셨겠지. 그런데 말씀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다만 안타까운 건 나중에 늙어서 혼자 될까봐 그게 걱정이 된다고, 그래도 네가 그걸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인정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영화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고 하시더라.”

박래군 : “어머니가 많이 배우신 분인가.”
이혁상 : “아니다. 자유선진당 지지하는, 학식이 깊은 분들도 아니다. 게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쓰러지지 않으실까 걱정했는데 쿨하게 받아들이시더라. 그래서 원래 안 그러셨던 분들이시잖아요, 그랬더니 오히려 꾸중을 하시더라. 엄마가 원래 현대적인 여성인 거 몰랐느냐고 하시더라. 성공한 행복한 커밍아웃이 됐다. 영화를 보면 애들이 다 예쁘잖아. 열심히 살고. 영화가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다. 저 게이였어요, 하면서 무릎꿇고 울고 불고 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나.”

박래군 : “우리 사회 호모포비아가 강력하지 않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같은 데는 호모포비아 집단 같기도 하다.”
이혁상 : “어디를 가나 보수 기독교 근본주의자는 있을 텐데. 거기에 맞서서 동성애자들 인권을 지지하고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는 거 아닐까.”

박래군 : “사실 나도 인권운동 초반에는 성소수자 문제를 접하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인권대회에 갔을 때였나. 저 사람들 뭐야. 전단도 핑크 빛이고 엉덩이에 빵꾸도 내놓고. 깜짝 놀랬지. 그러다가 인권운동사랑방하면서 서동진 불러다 강연도 듣고. 사실 우리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들이잖아. 80년대 운동권 말도 못하지. 그런데 하나하나 깨나가면서 배웠다. 성소수자 운동하는 사람들을 오래 전부터 만났지만, 언뜻언뜻 차별 의식을 아직 못 깨고 있구나. 그런 느낌이 있다.”
이혁상 : “사람들하고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우리랑 똑같네, 그런 생각을 하게 될 텐데. 그렇게 만날 기회가 없다. 커밍아웃한 게이나 레즈비언도 많지 않고. 편견이 너무 많다. 실제로 만나보면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될 텐데.”

박래군 : “그래도 10여년 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한기총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그래서 아닐까. 예전에는 무시해도 됐는데 이제는 어쨌든 있는 거야. 목소리도 내고. 문화적으로는 뭐가 있나 보다 정도는 돼 있는 것 같다. 많이 변한 것 같다. 기독교는 항상 주적을 만들어야 하잖아. 그게 북한이었고. 한때는 좌파 정부였고 이제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 새로운 적을 찾아야 하는데 핵심 타깃이 성소수자인 것 같다. 앞으로는 이주노동자가 될 수도 있을 거고. 사실 기독교 탓만 할 게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성소수자 문제에 큰 관심이 없다.”
이혁상 : “그걸 건드리고 싶었는데 못했다. 사실 진보진영 사람들이 영화를 잘 안 본다. 병권이 에피소드에서 범민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찍어둔 화면도 없고 구체화하기가 어렵더라. 활동가들이 활동하면서 상처 받는 경우가 많다. 성소수자 인권을 존중합니다, 차별받지 말아야죠, 그러면서 그렇다고 좋은 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한다. 본인은 이해하지 않지만 존중할 생각도 없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소수자, 존중합니다, 그렇지만 내 자식이 그러면 죽여버릴 거에요,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열심히 활동하는 친구들 중에서도.”

박래군 : “지난번 희망버스 때 성소수자들이 퀴어버스 만들어서 가고 그런 거 중요하다.”
이혁상 : “진보진영에서 상처나 이런 것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뭐랄까. 서러움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그런 걸 확 느꼈던 게 2차 희망버스 탔을 때 김진숙씨가 ‘성소수자들도 이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퀴어버스 탔던 사람들이 다 울기 시작하더라. 늘 그런 현장에 레인보우 깃발 들고 나가곤 했지만 애써 무시하곤 했는데 우리가 호명된다는 게 감동이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게. 그동안 늘 없는 사람들 취급을 받았으니까.”

박래군 : “좌파는 머리로는 이해하고 동의하는데 우파는 머리부터 이해가 안 되고.”
이혁상 :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말을 붙이면 나랑 사귀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 그런 헛된 망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박래군 : “통계가 있나. 성소수자가 얼마나 되나.”
이혁상 : “다 다르다. 추정이지만 10%라는 사람도 있고 아마도 5% 이내가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 센서스를 하거나 그러지도 않고. 워낙 조사한다고 해도 밝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박래군 : “특히 10대가 중요할 거 같은데 선생님들에게 상담하는 것도 꺼려할 거고. 그렇다고 이 친구들이 단체를 찾아오는 것도 쉽지 않을 거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고민하다가 죽기도 하고. 아웃팅 당해서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20대가 돼도 힘들겠지만 한창 예민할 때 그런 게 걱정이 되더라.”
이혁상 : “오히려 청소년 친구들은 이걸 어디가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어른들인 것 같다. 호모포비아 성향을 나타내던 트위터 사용자가 중학교 상담 교사거나 독실한 크리스찬이기도 하고. 그런 선생님들에게 강요 받는 학생들이 안타깝다. 내 경험을 봤을 때는 한참 방황하던 시기에 롤 모델이 될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 있었더라면 덜 괴롭지 않았을까. 1995년만해도 게이는 호모, 에이즈의 온상, 변태 뭐 그런 분위기였으니까. 닮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성소수자가 없었던 시절, 너무 내 자랑 같지만 그때 종로의 기적 같은 다큐가 있었더라면 다르지 않았을까.”

박래군 : “그때는 못 만들었을 거야(웃음).”
이혁상 : “내가 틀린 게 아니었구나 내가 비정상적인 게 아니라 그냥 나는 특별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런 사례들이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다. 사람들에게 넓게 파급될 수 있는 매체들을 활용해서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박래군 : “이 영화는 DVD로 발매하지 않을 거라고 들었다.”
이혁상 : “공동체 상영으로 돌리려고 한다. 주인공들에게는 영화 상영까지만 동의를 얻었으니까. 그리고 예상치 못한 아우팅의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모자이크를 한다고 해도 악의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 ‘친구 사이’에서 정기상영을 하는 것도 생각 중이다. 교육하려고 만든 거기도 하니까. 극장까지 못 오신 분들은 부르면 영사기 들고 이혁상이 간다.”

박래군 : “성소수자에게는 커밍아웃 자체가 운동이고 투쟁 아닌가.”
이혁상 : “성소수자 이슈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더 많은 사람이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사람들부터. 성소수자들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면 자연스럽게 아,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종로의 기적’을 만들면서 느낀 건데 내가 카운슬러가 된 느낌이다. 아무한테도 물어보지 못했던 고민들, 그럴만한 사람도 없었고 숨죽여 살아왔던 시절. 그런데 수면 위로 올라온 게이 한명이 보이니까 반갑고 고마운 거지. 모든 게이들이 다 커밍아웃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는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있어서는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커밍아웃은 운동이고 투쟁이다. 소수자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면서부터 마음에서부터 싸워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왜 차별을 받아야하지, 그런 인식부터가 생존을 하기 위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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