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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평화로운 월요일 저녁.

1. 요즘 지하철 역에는 쓰레기통이 없거나 있더라도 뚜껑이 닫혀 있다. 어처구니 없지만 테러를 막기 위해서다. 쓰레기통을 막으면 테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요즘 지하철 타기가 겁난다.

2. ‘보도 협조요청’. 어제 오후 회사에 날아온 공문의 제목이다. 발신자는 외교부 산하 테러사건대책본부.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감정을 자극하고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는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불필요한 감정이라니, 도대체.

3. 알자지라 영문판 뉴스에서 그들은 김선일씨의 머리를 자르겠다고 말했다. 잘라서 우리에게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제밤 우리나라 아홉시 뉴스에서는 머리를 자른다는 말이 빠졌다. 김선일씨 뉴스는 20분 정도, 그리고 곧 일상적인 뉴스가 이어졌다. 오늘의 날씨와 스포츠 뉴스가 이어졌고 늘 그랬듯이 10시에는 미니 시리즈 드라마가 방영됐다. 뉴스는 끝나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평화로운 월요일 저녁이었다.

4. 노무현 대통령은 김선일씨 구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김선일씨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이 잡혀갔을 때도 그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런 상황에서 희망하는 것 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건 정말 한심한 일이다.

5. 우리는 이 더러운 전쟁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이라크 국민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파병 철회를 다시 검토해보겠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말할 수 있다면 김선일씨는 죽지 않을 수 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김선일씨는 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6. 절대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전쟁을 강행해야 할 이유가 뭘까.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 사람들은 ‘국민’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살려낸 대통령이 지금 국민들의 뜻을 저버리고 있다.

7. 김선일씨가 죽는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그다드에 있든 서울에 있든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똑같은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는 더러운 전쟁에 말려들었고 이제라도 전쟁을 그만두는 것 말고는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다. 김선일씨의 다음 차례는 나나 당신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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