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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자전거를 타 봤더니.

히메지에서 자전거를 공짜로 빌려준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관광 안내소를 찾아갔다. 안내하는 직원이 여든 가까운 백발의 할머니라서 놀랐다. 열쇠를 받아 세 블록을 걸어가서 지하의 자전거 주차장에 가서 자전거를 찾았는데 자전거 주차장도 신기했지만 자전거 전용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걸 보고 감동 받을 뻔 했다.


교토와 나라에서 자전거를 빌렸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집에 두고 온 내 날렵한 자전거와 비교가 돼서 처음에는 애걔,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는 커다란 장바구니가 달렸고 기어 조절도 안 되고 당연히 속도도 잘 안 나오고 푹신푹신한 안장은 매우 낮게 달려 있었다. 그런데 좀 타다가 보니 이해가 됐다.

시내에서의 자전거는 사실 전력 질주할 일이 거의 없다. 찻길로 다닐 때도 있지만 인도에서 사람들 사이를 요리저리 빠져 나가려면 속도가 너무 빠르면 안 되고 언제라도 멈출 수 있도록 두 발이 땅에 닿을 정도 높이가 돼야 한다. 뽀대는 좀 떨어지지만 며칠 타 보니 장바구니도 꽤나 요긴했다. 오사카에서 값비싼 마운틴 바이크나 로드 바이크는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전거를 차량으로 분류해서 인도로 다니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인도와 차도 양쪽으로 다닐 수 있다. 물론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인도와 차도의 턱이 없는 곳도 많다. 인도를 타고 가다가 사람이 많으면 차도로 내려서기도 하고 바깥 차선에 주차된 차가 있으면 인도로 올라서기도 한다.

횡단보도 옆에 자전거 통행로가 따로 그려져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며칠 타다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자전거로 사거리 교차로를 지날 때는 자동차 틈에 섞여서 건너는 것보다 직진 방향 왼쪽의 횡단보도 신호가 바뀔 때 그 옆으로 건너는 게 안전하고 더 빠르다. 우리나라 같으면 오른쪽이 되겠지만.

자전거가 워낙 많다 보니 승용차와 버스도 바깥차선을 비워두고 운전하는 습관이 있는 듯. 이 때문에 자동차들은 속도가 느려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시내 진입 억제도 되는 듯. 보행자들도 익숙해져서 늘 뒤에서 오는 자전거를 의식하고 걷는 분위기. 도쿄나 오사카는 잘 모르겠고 교토에서는 확실히 웬만한 교통 수단보다 자전거가 훨씬 더 빠른 것 같았다.

그러나 일본이라고 해서 자전거 환경이 특별히 더 좋은 건 아니다. 자전거 도로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도가 넓은 것도 아니다. 자전거를 버스나 지하철로 싣고 다니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일본은 자전거의 수송 분담률이 25%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2%가 채 안 된다. 그 차이가 뭘까.

우선은 시내 차량 통행이 훨씬 줄어야 한다. 지금 같으면 종각역이나 강남역 사거리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걸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바깥 차선을 가로 막는 불법 주·정차가 사라져야 한다. 거리에 자전거가 늘어나면 차량 속도도 줄어들 거고 자연스럽게 자전거 통행이 늘어나는 선순환 효과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인도와 차도를 쪼개서 자전거 전용 도로를 갖추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자전거 횡단보도나 자전거 등록제도 좋은 아이디어인 듯. 그리고 아예 자전거 제조단계에서 자물쇠를 부착해서 나오는 방식도 좋은 것 같다. 건물마다 자전거 주차 공간 확보를 의무화하는 건 어떨까.

정부 차원에서 동네 마다 공영 주차장을 늘리는 작업도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내 집 앞 골목길이라고 해서 불법 주차를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혹시 자동차 유지 비용이 너무 낮은 것 아닐까. 그리고 사실 그 피해를 모두가 함께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더 좋은 사회가 될 거라고 믿는다. 일본이 그래서 더 좋은 사회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덜 나쁜 사회가 됐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귀찮고 답답해서 자동차 운전을 못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자동차 운전을 줄이려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자전거는 인류가 만든 가장 효율적인 기계라고 하지 않는가. 자동차 운전이 줄어들수록 자전거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게 된다. 자전거는 사실 결코 느리지 않다. 도심에서 자동차의 평균 속도가 시속 30km 정도라면 자전거는 시속 15km 정도는 된다. 넉넉히 한 시간이면 서울 시내에서도 웬만한 곳을 다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할 때 자전거 관련 공약을 넣도록 압박을 하고 자동차 세금을 올리는 대신 보급형 자전거 확산에 예산을 책정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공영 주차장을 늘리고 불법 주·정차 단속을 강화하라고 민원을 넣어야 한다. 그게 이 기묘한 거대 도시 서울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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