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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가격.

많은 사람들이 대형 할인마트의 해악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그 때문에 일부러 동네 구멍가게를 찾지는 않는다. 정치적 신념과 그걸 지키려고 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건 별개인 것만 같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700원 하는 라면 한 봉지를 대형 할인마트에 가면 540원에 살 수 있다. 정치적 신념을 지키는 대가는 너무 크다. 내가 라면을 더 비싸게 사준다고 해서 구멍가게 아저씨가 딱히 고마워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누가 그걸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흔히 더 싸게 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싸게 샀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얻는 경우도 많다. 딱히 절박하게 필요하지 않고, 차라리 안 사는 게 훨씬 더 이익일 경우에도 그렇다. 소득이 그대로인데 생활필수품을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소득이 늘어나는 것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대형 할인점이 소득 불균형을 완화 또는 보완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완벽한 가격’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미국인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의류 소비에 33%를 덜 쓴다. 가전제품에는 52%, 식료품에도 18% 덜 쓴다. 더 놀라운 건 저렴한 소비재 구매로 절감된 비용은 내구성 없는 재화 및 서비스의 가격 인상분을 충당하기에도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장기주택상환금이 76% 늘어났고 의료보험비가 74%, 세금이 25% 늘어났다. 1970년대에는 거의 없었던 보육비도 크게 늘어났다.

1970년대에는 부모 가운데 한 사람만 일을 했는데도 소득의 절반 정도를 고정비용으로 썼다. 그런데 30년 뒤에는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데도 소득의 4분의 3을 고정비용으로 쓴다. 달리 해석하면 중산층 가정에서는 생활필수품을 구매하고 나면 티셔츠와 양상추 구매에 쓸 수 있는 여유 자금이 과거보다 더 적게 남는다는 이야기다. 저임금 노동자 가정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저임금은 악순환을 초래하고 공급 사슬에 속해있는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저임금 노동자는 저소득 소비자가 된다. 이 저임금 노동자들을 만족시킬 상점들이 들어서고 그들이 구입할 수 있는 상품들이 이 상점들을 채운다. 이건 정말 극악무도하고 끔찍한 전략이다. 결국 한 노동자 집단이 다른 노동자 집단을 잡아먹는 동안 기업의 경영진은 뒷짐을 지고 앉아 그런 살육 광경을 지켜볼 것이다. 우리도 언제든 잡아먹힐 수 있다.”

“소비자인 우리에게 세계화는 이득일 수 있지만 시민이자 노동자인 우리에게는 분명 손실이라 할 수 있다. … 효율적인 대기업들이 최첨단 기술과 저임금 노동자들로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 중서부에 사는 사람이든 독일 루르 계곡이나 라틴 아메리카나 동유럽에 사는 사람이나 모든 평범한 중산층 노동자들과 고용주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중산층 가정의 소득 증대속도가 미국의 생산성 향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우리 속담은 이런 딜레마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우리는 흔히 기업의 이윤을 줄여 판매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줄어든 이윤은 품질을 낮추거나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서 얻은 비용 절감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같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다면 당장은 좋겠지만 최저 가격 경쟁은 노동자 계급의 노동 조건과 삶의 질을 더욱 악화시킨다. 그리고 내구성 없는 값싼 제품에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을 쓰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시금치는 1달러에 30cal 밖에 안 된다. 시금치는 매우 비싼 식품이다. 양상추나 오이, 토마토는 말 할 것도 없고 딸기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1달러에 1천kcal의 피자를 먹을 수도 있고 1200kcal의 오레오 쿠키를 먹을 수도 있다. 1달러에 3천kcal를 공급하는 M&M은 정말 저렴한 제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저렴한 식품들 때문에 미국의 다음 세대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빨리 죽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누군가가 물을 섞은 우유를 싸게 팔기 시작하면 진짜 우유를 제 가격에 파는 가게 주인이 손해를 보게 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진짜 우유의 맛을 잊게 되고 더 싼 우유를 찾게 되면서 정직한 가게 주인이 문을 닫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나쁜 우유가 좋은 우유를 몰아내는 그런 일이 숱하게 벌어진다. 우리는 물을 섞은 우유처럼 값싸지만 질이 나쁜 제품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격에 주의를 집중할수록 속을 가능성이 더 높다. … 오늘날 질 나쁜 옷, 믿을 수 없는 전자제품, 흔들리는 가구, 의심스러운 식품이 표준이 되고 있다. 우리는 우수한 제품을 구매할 때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제품들을 구매하지만 정말로 싸게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나쁜 제품이 좋은 제품을 몰아낼 때 우수한 제품을 위한 시장은 줄어들 것이고 우수한 제품들은 더 비싸질 것이다.”

“‘언제나 최저가’는 초라한 생활 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멕시코의 의류 공장 노동자들과 태국의 새우 양식장 노동자들, 중국의 장난감 공장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초라한 생활로 내몬다.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자들을 착취해 사업 계획을 세우는 것,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 생산업체들이 파산하지 않으려면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을만큼 과도하게 비용 절감을 요구하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 역시 최저 가격 경쟁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안다면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말로 결론을 대신한다. “우리는 자신만의 품질 기준을 정해 이를 지킬 수 있고 우리가 구매하는 것 때문에 치러야 하는 진정한 대가를 알려달라고 기업들에 요구할 수 있으며 그런 대가를 외부로 전가시키는 것에 반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지속 가능성의 중요성을 강력히 주장하고 일회용품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투명성을 촉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장인의 솜씨를 예전처럼 되살릴 수 있다. 더 이상 저가의 노예가 아니므로 자유롭게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그리고 국가로서 이제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그것은 과거에도 저렴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저렴해지지 않을 것이다.”

완벽한 가격 / 엘렌 러펠 셀 지음 / 정준희 옮김 / 랜덤하우스 펴냄 /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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