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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로 언론 길들이기 어렵게 됐다.”

(20011년 6월16일 백업. 아무개 기업 홍보 담당자의 이야기입니다. 오프더레코드, 전재금지.)

기업들 요즘 걱정거리는 당장 올해 하반기에 출범할 종합편성채널이다. 2개 이상이면 다 망한다던 종편이 4개나 들어섰는데 기업들은 광고비를 줄여나가는 추세다. 결국 다른 데 줄 광고를 줄여서 얘들을 줘야 하는데 그럼 다른 언론사들이 가만 있겠는가. 그동안 기업들은 실제 광고 효과 보다 훨씬 더 많은 광고비를 지출해 왔다. 그런데 매체는 계속 늘어나고 기업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갈수록 늘어난다.

분명한 것은 과거처럼 광고로 언론을 콘트롤하기가 어렵게 됐다는 사실이다. 광고를 준다고 해서 조지는 기사를 쓰지 않는 것도 아니고, 물론 과거에는 광고와 기사를 맞바꾸는 일도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거래를 하기 시작하면 조질 때마다 계속 광고로 막아야 한다. 한 군데를 막으면 다른 데서 다시 그 건을 들고 나온다. 우리는 이제 팩트가 틀린 건 바로 잡되, 두들겨 맞을 건 맞는 쪽으로 가기로 했다.

더 큰 변화는 채널이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만약 광고를 주고 기사를 뺐다고 하자. 당장 누군가가 그걸 발견해서 트위터에 올릴 것이고 순식간에 이슈가 된다. 진보 성향 언론사들에서 확인 전화가 쏟아질 텐데 그땐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가판에만 떴다가 배달판에서 사라지는 그런 기사, 요즘은 거의 없다. 온라인 기사도 마찬가지다. 삭제해도 누리꾼들이 금방 찾아낸다. 적당히 덮으려다가 이슈를 키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주류 언론의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 조지지 않을 테니 광고를 달라, 또는 안 주면 조진다? 잘 빨아줄 테니 광고를 달라? 그 어느 것도 먹히지 않게 됐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달라진 걸 느낄 것이다. 알려질 건 결국 알려지게 돼 있다. 기자들 몇 명을 막을 수는 있지만 팩트를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오히려 최근에는 합리적인 비판은 수용하되, 부당한 흠집내기에는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요즘은 언론사들도 광고는 광고 대로 받으면서 조질 건 조지는 추세다. 광고 물량이 줄어든 데 따른 반발일 수도 있고 종편 이후를 대비한 사전 포석일 수도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챙길 건 다 챙기고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싶은데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 보여주려는 거겠지. 종편이 시작되면 조지는 기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조져야 광고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기업이나 언론사들이나 지금보다 더 괴로운 상황이 되지 않을까.

칼은 쥐고 있을 때 무섭지 막상 휘두르고 나면 무서울 게 없다. 기자들과 데스크들도 그걸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광고 효과가 없는 광고, 그런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는 게 무의미한 시대가 됐다. 많은 기업들이 언론 전략을 바꾸고 있다. 광고와 기사를 바터하던 시대는 지났다. 언론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적당히 광고를 나눠주던 시대도 지났다. 이제 언론이 바뀌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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